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1월 25일, 도미니카공화국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미라벨 세 자매가 무참히 살해당한 역사적 사건이 있는 날이다.
이후 세계 여성 운동가들이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1981년 뜻을 모아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제정했고, 1999년 UN 총회에서 선포하며 해마다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 16일간을 ‘세계 여성폭력 추방 주간’으로 정하고 있다.
독재에 항거한 자매의 죽음과 여성폭력이 무슨 관계가 있어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까지 지정받았을까. 얼핏 보기엔 전혀 관련이 없지만, 독재 항거의 원인이 바로 ‘여성폭력’의 하나인 ‘성폭력’에 의해 시작됐기 때문이다.
여성폭력에 바로 대항하며 여성 인권의 목소리를 높인 이들도 있지만, 사실 실제 피해자들이 이렇게 대처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여성을 향한 폭력은 가정폭력 등 신체적 폭력부터 성폭력, 언어폭력 등 그 유형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양산성가족상담소 김소경 소장은 “여성폭력 중 가정폭력을 비롯해 아동학대, 성추행, 강간이 여전히 가장 빈번히 발생하며 이외에도 아동 대상 성폭력과 학대, 동성 간 성추행 등도 점차 신고 건수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폭력을 당했을 때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소장은 “무엇보다 빠른 신고가 중요하다”며 ‘112’ 또는 여성긴급전화 ‘1366’으로 신고할 것을 강조했다.
신고 후에는 경찰 조사가 이뤄지는데, 이때 경찰서와 상담소가 연계해 피해자를 지원하며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의료비 전액 지원으로 성폭력 피해자 도와ⓒ
우선 크게 여성폭력은 비친고죄(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도 고소ㆍ고발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범죄)인 성폭력과 친고죄(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인 기타 여성폭력(가정폭력, 학교폭력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비친고죄인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수사가 이뤄지며 피해자는 바로 상담소와 연계된다. 지원 역시 상담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기본인 피해자 상담부터 법률ㆍ심리ㆍ의료 등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가장 먼저 피해자 안정을 위해 전문상담사 상담과 함께 의료 지원이 이뤄진다. 이때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반항했다는 증거 수집이나 현재 몸 상태 파악, 산부인과ㆍ치과ㆍ외과ㆍ정신과 등 피해자에게 필요한 모든 의료 지원을 빈부 관계와 상관없이 상담소에서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김 소장은 “지난해만 하더라도 의료 지원비가 약 300만원이었는데, 올해 11월까지만 약 700만원으로 2배 이상 많아졌다”며 “이것만 봐도 지역에서 성폭력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피해자가 자신을 숨기기보다 제2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용기 있게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악순환 끊는 것이 중요
친고죄 가운데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이 바로 가정폭력. 김 소장은 “가정폭력이야 말로 아이들에게 대물림되는 범죄”라며 “피해자의 단호한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정폭력은 물리적인 힘이나 도구를 이용해서 사람을 때리는 신체적 폭력과 직접 때리지는 않아도 폭언ㆍ무시ㆍ모욕과 같은 정신적 폭력 등이 가정폭력 범주에 포함된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기관의 도움을 요청하면 경찰에서 피해 상황을 정리한 후 상담소와 연계해 상담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를 추가 고소ㆍ고발할 건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피해자에게 필요한 각종 지원이 이뤄진다. 의료 부분을 제외하고는 성폭력과 동일하게 지원한다.
특히 상담소에서 이들을 지원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심리 지원이다. 피해자를 위한 미술 치료, 심리 상담 등으로 가정폭력의 악순환을 끊으려는 것.
김 소장은 “상담을 하다보면 아이를 핑계로 가정을 놓지 못하는 피해자가 있다”며 “이혼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위해서 가해자인 남편과 헤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가정폭력에 오래 노출된 아이는 ‘자신의 아빠 같은 사람을 멀리하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가정폭력 분위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아이가 폭력 성향을 띄거나 아빠와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할 수 있기에 피해자인 엄마의 단호한 결정이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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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무너트린 세 자매의 용기↑↑ 도미니카공화국 200페소 앞면에 있는 미라벨 세 자매(왼쪽부터 파트리아, 미네르바, 안토니아) 얼굴. ⓒ
성추행에 대항한 것이 독재항거 운동까지 이어져
‘독재 항거운동’과 ‘여성폭력 추방의 날’,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단어는 ‘성추행’이라는 여성폭력에 의해 연관성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당시 도미니카공화국을 독재했던 ‘라파엘 트루히요’는 파티에 참석한 미라벨 세 자매 중 첫째 ‘파트리아’에 반해 그녀를 성추행하게 됐다. 이에 불쾌함을 느낀 파트리아는 그 자리에서 트루히요의 뺨을 때렸고, 분노한 트루히요가 파트리아 아버지를 연행해 결국 살해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를 계기로 자매는 대학에 들어가며 반독재 투쟁을 시작했다.
비록 자매 역시 1961년 11월 25일, 독재체재 하에서 트루히요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자매의 행동은 도미니카공화국 독재를 몰락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들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지난 2007년 발행하기 시작한 200페소 지폐 앞면(사진)에는 자매의 얼굴을, 뒷면에는 미라벨 자매 기념비 모습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