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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연말 양산지역 음주운전 단속현장을 가다
놓아버린 정신, 잘못 잡은 운전대

안태영 기자 iij24@naver.com 입력 2014/12/16 09:56 수정 2014.12.16 09:54




해가 진 어두운 밤거리, 사람들이 하나둘씩 시내에 나와 자리를 잡는다. 연말 송년회 등 각종 모임으로 늘어난 술자리만큼 거리 위 비틀거리는 취객도 늘어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한순간 실수로 잊고 싶은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바로 음주운전이라는 악질 범죄 때문이다.


욕설에 도주까지… 위험천만 단속현장


지난 11일 오후 8시 30분. 남부동 신양초등학교 앞에서 음주운전 단속이 시작됐다. 쌀쌀한 날씨에도 음주 단속에 나선 박병지 경위(50), 박기호(43)ㆍ김정훈 경사(40)는 “오늘은 그나마 바람이 안 불어 다행”이라며 각자 위치를 잡았다.

박기호ㆍ김정훈 경사는 음주감지기를 들고 직접 단속에 나섰고 박병지 경위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순찰차 옆을 지키고 섰다.

“단속은 매일 팀을 바꿔 365일 이뤄지죠. 보통 하루 4시간씩 장소를 옮겨가며 합니다. 평균 2~3건 정도 걸리죠. 요즘은 연말이라 낮에도 단속을 합니다. 오늘은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에 지원 나간 병력이 많아서 저희 셋이서 단속을 하게 됐네요”

박병지 경위는 오늘 단속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원래 쉬운 단속이란 없다지만 오늘은 지원 병력이 없어 더 힘든 시간이 될 거라고.

↑↑ 박기호.김정훈 경사가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

음주단속을 시작한지 1시간. 다소 이른 시간 때문인지 적발되는 운전자는 없었다. 간혹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차량이 단속 현장을 보고 급정지 하는 바람에 단속 경찰들이 달려가는 일을 빼곤 조용한 겨울밤 그 자체였다.

오후 9시 20분 고등학생 하교 시간에 맞춰 차량 소통이 급격히 많아졌다. 박 경위도 감지기를 들고 현장으로 급히 뛰어갔다.

“왜 커브에서 도로를 막고 단속을 한다고 난리야”

단속으로 차가 밀리자 불평을 늘어놓는 운전자들이 많아진다. 때로는 침을 뱉는 사람도 있다고.

김정훈 경사는 “오늘따라 유난히 뭐라고 하는 운전자들이 많네요”라며 아무렇지 않게 웃고 넘긴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니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다.

오후 10시를 넘기자 박 경위는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말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속지점 건너편 T자형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단속지역으로 나오던 모닝 차량이 갑자기 유턴한다. 박 경위가 곧바로 순찰차에 올라 쏜살같이 차량을 추격한다. 100m도 가지 못하고 붙잡힌 20대 운전자. 이 운전자는 음주측정 결과 0.04. 훈방이다.

오후 10시 38분. 김정훈 경사가 들고 있던 음주감지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30대 운전자는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내리는 순간 비틀. 눈으로 봐도 이미 만취 상태였다.

음주측정결과 0.132. 면허 취소 수준. 그는 경찰차 안에서 정황진술서를 써야만 했다. 그는 진술서를 쓰면서도 “왜 나만 검문하느냐”, “다른 차량은 왜 그냥 보내느냐”, “아는 사람이라고 봐주는 것 아니냐”며 한동안 억지를 부렸다.

김 경사가 정황진술서를 작성하고 박 경위와 박기호 경사가 검문을 하는 사이 전방에서 경차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 도주했다. 박 경위가 다시 한 번 순찰차에 올라 추격에 나섰지만 이번엔 실패. 단속 인원 부족이 낳은 결과였다.

↑↑ 예전에 자신도 음주운전을 하다 박병지 경위에게 단속된 적 있다는 한 시민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음료수를 건네며 고생하는 경찰관들을 위로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100m도 안 갔어요. 한 번 봐 주세요”


오후 11시 25분 중부동 신도시 택지 인근 사거리로 음주단속 장소를 옮겼다. 검문을 시작하자마자 우회전 하던 차량이 급히 직진으로 바꿔 택지 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박 경위가 순찰차와 함께 좇았다. 순식간이었다. 결국 붙잡힌 60대 운전자. 단속현장으로 같이 가기를 거부한다. 하는 수 없이 김정훈 경사가 음주측정기를 들고 도주 장소까지 직접 가서 측정. 결과는 0.029. 결과적으로 훈방 될 운전자가 그렇게 위험하게 도주한 것이다.

오후 11시 56분, 다시 단속 현장 앞에서 차 한 대가 멈춘다. 김 경사가 달려가 감지기를 들이댄다. 결과는 빨간불. 차에서 내린 30대 후반 남자와 여자. 음주 측정을 위해 조사차량으로 이동하는 내내 억울한 표정이다.
운전한 여성의 음주측정결과는 0.085. 100일 면허정지다.

운전자는 “고작 100m 운전했는데 걸렸다. 한 번만 봐 달라”, “영업을 하는데 면허 없으면 안 된다”며 하소연했다. 하지만 그의 하소연이 혈액 속 알코올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우리도 안타깝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원칙대로 해야죠. 원칙대로 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어요. 음주운전은 범죄입니다. 그걸 사람들이 인식을 못해요. 그래서 습관처럼 음주운전을 하는 거고요”

김정훈 경사는 억울하다 하소연하는 운전자와 동승자를 대리운전을 불러 보냈다.

자정을 넘긴 오전 0시 6분. 이번에도 감지기는 빨간불이다. 차에서 내린 30대 남성은 음주측정 결과 0.067로 면허정지 100일.

그는 “방금 술 마시고 나와서 그렇다”, “시간을 달라, 선처해 달라”며 억울해 했다. 박기호 경사가 물과 커피 등을 주며 “시간 드릴 테니 천천히 긴장 푸시라”고 다독였다. 물과 음료를 다 마시고도 이래저래 시간을 끌던 운전자. 하지만 결국 그는 100일 면허정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전 0시 40분 단속을 마무리하기까지 음주차량으로 예상되는 차량 3대가 도주했다. 2대는 놓치고 1대는 붙잡았으나 잡힌 차량은 단순히 길을 잘못 들어섰던 것. 이날 음주단속은 그렇게 면허 취소 1건, 정지 2건, 훈방처리 2건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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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은 범죄, 의식 바꿔야”


이날 음주단속 현장은 그야말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이었다. 지레 겁먹고 도주하는 차량, 만취가 됐음에도 몇 잔 마시지 않았다는 사람, 억울하다면서도 생계가 걸린 문제니 봐 달라는 운전자까지. 이들을 위해 음주단속 경찰관들이 충고를 전했다.


“우리도 회식을 하고 술을 마십니다. 음주를 이해 못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라도 운전만큼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특히 도주차량, 정말 심각합니다. 술 한잔에 목숨 걸고 도주하는데 그러다 정말 큰 사고로 이어집니다”
- 박병지 경위(사진 왼쪽)


“매일 이렇게 음주단속을 합니다. 365일 내내 하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계속 음주단속에 걸리는지 모르겠어요. 차를 두고 술자리에 가면 될 일인데 ‘설마 한 잔은 괜찮겠지’, ‘설마 오늘 걸리기야 하겠어’하는 마음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 박기호 경사(사진 가운데)


“음주운전자들은 죄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만약 음주운전 사고로 자신의 가족이 다쳤다고 생각해 보세요. 참을 수 있겠습니까? 음주운전은 심각한 범죄행위입니다. 술을 마셨으면 그냥 차를 두고 가세요. 한 잔이라도 마셨다면 운전대를 잡지 않는 것, 그게 정답입니다”
- 김정훈 경사(사진 오른쪽)


음주운전은 자신은 물론 타인의 고귀한 생명과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끔찍한 범죄다. 연말 잦은 모임을 조금 더 건전하고 성숙한 형태로 바꾸고 음주운전에 대한 시민 의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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