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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
ⓒ 양산시민신문 |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가족의 정의는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이다. 즉 결혼을 중심으로 이뤄진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 대신 ‘식구(食口)’라는 말을 즐겨 쓴다. ‘함께 밥을 나눠 먹는 사이’라는 의미다.
영어에서 가족을 뜻하는 ‘family’의 어원은 라틴어 ‘famulus’로 하인 또는 노예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고대 로마는 가장이 처나 자식, 노예 등 가족구성원을 모두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던 가부장제 사회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가부장제도 아래 가장이 가진 영향력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가족은 공동체 기본단위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가족이 공동체 단위로 자리매김한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가족을 구성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결혼제도가 정착된 것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부일처제라는 결혼제도를 가족 구성 기본으로 여기게 된 일은 근대 이후에서나 일반화됐다. 여전히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결혼제도를 인정하고 있는 나라나 민족도 있다.
대략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가족’의 정의는 끊임없이 변해왔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가족은 노동공동체였다. 가족은 기본적인 사회 생산단위였고, 사회적 부를 대물림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미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 가족은 세상풍파를 막아 주는 울타리로, 언제나 쉴 수 있는 쉼터로, 내일을 준비하는 터전으로 소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 가족을 신앙처럼 절대화해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는 수단이 되질 않길 바라는 의미다.
‘트윈스터즈(Twinsters)’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얼마 전 개봉했다. 영화로 공개되기 전 뉴스로 먼저 알려진 이야기기도 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각자 살고 있던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SNS를 통해 서로를 확인하고 만나게 됐다는 사연이다.
미국 LA에서 살고 있는 사만다 푸터먼은 2013년 런던에 있는 아나이스 보르디에로부터 상상치도 못한 메시지를 받는다. 얼마 전 아나이스는 SNS 동영상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고 자신이 쌍둥이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내용이다. 사만다가 SNS 동영상 계정에 올린 영상을 우연히 본 아나이스의 친구로부터 두 사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쌍둥이 자매가 지구 반대편에서 25년간 살아온 사연은 이렇다. 두 사람은 1987년 부산에서 태어나 이듬해 각각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을 가게 됐다. 그 후로 서로 존재를 꿈에도 모른 채 살아오다 SNS를 통해 재회한 것이다.
주인공인 사만다가 직접 연출한 영화는 ‘가족’이라는 말 속에 담긴 편견을 ‘입양’이라는 소재로 풀어가고 있다. 두 사람은 생모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지만 생모는 자신들을 부정하며 만나지 않는다. 아마 다른 가정을 꾸린 생모에게 자신들 존재는 잊고 싶은 과거인지도 모른다. 대신 두 사람은 입양 전 자신을 돌봐줬던 대리모를 만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무렵 두 사람은 생모에게 편지를 쓴다.
사만다 목소리를 빌려 담담하게 읽어가는 편지에서 사만다는 “가족의 정의는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모두 5명의 어머니가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생모와 그들을 입양한 미국과 프랑스 어머니, 그리고 입양 전까지 보살펴준 대리모들. 편지에서 그들은 모든 어머니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끝내 만나기를 거부한 생모에게조차 이런 멋진 삶을 살 기회를 줘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만다가 가족의 정의는 없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신앙처럼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입양가족은 외면 받아 왔다. 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 자라는 것이 정상이고 나머지는 비정상으로 여기는 풍토는 최근 편부, 편모, 재혼가정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단일민족이라는 신념은 이미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적절하지 않다. 1인 가족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가족 형태는 다양해졌다. 심지어 일부 나라에서는 동성결혼까지 합법화할 정도다.
누구나 다 나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처럼 위험한 일이 없다. 내가 가진 생각이 단 하나 진리라는 태도는 소중한 가족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당장 내 주위에 있는 가족을 둘러보자. 아버지가 생각하는 가족, 어머니가 생각하는 가족, 자식이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가 모두 다를지 모른다. 소통하지 않고 지금 가진 생각이 영원불변할 것이라 믿는 우리에게 가족의 정의는 없다.
가족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