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염색도 화려하고 개성 있다는 걸 알리고파”
자연 소재를 통해 색을 뽑아내고 그 색을 입던 ‘천연염색’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분야가 아니다. 천연염색 공방부터 천연염색 동아리 등 천연염색을 배울 수 있는 곳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천연염색한 옷은 고가라는 인식을 넘어 생활 의복으로 자리 잡았다. 천연염색에 관심을 가지는 연령대도 점차 낮아지며 천연염색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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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천연염색이 일상에 자리 잡은 만큼 천연염색에 대한 대중의 시각 역시 정형화되기 시작했다. 천연염색을 통해서는 푸른 쪽빛과 나무와 같은 고동색 등 단정하고 차분한, 그러나 조금은 칙칙하다고 느끼는 색만 얻을 수 있다는 틀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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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깨주고 싶어 천연염색 공부에 몰두한 사람이 있다. 북정동에서 공방 ‘정각원’을 운영하는 이정화(52) 대표가 그 주인공. 이 씨는 천연염색으로도 충분히 원색적이고 화려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씨 작품을 보면 화려하고 남들이 도전하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요즘 천연염색을 보면 비슷한 느낌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저만의 색과 저만의 기법을 만들려고 해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아! 이런 색이 천연염색을 통해서 나올 수 있구나’하도록 말이에요”
다도 시작으로 규방공예, 천연염색까지
이 씨는 원래 다도를 배우던 사람이었다. 우리 전통 차를 익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통의 미(美)가 담긴 규방공예에 관심이 갔다. 규방공예를 배우고 소품을 만들다 보니 소품 재료가 되는 염색 천에 흥미가 생겼다. 남들이 다 쓰는 천이 아닌, 나만의 색을 담은 천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어졌다.
“염색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건 6년쯤 됐어요. 강의를 통해 배우기도 했지만 제가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 곳은 전문 서적이죠. 전문가도 많이 만나러 다녔지만, 책에서 무엇보다 정확한 이론을 배웠어요. 그래서 알게 됐죠. 사람들이 ‘물이 잘 빠진다’고 생각한 빨간 빛이 실제로는 천을 씻고 말리고 염색하는 과정, 시간과 물 온도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라는 걸요”
책에서 큰 도움을 받은 이 씨는 자신만의 색을 찾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일본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인도를 방문해 천연염색 원료를 수출하는 전문가를 찾아 새로운 염색 기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발견한 그만의 염색법이 바로 ‘친환경 쪽 환원법’. 파란빛을 내는 식물인 쪽을 추출했을 때 추출물이 공기와 만나면 불용성(액체에 녹지 않는 성질)이 되는데, 이를 수용성(물에 잘 녹는 성질)으로 바꾸기 위해 천연 효모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한 달에 한 번, 특강 형식으로 대중에게 알린다. 내 기법이라고 해서 나만 가지고 있기보다,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천연염색이 더 발전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 이 씨가 인도에서 직접 공수한 염색 재료들. 이 재료로 인도풍 염색 기법을 연구할 예정이다. ⓒ
최근에는 6개월간 연구한 끝에 천연염색 울 니트를 완성해 주목을 받았다. 울은 마찰에 약하고 세탁에 의해 변형될 위험이 큰 소재라 염색을 시도했다가 성공한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 씨가 울 염색에 성공한 것이다.
“실 자체를 염색해서 니트를 짰어요. 여러 방식으로 도전해봤지만, 실에 직접 염색을 해 옷을 편집하는 것이 방법이더라고요. 수차례 실패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만의 것을 완성했을 때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앞으로도 이런 색다른 도전을 이어갈 겁니다”
↑↑ 이 씨가 공방에서 자신의 제자에게 염색 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매달 진행하는 특강을 비롯해 1대 1 수업 등으로 자신의 색을 전파하고 있다. ⓒ
이 씨는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천연염색에도 왕도가 없다며 앞으로 계속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제 색을 좋아해 주는 분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천연염색을 선보일 것”이라며 “기회가 생긴다면 해외에서도 제 작품을 선보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