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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피부색, 출신 아닌 인격으로 판단했으면”..
기획/특집

“피부색, 출신 아닌 인격으로 판단했으면”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6/03/22 14:44 수정 2016.03.22 14:44
다문화 여성들, ‘차별’에 대해 말하다

3월 21일, UN이 정한 ‘세계 인종 차별 철폐의 날’
무시, 비하 등 일상에서 인종 차별 빈번하게 발생
“인종, 문화, 종교 등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됐으면













ⓒ 양산시민신문




지난 21일은 UN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196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에게만 신분증 소지를 의무화시킨 인종차별적인 법률인 ‘패스 로우’(pass law)가 제정되자, 이에 반대하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 중 69명이 경찰의 발포때문에 사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UN은 1966년 이 비극을 기억하고 인종주의와 차별 철폐를 위해 3월 21일을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로 지정했다.


이날이 지정된 지 50주년이 됐지만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정 아동,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현재 진행형이다. 피부색과 인종, 언어, 종교, 문화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들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17일 다문화 여성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도티란(30, 베트남, 양산 거주 8년차)
 “아이들 차별 받을까 걱정”




도티란(30, 베트남) 씨는 7년 전, 남부시장을 찾았다가 차별을 당한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말도 잘 못할 때였어요. 시장에서 3천원이라고 적힌 가격표를 보고 오이를 샀는데 아저씨가 5천원 한 장만 주는 거에요. 그래서 ‘아저씨 이거 3천원인데요’라고 말하니까 ‘뭐! 그냥 가!’하며 저를 무시하더라고요. 너무 놀랐지만 계속 이야기했더니 2천원 두 장을 던졌어요. 자존심이 상했죠”


양산 정착 초창기였던 그때, 도티란 씨가 겪은 일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다른 다문화 여성들도 특히 정착 초기 시절, 서툰 한국말과 다르게 생긴 외모로 눈총을 받은 일이 많다며 말을 이어갔다.

















제니퍼(29, 필리핀, 양산 거주 5년차)
 “외국인에 대한 무시 심해”



제니퍼(29, 필리핀) 씨는 특히 피부색이 다르면 누구나 반말을 하고 인종차별적인 말을 쉽게 한다고 말했다.


“가게에 가도 주인아주머니, 아저씨가 무조건 반말해요. 나보다 어린 나이인 한국 사람에게도 존댓말을 하면서 저한테는 반말로 ‘너희 나라 어디야, 뭐 살 건데’하고 물어요. 하루는 너무 기분 나빠서 똑같이 했어요. ‘반말 하지마. 이렇게 하면 아저씨도 기분 나쁘잖아요’하니까 그제야 ‘미안해요’라고 말했어요”

















이민(40, 중국, 양산 거주 19년차)
 “과도한 관심과 시선도 차별”



심지어는 가족 사이에서도 인종 차별적인 말이 나올 때가 있다며 이민(40, 중국) 씨가 입을 열었다. 이민 씨는 중국인인 그에게 시어머니가 ‘중국 사람은 왜 저렇게 시끄러운지 모르겠다’며 말했을 때 당혹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인 친구가 집에 놀러왔을 때 일이에요. 중국어로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그런데 친구를 보고 시어머니가 ‘중국인은 시끄러워 싫다’는 말을 하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며느리도 중국 사람인데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지?’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외에도 일상에서 겪는 차별은 많다. 자국 나라 음식을 했을 때 향신료 냄새가 독하다며 그 음식을 하지 말라는 항의를 받거나 고향 친구들끼리 있을 때 모국어로 얘기한다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는 허다하다. 버스를 타도 자신의 옆에는 사람이 오지 않고 지나갈 때마다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면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자녀가 받을 차별이 가장 걱정

이들의 공통된 고민은 ‘아이들’. 아이들이 혹시나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크다.

















박윤하(35, 우즈베키스탄, 양산 거주 13년차)
 “다문화 당당하게 드려내야”



박윤하(35, 우즈베키스탄) 씨는 아이에게 먼저 당당해지라는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은 그래도 생김새나 피부색이 한국 사람과 비슷해 겉으로는 크게 차이 나지 않아요. 그래도 우리 가족이 다문화가족인 건 맞으니까 아이한테 엄마는 외국인이라고 말하라고 하죠. 아이도 숨기지 않고 말하고요”


도티란 씨는 피부색이 진하고 이국적으로 생길수록 아이도 피해를 본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제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데, 저랑 평소에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근데 하루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숨기더라고요. 알고 보니 친구가 아이에게 ‘너희 엄마 외국인이지? 엄마 바보 아니야?’라고 했다더라고요. 아이는 ‘엄마 바보 아니라고 말했어. 나는 괜찮아’하는데 이미 상처를 받았을 거라 생각해요”


이민 씨는 교사의 과도한 관심도 아이에겐 차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 아이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보다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한 번 더 관심을 가지는 게 오히려 부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그냥 다른 아이와 똑같이 대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선생님이 아이에게 관심을 쏟아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다문화가정 아이라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대우한다면 다른 아이들에겐 역차별이 되고, 우리 아이에겐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거든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 필요해

다문화 여성들은 입을 모아 “서로 다름을 인정해 달라”고 말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종교와 문화가 다르다고 당신보다 낮게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고향이 다르다고 해서 양산시민이 아닌 건 아니에요.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양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최연숙 센터장은 기성세대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람도 외국에 나가면 ‘황인종’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경우가 있어요. 역지사지 마음으로 외국인을 바라봐야 하는데 아직도 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있죠. 외국인들이 차별을 받았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인식 개선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해요”


이주민에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식으로, 일방적인 한국 문화와 사회 적응을 강요하며 이주민 출신 국가 문화나 생활 습관들을 후진적이고 잘못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인식들도 바꿀 필요가 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서 당신만 변하라고 하는 것은 차별을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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