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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엄마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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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웅상 행복한 세상] 엄마가 남긴 것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5/09/01 09:28 수정 2015.09.01 09:23
이강숙 희망웅상 홍보분과



 
↑↑ 이강숙
희망웅상 홍보분과
 
엄마 가신 지 벌써 6년이 됐다. 아버지는 엄마 없이 밥을 해 드시고 빨래를 손수 하시고 새벽마다 기도하러 가시고 여름 땡볕에도 밭을 일궈 채소를 자녀들 집에 배달하신다. 이렇게 아무 탈 없이 아버지께서 엄마 없는 날을 보내고 계신 것이 기적 같고 감사하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일 년 반 투병하시는 동안 아버지는 단 하루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고 엄마가 잠들 때까지 발을 주물러 드리느라 엄마의 발치에서 주무셨다. 입에는 테이프를 붙인 채. 코 고는 소리에 엄마가 깨실까봐 그러신 것인데 지금도 잠이 잘 안 오는 날엔 입에 테이프를 붙이신다는 우리 아버지.

가끔 아버지께 물어본다. “아버지, 6년이나 지났는데 이젠 엄마 없는 게 좀 익숙해졌죠?” 그러면 아버지는 그러신다. “너희는 잊기도 하고, 익숙해지는지 몰라도 난 아니다. 하루가 저물면 ‘아, 이제 너희 엄마한테 갈 날이 하루 더 가까워졌구나’ 그런 생각으로 그냥 견딜 뿐이야. 그러다 보니 세월이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는 것이지”

엄마 병세가 아주 나빠질 때까지 아버지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엄마는 평생을 공들여 온 신앙 덕에 참 평안히도 죽음과 낯을 익히셨는데 정작 엄마에게 당면한 문제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아버지와 나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엄마 가시기 2주쯤을 남겨 놓고서야 비로소 아버지는 엄마에게 먼저 가시라고 말씀하셨고 엄마도 당신 무덤 옆에 산초나무를 심어달라고, 이렇게 좋은 당신과 자식을 두고 가기 아깝지만, 사실은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젠 떠날 때도 됐다는 말씀도 편히 하시고 그러셨다.

엄마 가시고 2년을 아버지는 두문불출하시며 엄마 사진과 옛날 편지, 두 분의 연애 시절 얘기와 가정을 일군 이야기, 그리고 엄마를 간병하는 동안 매일 쓰신 아버지의 일기와 죽은 엄마께 보내는 편지를 엮어 책으로 만드셨다.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찍어 낸 책이 아니라 인쇄소에서 제본을 한 248쪽짜리 책이다.

표지엔 엄마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의 사진과 ‘살아보면 재미있다’는 제목이 찍혀 있다. 엄마가 우리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다.

아버지는 죽음이 엄마의 목소리, 모습, 기척, 엄마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가 버렸고, 그걸 느낄 때마다 깜짝 놀라게 된다고 말씀하시며, 버티시듯 겨우겨우 책을 쓰셨다. 그 2년의 시간이 아버지에게는 정성을 다해 당신의 슬픔을 돌보고 치유하는 시간이 됐고 힘으로 다시 엄마 없는 일상으로 복귀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땅에서 입었던 몸을 벗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는 않다는 것, 그러나 완전히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것, 또한 더 이상 치료가 의미 없을 때는 정신을 잃지 않고 통증을 제어하는 게 첫 번째가 돼야 한다는 것, 가장 가까운 엄마를 잃으면서 내가 죽음에 대해 배운 것은 고작 이 정도의 것들이다.

평온한 죽음은 실제로 본질적인 인간의 권리로서 투표권이라든가 사회 정의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사랑 가운데 죽음을 잘 맞이하도록 돕는 것보다 더 거룩한 재능은 있을 수 없다. (티베트의 ‘지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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