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4일, 상북면 좌삼리에 있는 좌삼초등학교(교장 김진숙)에 50여명의 사람이 모였다. 지난 1년간 아이들이 텃밭에서 키운 배추를 수확해 김장에 나선 것. 고사리손으로 열심히 김치를 버무리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돕는 교사들, 그런 이들을 위해 맛있는 점심을 준비하는 엄마들까지….
모든 학교 구성원이 총출동해 한바탕 김장을 끝내자 아이들은 “맛있게 잘했죠?”하며 자신들이 만든 김치를 자랑하기 바빴다. 엄마 미소로 아이들을 보던 학부모와 교사들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며 아이들을 칭찬하니 아이들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폈다. 학생 수가 많은 도심 학교에서는 보기 힘든 훈훈한 광경이 펼쳐졌다.
ⓒ |
학생이 적은 대부분 시골학교가 그러하듯 좌삼초등학교도 오래전부터 ‘폐교’ 이야기가 나왔다. 상북면에만 학교 3개가 있었고 그중 학년마다 한 학급씩만 있던 작은 학교가 폐교될지 모른다는 소식은 사람들에게 그리 충격적인 일도 아니었다.
물론 아직도 좌삼초는 폐교 위기다. 2008년에 장애아동을 포함해 67명이었던 학생이 양산희망학교 개교로 인해 현재는 30명으로 줄어들었다. 경남도교육청이 정한 폐교 기준인 20명보다는 많지만 언제 폐교 이야기가 다시 나올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좌삼초 공동체는 이곳이, 이 지역에 꼭 필요한 학교임을 의심치 않고 좌삼초 살리기에 힘을 모으고 있다.
교사, 학생 등 모두가 한 가족
“좌삼초는 등교가 즐거운 학교”
김진숙 교장은 좌삼초 구성원 모두를 ‘가족’이라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1학년 4명, 2학년 3명, 3학년 4명, 4학년 6명, 5학년 8명, 6학년 5명으로 전교생이 30명인 소규모 학교이기에 전교생 모두가 서로의 언니이자 형, 동생이다.
가족 같은 학교 분위기는 교육과정에도 큰 힘이 된다. 좌삼초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인성교육’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1학년부터 6학년이 학교에서 형제, 자매로 지내는 ‘좌삼 육남매’ 동아리 활동을 비롯해 전교생이 분기별로 친구들의 생일을 직접 축하해준다.
![]() |
ⓒ |
또 아이들은 칠판을 바라보고 교사는 교탁 앞에서 수업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 옆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수업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이 때문에 여느 초등학교 수업시간과는 다른 대화와 소통이 있는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김 교장은 “학급 내 학생 수가 적어 교사와 학생의 일대일 수업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라며 “아이들은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교사도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을 중점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학력 미달 학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 오는 것을 좋아하고 즐겁게 생각한다”고 자랑했다.
학부모도 학교 위해 기꺼이 봉사
아이들 안전한 통학까지 책임져
학교 활동에 교사와 아이들만 참여한다고 생각하면 오산. 좌삼초는 학부모도 학교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며 학교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골학교라 학교 활동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데, 이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 바로 학부모들이다.
학부모들은 ‘좌삼초 학부모봉사회’를 구성해 주말이면 학교 시설물 관리부터 학교에 필요한 지원을 앞장서 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는 학부모들이 나서서 아이들 통학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외진 곳에 있기에 통학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편의를 주기 위해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차량 운행을 하기 시작했다.
김민영 학부모회장은 “아무래도 좌삼초에 오기 꺼리는 부분 중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게 외진 곳에 있어 통학이 어렵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그런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학교라는 걸 저희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이런 단점을 해소해서 학교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학부모들이 힘을 모으게 됐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학교에 힘을 쏟는 만큼, 학교도 학부모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학부모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학부모가 더 학교에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학교 운영에서도 학부모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있다. 이렇게 학교와 학부모가 서로 소통하며 또 하나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 |
ⓒ |
30명 학생을 위한 ‘맞춤형 교육’
방과후학교, 교실 밖 학습 활성화
시골학교이기에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할 것으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좌삼초 교육 프로그램이야말로 자랑할 거리가 가득한 보물인 셈. 좌삼초는 소규모 시골학교 특수성을 완벽히 살려 맞춤형 학습을 진행한다.
‘좌삼 행복교육 알리미’를 분기별로 가정에 배부하며 아이들 학습 정도를 가정에서 알기 쉽도록 해준다. 자연스럽게 가정에서도 아이들 학습을 도울 수 있게끔 유도하고 있다.
![]() |
ⓒ |
전교생 모두가 참여하는 방과후학교도 좌삼초이기에 가능하다. 다른 학교에선 방과후학교도 수익자 부담이기 때문에 아무리 소규모 학교라 할지라도 전교생이 참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좌삼초는 교육청 지원금과 학교 예산을 별도 편성해 모든 학생이 무료로 방과후학교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영어, 컴퓨터, 스포츠부터 미술, 풍물, 가야금, 연극, 바이올린 등 아이들의 꿈과 끼를 찾아주기 위해 과목도 다양하다. 내년에는 다이아몬드CC의 도움을 받아 교내 골프장 설치가 이뤄질 예정이라 어린이 골프 교실도 이뤄진다.
김성미 교감은 “인성 교육, 학과 교육과 함께 좌삼초에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교실 밖 체험학습’”이라며 “체험학습 또한 정규 교육과정에 편성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수익자 부담 없이 운영하고 있으며 진로체험학습부터 운동장 캠프 운영, 외부 강사 초청, 여름ㆍ겨울 계절 체험학습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 |
ⓒ |
자연에서 배우고 뛰놀며
건강한 좌삼 어린이 양성
자연 속에 자리 잡은 학교다 보니 아이들 역시 자연에서 체험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닫는다. 봄이면 학교 텃밭에 다양한 채소 씨를 뿌리고 여름이면 풀을 뽑고 가을이면 농작물을 수확해 겨울이면 수확한 작물을 다른 이와 나누며 아이들은 ‘착한 농부’가 된다.
김민주 운영위원장은 “아이들이 텃밭에서 키운 싱싱한 채소로 12월이면 전교생부터 교직원, 학부모 모두 참여해 김치를 담그며 정을 쌓는다”며 “함께 키우고 수확하는 기쁨으로 아이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는 물론 직접 담근 김치를 다른 이웃과 나누는 ‘나눔’의 태도까지 배울 수 있고 교직원과 학부모는 이 시간을 통해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전했다.
김진숙 교장은 “좌삼초는 학교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어울리는 행복 공동체”라며 “좌삼초가 사라지지 않고 이 행복이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서 폐교 위기를 헤쳐 가겠다”고 말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