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를 떠올리면 서민적이고 고전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한지공예는 생활용품 재료가 부족했던 옛날 서민을 위해 만들어진 공예유산 가운데 하나이자 선조들 생활지혜 집합체다. 하지만 산업문명에 밀려 현재는 명맥을 유지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런 우리나라 고유 문화유산인 한지의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과 전통을 지키며 예술로 승화하는 사람이 있다. 덕계동에서 ‘덕계한지공방’을 운영하는 곽말순(52) 한지공예가가 그 주인공이다.
한지는 전통의 포근함이 매력ⓒ
자연의 색 구현하는 재미있어
곽 씨가 한지에 관심을 가진 건 지난 2000년. 처녀 시절 한복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다. 그는 그림을 비롯해 손으로 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어 그림, 만들기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혼을 한 후에는 결혼 생활과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두게 됐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의 시간이 생기자 다시 뭔가를 해보고 싶어졌다. 그때 만난 것이 ‘한지’였다.
“한지는 일단 가벼우면서 튼튼해요. 누구나 만들어 사용할 수 있고 싫증도 쉽게 나지 않죠. 천연 재료이기 때문에 몸에 자극을 주지도 않지요. 한지라는 재료가 주는 질감부터가 우리 것이기 때문에 포근함을 주죠. 그 매력이 제일 큰 거 같아요”
곽 씨 말대로 한지는 자연의 색을 다양하게 구현하고 있다. 거기다 한지를 여러 겹 덧발라 만든 틀에 다양한 색지로 옷을 입히고 여러 가지 무늬를 오려 붙이는 색지 공예, 종이를 꼬아 만든 지승 공예, 종이 낱장을 여러 겹 붙이거나 종이를 이겨 골격을 만드는 지호 공예 등 방법도 여러 가지라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탈색공예는 검정 한지에 락스로 물을 빼 원하는 색을 만들어 붙이면 돼요. 간단하죠. 근데 작업이 간단하다 보니 정이 덜 드는 느낌이에요. 색지공예는 색 조합부터 무늬 도안을 찾거나 만들고, 그 무늬를 파는 등 3일 정도 밤낮없이 저와 함께하죠. 그래서 더 정이 가요. 재미도 있고요”
한지로 만든 가구는
내구성도 좋고 견고해
곽 씨가 주로 만드는 작품은 서랍장이나 책상, 수납장 등 한지 가구다. 한지를 겹겹이 쌓아 압축한 합지로 가구 틀을 짜고 거기에 색지를 붙여 완성한다.
“한지 가구가 약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죠. 종이이기 때문에 내구도가 약할 것 같지만 합판보다 훨씬 단단해요. 쉽게 휘어지지도 않고요. 한지로 꾸며 색상, 디자인 등에서 전통의 멋이 그대로 살아있고 여기에 견고하기까지 해 생활용품으로서 손색이 없어요”
실내장식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보니 한지공예를 배우려는 사람도 꽤 있고 한지 가구를 찾는 이들도 생기고 있다. 곽 씨는 다양한 공예 분야 중에 한지공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감사한 일이라며 웃었다.
“원래 유행은 돌고 돌잖아요. 지금은 섬유공예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묵묵히 하다 보면 한지공예도 곧 빛을 볼 때가 오겠죠. 꾸준히 찾는 분들도 있어요. 물론 한지공예를 하려면 비용이 꽤 들지만, 요즘은 값싸고 예쁜 종이도 많이 나와 쉽게 배울 수 있어요”
흰 한지에 직접 색 물들여
그만의 작품 만드는 게 꿈
닥나무 껍질로 만든 전통 한지는 값이 비싸 일반 수강생들이 사용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색도 화학약품이 섞여 화려한 색을 띠는 값싼 수입 한지보다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곽 씨는 전통 한지를 찾기 힘든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한지를 이제 막 시작한 분들에게 좋은 종이를 강요할 순 없잖아요. 단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강의하면서도 무조건 이게 좋으니 이걸 쓰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현실이 마음 아팠죠. 그런데 또 꾸준히 공예를 배우신 분들은 왜 비싼 종이를 써야 하는지 스스로 터득하세요. 소망이 있다면 그런 분이 더 많아져서 질 좋은 한지가 많이 생산ㆍ소비되는 거죠”
곽 씨는 질 좋은 한지로 그만의 색을 담아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최종적인 꿈이라고 말했다. 물들여진 한지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염료를 만들고 염색해 그가 원하는 색의 한지를 만드는 것이다.
“한지를 구하다 보면 제가 원하는 색이 없는 때가 있어요. 그런 때는 내가 직접 염색을 배워서 한지에 색을 입혀야겠다고 늘 다짐해요. 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색을 만들어보는 거죠. 불가능한 게 아닌가하고 스스로 고민하기도 하지만 저는 될 거라 믿어요. 언젠가 저만의 색으로 만든 제 작품이 탄생할 거라고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