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오랜만이죠? 생신이라 그런지 예쁘게 하고 오셨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고 오늘 마음껏 웃다 가세요”
조용했던 통도사 자비원 전문요양시설이 한바탕 노랫소리로 떠들썩해졌다. 선명회(회장 곽애임)가 어르신 생신 축하 공연을 연 것이다. 한 달에 두 번, 어르신과의 만남을 기획한 이는 선명회 회장 곽애임(59, 하북면) 씨. 곽 씨는 지난 1996년 시작한 봉사활동으로 삶의 의미와 활력을 찾았다며 웃었다.
ⓒ |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 보고 봉사하게 돼
곽 씨는 어르신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그들 앞에서 춤추며 노래했다. 하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어르신과 손을 잡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오른손에 비해 왼손은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의수예요. 옛날에 다쳤거든요. 처음에는 익숙하지도 않았고 사람들 시선도 불편했죠. 지금 생각하면 이만큼만 다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더 많이 다쳤으면 지금 활동도 못 했을 거 아니에요”
17세, 꽃다운 나이에 곽 씨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장애를 얻었다. 김 제조공장에서 일하다 왼쪽 손 일부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어린 나이에 의수를 차게 된 곽 씨는 자신을 보는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을 외면하고 피하게 됐다.
ⓒ |
“어릴 때 당한 사고로 장애인이 된 제가 부끄럽고 싫었어요. 한창 사춘기였을 땐데 왜 안 그랬겠어요. 숨어 살고 싶었죠. 그래도 나이를 먹어 가정을 꾸리고 어린아이까지 생기니 이것저것 다 해야겠더라고요. 남의 집 셋방 전전하고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했죠. 그렇게 삭막하게 살다 보니 저한테 남은 건 힘든 현실밖에 없더라고요”
그런 곽 씨를 안타깝게 생각한 지인이 그에게 책 한 권을 추천했다. 어렵지만 열심히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은혜심기’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곽 씨는 힘든 삶에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 많다는 생각에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봉사자였던 여자가 장애를 가진 남자와 함께하며 돌봐주고 싶어 가족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어요. 누운 채 꼼짝 못 하는 남편을 업어서 화장실에 데려가고, 한파에도 냉골인 방에서 먹을 것도 넉넉지 못한 채 힘들게 사는 이야기였죠. 그 이야기를 보니 저도 많은 걸 가지고 있진 않지만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렇게 해서 만든 게 ‘선명회’였다. 착할 선(善)에 밝을 명(明). 착하고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1996년 봄, 곽 씨와 뜻을 같이할 4명의 회원이 모이게 됐다.
끝까지 선명회 안에서 봉사하고파
곽 씨를 비롯해 회원 대부분이 하북면에 살고 있어 선명회는 주로 하북면에서 활동한다. 어려운 이웃에게 쌀을 전달하고 홀로 사는 어르신을 찾아 말동무도 돼 드린다. 통도사 자비원에서 청소도 하고 어르신 생신 잔치도 이들의 몫이다. 또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장학금도 전달하고 있다.
“우리만 특별하게 하는 활동도 아니고 다른 단체들도 다 하는 활동이라 이렇게 소개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긴 하네요. 선명회를 처음 만들 때부터 다른 이들에게 ‘우리 이렇게 활동한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어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겼거든요. 거창하게 하는 것도 없고요”
곽 씨는 19년 동안 꾸준히 베풀 수 있었던 것은 회원 26명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천사 같은 마음으로 보잘것없는 그와 힘든 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성심성의껏 일해준 덕에 긴 세월 동안 웃으며 봉사했다는 것이다.
“회원들 모두 형편이 넉넉하다곤 못해요. 마음이 넉넉한 거죠. 저와 똑같이 고생하고서도 저한테 공을 돌리잖아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게 제게 복이고 행운이죠. 이제 저보다 더 선명회를 잘 이끌어가고 발전하게 할 수 있는 분에게 선명회를 맡기고 싶어요. 저는 선명회와 끝까지 봉사할 거고요”
![]() |
ⓒ |
인생 담은 책 쓰는 게 마지막 꿈
곽 씨는 이제 그동안의 삶을 담은 글을 써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책과 글을 좋아했기에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이제 그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대학 가기 전부터 늘 말했어요.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를 가서 글 쓰는 법을 배우고 엄마 인생을 써 달라고요. 아들도 알았다고 하더니 다 큰 지금은 저 살기 바쁘다고 아마 그 약속도 잊었을 거에요. 그래서 연말 봉사 일정을 마무리하고 나면 직접 써보려고요”
곽 씨는 글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펜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2월에 열린 양산시자원봉사자 한마음대회에 그가 봉사하며 느낀 점을 쓴 수기가 대상을 받자 자신감을 갖게 됐다.
“서투르죠. 제 수기를 읽으면서도 책을 쓰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으니까요. 그래도 제 글에 박수치는 사람들을 보며 ‘진심이 담긴 글에는 누구나 감동하는구나, 나도 해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또 압니까? 제가 책을 읽고 봉사자가 됐듯, 제가 쓴 글을 보고 봉사하며 사는 사람이 있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