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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나무와 함께해서, 부부가 함께여서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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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해서, 부부가 함께여서 행복해요”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4/07/08 10:03 수정 2014.07.08 10:04





온종일 나무와 씨름한다. 나무를 가공하는 기계 소음과 나무 먼지가 가득한 공장이지만 조이차(55)ㆍ심미순(57) 부부에게는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늑한 작업실이다.

명곡동에서 ‘송림공방’을 운영하는 조 씨 부부는 아침 6시부터 밤 11시가 될 때까지 이곳에서 꼬박 시간을 보낸다.

조 씨 부부는 “가계가 힘들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돼줬고 두 아이를 훌륭하게 키울 수 있게 해준 바탕이 바로 이곳”이라며 웃었다.


나전칠기 장인 꿈꾸던 20대
IMF로 빚더미

조 씨는 20살이 되기 전부터 나전칠기를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나무를 만지는 것이 좋았고 나무 향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나무를 다듬고 칠하는 일이 정말 좋았다. 그렇게 서울에서 나전칠기를 만드는 일을 했다. 첫 딸을 출산한 이듬해인 95년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을 칠기를 만드는데 쏟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나전칠기가 한창 인기가 있었다.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부터 점차 찾는 이가 줄어들었고 나전칠기 산업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 씨는 위기 속에서도 나전칠기를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길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부산으로 와 가구 영업일을 시작했어요. 제가 또 낙천적이거든요.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판로를 뚫었죠. 그러고는 일이 잘 풀리는 듯했어요. IMF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1997년 말, 조 씨의 가정 역시 IMF 외환위기로 큰 어려움을 맞닥뜨렸다. 집도, 차도 모두 잃어버리고 2억원이라는 빚까지 지게 됐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을 만큼 어렸고 당장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다.

“그때 양산으로 와 힘들게 단칸방을 구했어요. 아내가 분식집도 했어요.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 뭐든 한 거죠. 네 가족이 그 좁은 방에서 생활하고 아내가 분식집 운영하며 고군분투하는 걸 보고 결심한 거에요.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나전칠기 하던 솜씨로
원목 가구 만들며 일어서

조 씨가 돌아갈 곳은 역시나 ‘나무’였다. 상북면 내석리에 작은 공장을 차리고 그의 청춘을 다 바쳤던 나무를 다시 잡았다. 이번엔 원목 가구를 만들기로 했다.

가구 판매업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제대로 만들기만 한다면 충분히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무 다루는 기계가 없어 손으로 일일이 모든 작업을 했다. 그렇게 수작업으로 만든 조 씨의 가구는 거래처에서 인정을 받았고 그의 생각대로 잘 팔려나갔다.

“나전칠기도 나무를 다루는 일이고 가구도 나무를 다루는 일이니 못 할 것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저랑 또 잘 맞더라고요. 그렇게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가구 만들기에 몰입했어요. 다시 나무를 만지니까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어요. 가구도 잘 팔리고 그 돈으로 빚도 갚으니 점점 더 즐거워지더라고요”

나무에 대해 잘 몰랐던 아내 심 씨 역시 남편을 돕기 위해 옆에서 가구를 배웠다. 조 씨의 옆에서 거들며 15년 동안 나무와 함께하니 이젠 전문가 수준으로 나무를 다루게 됐다.

“아내 덕에 제가 많이 편해졌죠. 저랑 같이 일하고 영업도 하고 경리도 하고…. 지금은 이 사람 없으면 공장 안 돌아가요. 아내가 있으니 제가 가구 만들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요”

이들은 형편이 어려웠을 때 사춘기를 겪은 두 자녀가 삐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자라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며 웃었다. 부부가 밤낮없이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어린 두 아이는 늘 집에 남겨져 있어야만 했다. 그런 아이들을 돌봐준 것은 공부방을 운영하던 이웃이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아이들 공부도 봐주시고 밥도 챙겨주시고 고생 많이 하셨죠. 그때는 여유가 없어서 잘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종종 찾아뵙고 아이들 이야기도 하고 그러죠. 아이들이 자기 적성 찾아 대학 간 것도 이분들 덕이에요"



작은 공방 차리는 게 꿈
마지막까지 가구 만들고파


조 씨 부부는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열심히 일해 여기까지 일어선 자신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공방 대신 누구라도 쉽게 이들을 찾아와 가구를 구경하고 만드는 것도 직접 볼 수 있는 가게를 가졌으면 하는 게 꿈이다.

“아직은 일할 수 있는 나이니까 조금 더 일할 생각이에요. 2~3년 후에는 시내에 공방을 차리고 거기서 가구도 만들고 저희 가구를 보러 온 분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요. 아기자기하게 꾸미고도 싶고…. 그렇게 마지막까지 계속 나무와, 가구와 함께 사는 게 꿈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과 즐겁게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조 씨 부부. 이들이 짓는 웃음에는 힘들었던 시간을 잘 버텨온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현재의 소중함이 담겨있다. 욕심부리지 않고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이들의 소망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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