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웅상종합사회복지관 2층 강의실에서 서툰 한국말이 새어 나온다. 서툰 말로 하나씩 설명해가는 것은 다름 아닌 일본어. 강의실 문을 살짝 열어 살펴보니 10명 남짓한 학생 앞에서 일본어 회화를 가르치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웅상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본어 재능 기부를 하고 있는 누노무로 토모코(43, 평산동) 씨였다. ⓒ
강의실을 살펴보니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 어르신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간단한 일상 대화를 일본어로 물어보고, 대답한 것에 잘못된 말은 없는지 다시 알려주는 방식으로 강의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열심히 하시는 걸 보니까 정말 뿌듯해요. 제가 오히려 이분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가 재능 기부를 하게 된 것은 한국에서 사귄 또래 엄마들 때문이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자신의 시간이 생기지만, 정작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엄마들을 위해 일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한 것. 또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웅상종합사회복지관과 가까워 복지관에 장소 요청을 하니 기꺼이 들어줘 일본어 강의를 할 수 있었다.
“2012년부터 결혼이주여성 난타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복지관에 자주 왔어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저처럼 한국에서 사는 같은 상황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죠. 그래서 좋아하던 곳이었는데, 제가 일본어 강의를 한다고 했을 때 기꺼이 장소까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강의하며 한국어 실력도 키우고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도 가져
엄마들과의 소모임이 시작이었지만, 토모코 씨 강의가 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나 자연스럽게 복지관 정규 프로그램이 됐다. 쉽고 친근하게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말을 알려주니 수강생 반응도 좋았다. ⓒ
“다들 열심히 배우려고 하니까 저도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한국말이 서툴러서 듣는 분들이 제대로 이해하는 지 정말 궁금했어요. 저는 일본어가 모국어니까 당연한 건데, 이 당연한 걸 어떻게 한국말로 설명할 지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저도 한국어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조금 서툴러도 수강생들이 이해하고 도와주고 하니까 실제로 제 한국말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무엇보다 토모코 씨를 뿌듯하게 만드는 것은 수강생들의 태도. 수강료 자체가 무료라 굳은 결심 없이는 오래 다니기 어려운데, 똘똘 뭉쳐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토모코 씨 역시 강의 준비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강생 중에 총무님이 저보다 다른 분들을 잘 챙겨주세요. 같이 밥도 먹고 이웃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시거든요. 또 3개월 전부터 수업을 듣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수업에 대한 열정이 있어요. 솔직히 복습까지 하고 오는 분은 없거든요. 근데 어르신은 매일 책을 보고 혼자 연습한다며 책을 보여주셨어요. 그분이 자극이 돼 저도, 수강생도 열심히 공부합니다”
일본에 편견 가진 사람에게
정확한 정보 알리고 싶어
토모코 씨는 재능 기부를 하기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으로 일본에 대해 한국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모국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역사를 한국에서 알게 된 것이다.
“일본인으로서 한일 관계나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반성도 하게 되고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일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습니다. 또 제 아이들에게 잘못된 역사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다는 것도요”
토모코 씨는 앞으로 계속 강의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또 가능하다면 한국사람에게는 일본을, 일본사람에게는 한국을 알리는 통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의실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 일본을 정말 나쁘게 바라보는 분이 있어요. 그런 분은 일본의 한 부분만 알고 전부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분께 일본에 대해 정확하게 알리고 싶어요. 제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저라도 노력하면 한국과 일본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