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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고목<枯木>에 새 생명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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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枯木>에 새 생명을 새기다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6/06/07 09:14 수정 2016.06.07 09:14
■ 불상 조각 43년 만에 첫 개인전 ‘깨달은 고목’ 연 오윤용 조각가
공부가 싫어 학교 대신 조각 공장에 취직
어깨너머 배운 솜씨로 완벽한 불상 만들어
“자연에서 배웠고 자연 같은 작품 꿈꾼다”
오는 30일까지 하북 ‘한점갤러리’서 전시

누구에게 배워본 적도 없다. 남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 했을 뿐인데 남들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 나왔다. 그야말로 ‘타고난 조각가’였다. 그렇게 오윤용(56) 씨는 43년이란 시간을 불상 조각에만 바쳤다.















ⓒ 양산시민신문



오 씨는 굳이 대중에게 자기 작품을 알리지 않았다. 때가 되면 다 알아보리라, 그의 작품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자신을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TV도, 라디오도 없는 영축산 속에서 묵묵히 나무만 깎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하북 통도사 산문 앞 ‘한점갤러리’에서 첫 전시회를 열게 됐다. 우연히 그의 작품을 본 한점갤러리 민경미 대표가 제안한 것이다. 준비가 안 된 상태라 고민했지만, 민 대표와 함께 오 씨 작업장을 찾은 미술평론가 윤범모 가천대 교수와 수묵화가 소산 박대성 화백이 그에게 새로운 자극을 줬고, 오 씨는 힘을 얻었다.


“미술계에서 아주 유명하신 분들이죠. 제가 만나 뵐 수나 있을까 싶은 분들이 영축산 자락까지 와 제 작품을 극찬해주시니 제 조각 인생에 그것보다 더 귀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학교 벗어나 부산으로 간 15살 소년

오 씨가 조각을 배우게 된 건 15세. 학교에 있어야 할 시기지만 그는 세상에서 공부하기가 제일 싫었다고 고백했다.


“책 보는 거, 선생님 말씀 듣는 거 다 싫었습니다. 재미도 없고. 그래서 맨날 하던 게 그림 그리고 낙서하고 이상한 거 만들고 그랬죠. 선생님들이 보기에 딴짓하는 거였고요. 그래서 몇 대 맞기도 했는데 그게 싫어서 부산으로 도망갔죠”


처음 만난 부산, 큰 도시는 오 씨에게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차도 부산에서 처음 봤죠. 꼬마였는데도 일 할 자리도 있었고요. 일본에 불상을 깎아 수출하는 회사였는데 남들 하는 거 보고 했더니 잘한다고 칭찬하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죠”

자연이 가장 위대한 스승임을 깨달아

오래된 불상을 보고 모방하는 게 전부였지만 그가 만든 나무 불상은 날이 갈수록 입소문을 탔다. 많은 절에서 불상을 샀고 불상으로 인해 많은 스님도 만나게 됐다.


“수월 큰스님과 혜각 스님께 좋은 이야기도 듣고 살았죠. 모든 스님이 강조했던 게 ‘자연’이었어요. 인간이 아무리 위대한들, 자연 앞에서는 미비한 존재라는 말이었죠”


그 후 모방 작품 만들기를 그만뒀다. 예전처럼 불상 조각이 전혀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스님들 말에 따라 조금이라도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산을 올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시와도 멀어지고 한적하지만,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영축산 자락에 터를 잡게 됐다.


“이곳에 온 지도 30년이 가까워지고 있네요. 너무 익숙해졌나 싶어 다른 곳으로 떠나보려고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자꾸만 영축산에 머물게 됩니다. 아직은 이곳 자연에서 공부해야 할 게 남았나 싶기도 하고…”

5년 전부터 죽은 나무로 불상 만들어

자연에서 배우기 위해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죽은 나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 의해 죽임당한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에서 생을 마감한 나무, 그것으로 조각해야겠다는 결심을 5년 전 하게 됐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나뭇가지에서 새로움을 봤다. 오 씨가 해왔던 획일적인, 늘 하던 조각이 아니라 새로운 뭔가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죽은 나무에 칼을 대니 그동안 스님들이 말씀해주셨던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실천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연에서 살다 간 나무를 마주하면 그를 어떻게 조각할 것인지 영감을 받거든요. 그렇게 늘 하던 것을 탈피한, 저만의 시도를 할 수 있었고요”


오 씨는 전시회를 하는 지금도 사실 민망하다고 했다.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이었기에, 부족함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전시된 작품보다 훨씬 많은 작품이 오 씨 작업장에 숨어 있다. ‘이런 작품이 있다’ 세상에 자랑하기보다 먼 훗날 영축산 자락에 쌓인 불상을 보고 ‘후세가 이런 작품도 있었구나, 이게 자연이구나’하는 깨달음을 얻는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앞으로도 전시회 같은 걸 또 하는 일이 있을까 싶어요. 한 번 해봤으니 된 것도 같고…. 아직 칼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이거다’하는 작품이 없어섭니다. 누구나 보기만 해도 가르침과 깨달음을 느낄 수 있는 불상, 제가 죽기 전에는 그런 작품이 꼭 나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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