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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창간 기획 - 우산 윤현진] “독립운동 정신 잊지 말아야..
기획/특집

[창간 기획 - 우산 윤현진] “독립운동 정신 잊지 말아야”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5/09/08 10:54 수정 2016.06.21 10:54
독립운동가 선양ㆍ추모사업, 다른 지역은?
학술대회부터 역사공원, 기념관 조성까지
역사 정신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 진행

일제강점기, 선열들은 일제 지배에 항거하고 조국 독립을 위해 전국 곳곳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조국을 위해 앞장서 만세를 외쳤고, 그들은 독립을 일궈냈다.


후손들은 그들의 희생이 있기에 현재가 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 기념비부터 역사공원 조성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기리고 있다. 지역의 역사인물과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알리기 위해 각 지역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대한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울산시, 생가 일원 역사공원 조성


울산시는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역임한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 고헌 박상진 의사(1884∼1921)를 ‘울산이 내세울 역사적 인물’로 보고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고헌 박상진 의사 생가터
2014년 송정저수지로 불렸던 저수지를 ‘송정박상진호수공원’이라 이름 짓고 박상진 역사거리를 비롯해 산책로, 전망대, 휴게 쉼터 등을 설치했다.


박 의사가 태어난 곳이 송정이기 때문이다. 호수 근처에 박 의사의 호를 딴 정자 ‘고헌정’을 설치했고, 박상진 역사거리에는 박 의사 일대기를 그림으로 전시해 그의 활동을 알리고 있다.


울산시는 또한 지난 2006년 박 의사 생가 일원을 역사공원으로 조성하자는 문화재보존대책을 세우고 계획을 수립했다. 박 의사의 생가를 보존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콘텐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역의 요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가터가 포함된 송정택지개발지구 사업이 부진하면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7월, 지구 지정 11년 만에 송정지구가 개발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역사공원 조성 사업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박 의사는 물론, 박 의사가 몸담았던 대한광복회에 대한 학술대회도 꾸준히 개최해 지역 역사콘텐츠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토론ㆍ제안하고 있으며 박 의사 추모사업회에서 제안된 프로그램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의 간디’ 사상가 함석헌 선생
서울 도봉구, 함석헌기념관 개관


서울시 도봉구는 ‘한국의 간디’라고 불린 함석헌 선생(1901~1989)이 세상을 떠나기 전 7년간 거주한 가옥을 ‘기념관’으로 건립하고 역사와 사상, 독립운동, 민주화, 인권운동에 헌신했던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 함석헌 기념관
지난 3일 도봉구 쌍문동에 개관한 ‘함석헌기념관’은 지난 2013년 유족과 함석헌기념사업회와의 협약을 거쳐 진행해왔다.


전체면적 248㎡ 규모의 기념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전시실과 영상실, 세미나실, 게스트룸 등으로 구성됐다. 전시실에선 함석헌 선생이 소장했던 책과 저서, 생활용품 400여점이 전시돼 있으며 영상실에는 선생의 육성이 담긴 강의 영상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념관을 중심으로 전태일 열사, 가인 김병로, 벽초 홍명희 등 우리나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 유적지가 모여 있어 청소년에게 근현대사를 알리기에 최적의 장소다.


기념관은 함 선생의 사상과 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꾸며져 있다. 함 선생이 생전에 가꿨던 나무와 온실 화초도 그대로 보존했다.


임시의정원 의원 지낸 연병호 선생 
증평군, 생가 인근 항일역사공원


충북 증평군은 독립운동가 연병호 선생(1894~1963) 생가 인근인 도안면 산정길 3천304㎡ 터에 45억원을 들여 ‘연병호 항일역사공원’ 조성에 본격 착수했다.


↑↑ 항일역사공원 조감도
증평군은 이곳에 연병호 선생의 성장 과정, 독립운동 등에 대한 자료를 모은 전시실과 가로 10m, 높이 4.5m 규모 조형물을 설치할 예정이며, 6월 말 공사를 시작해 2016년 4월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항일역사공원에는 연병호 선생 생가와 공원을 연결하는 무궁화 산책로와 잔디마당, 옛 정원형태로 꾸민 기억의정원, 바위 등으로 시대의 아픔을 표현한 광야원, 각종 화초를 심은 정원도 조성된다.


연병호 선생은 일제 강점기 때 중국과 국내에서 대한광복단과 대한민국 청년외교단을 조직해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상해 등에서 20여년간 임시의정원 의원, 한국혁명당 상임위원장 등으로 활약했고, 광복 후 초대와 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연병호 선생의 형인 연병환 선생도 1919년 지린성 용정에서 3.13 만세운동을 후원하다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2개월간 옥고를 치르는 등 형제 독립운동가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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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도 없는 윤현진 선생 생가터


공장으로 둘러싸인 생가 2005년 설치한 표지판 훼손ㆍ방치되다 사라져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윤현진 선생의 생가터.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주택이 자리해 선생이 당시 살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이곳에 지난 2005년 양산문화원이 선생을 기리기 위해 생가터 표지판을 설치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심에서 멀어졌고, 관리 없이 방치된 표지판은 훼손됐다. 그나마 지난해까지 있던 표지판은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 지난해 윤현진 선생의 생가터를 알리던 푯말.
↑↑ 현재는 생가터를 알리는 표지판마저 사라지고 없다.
더욱이 내전마을 일대가 공업지역으로 고시되면서 생가터 주변에 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생가터 뒤편에는 산막일반산업단지 조성 이후 거대한 옹벽이 생겼다.


현재 이곳에 사는 집주인은 생가 복원 등을 위해 양산시에 매각 용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양산시는 생가터 매입에 소극적이다. 주변 환경이 이미 공업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생가를 복원해봐야 윤현진 선생 추모ㆍ선양은 물론 학생 역사교육장소 활용이라는 목적을 이루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국가보훈처 역시 독립운동가의 생가 흔적이 전혀 없는 단순한 생가터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가 복원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양산시 차원에서 생가터 확보는 필요해 보인다. 지금은 주택이지만 곧 공장이 들어설 가능성이 큰 곳이어서 그대로 공업용지로 묻어버리기에는 윤현진 선생 생가터는 지역의 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윤현진 선생 기념관 건립도 검토ㆍ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정동찬 전 양산향토사연구소장은 지난 2011년 본지에 기고한 글에서 부산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벽산 안희재 선생 기념관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소장은 “벽산기념관은 1956년 벽산상회가 있던 자리에 건립해 많은 사람이 그분의 독립정신을 배우고 있다”며 “윤현진 선생이 양산에 의춘의숙을 만들어 후학을 양성하고 의춘양행을 설립해 일본 상권에 대항했는데, 이곳의 자리를 찾아 기념관을 세우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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