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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
ⓒ 양산시민신문 |
지난주 휴가 기간 동안 가족과 함께 피서지로 떠났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최근 일어났던 대형교통사고가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들 더위를 피해 나온 차량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는 가운데 가속페달을 한껏 밟으며 차량 사이를 요리조리 추월하는 차에게 육두문자를 혼자 날리기도 하고, 내 차 뒤꽁무니에 바짝 붙어 위협하는 차를 만나면 괜히 식은땀이 나기도 했다.
나부터 안전속도와 거리를 유지하면 되겠지라는 생각도 막상 이유 없이 횡단보도를 덮쳐 일가족을 사망하게 한 사고를 떠올리면 부질없이 느껴지곤 한다. 여행 내내 운전할 때마다 예민해져 있는 나에게 핀잔을 주는 아내와 괜한 말다툼만 늘었다.
함께 떠난 여행에서 조금 있으면 두 돌이 되는 조카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안길 때 “에구, 귀여운 녀석”하며 속으로 흐뭇하게 바라보던 시선에 4살짜리 딸아이를 온종일 굶기고 죽음까지 이르게 한 비정한 엄마 이야기가 함께 들어온다.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 이야기는 쉽게 믿기 어려운 만큼이나 어처구니없이 자주 들려온다.
휴가지에서 한껏 차려입고 갖은 자세로 사진을 찍어 달라 요구하는(?) 아내 앞에서 땀을 삐질 흘리며 충실히 사진기사 노릇을 하고 돌아서고 난 뒤 한 남성이 원룸 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 잠자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생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느끼는 공포가 정확히 어떤지 남자인 내가 다 알 수 없지만 사진 속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더운 날씨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나만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가족들 모두 행복한 얼굴이다. 아이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와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학원 화장실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생 이야기가 떠올랐다. 주변에 불행한 이들보다 행복한 이들이 훨씬 많은데 왜 그 아이는 세상을 버려야 했을까? 갑작스레 튀어나온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바람에 순간 스스로 당황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부모님께 드릴 젓갈과 과일을 조금 샀다. 함께 모시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에 지역특산품이라도 맛보여 드리는 게 좋을 듯싶어 아내와 함께 좋은 물건을 고르고 있자니 김영란법 통과로 농수축산물 업계에 타격이 우려된다며 호들갑 떠는 언론이 생각나 얼굴이 붉어졌다.
나 역시 언론인으로 그동안 누려온 특혜가 무엇이었나 되돌아보는 성찰이 부족했다는 사실이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에 3만원으로는 품위 있는 식사가 어렵다는 어느 정치인 말은 점심으로 6천원짜리 정식을 먹을까, 7천원짜리 김치찌개 정식을 먹을까 고민하는 내가 품위 있는 언론인이 되기는 애당초 글렀구나 하는 씁쓸함까지 더해진다.
생각이 유난히 많았던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고 난 뒤 아내와 함께 장을 보러 가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땀 흘리며 집회를 이어가는 모습을 봤다. 매주 수요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당장 자신들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어 보이는 일에 열심인 사람들.
양산이 사드 배치 후보지로 거론될 때만 해도 양산시민 대부분이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경북 성주로 사드 배치지가 결정되고 난 후 관심이 멀어진 게 현실이다. 그 가운데 성주군민들은 지금도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에 ‘외부세력 개입’이라는 불순한 꼬리표를 붙여 성주군민을 더욱 외롭게 하는 정치권과 언론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 외부세력은 ‘사드’ 밖에 없다는 한 개그맨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뭣이 중헌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독재자 아버지 죽음을 거론하며 받아들이기 힘든 소통을 강요하고 있다. 가슴 시릴 만큼 아프게 부모님을 잃었다는 대통령 마음을 몰라주는 우매한 국민으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다.
그런데 횡단보도에서 순식간에 생명을 잃은 일가족, 어렵사리 휴가를 떠났다 깜깜한 터널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젊은이들,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사회면 기사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 아이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에 노출돼 오다 불안한 삶을 끝내 불행하게 마친 수많은 가슴 시린 죽음은 누가 기억해야 하는 걸까?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되는 여름, 열어젖힌 창문 너머로 매미 소리가 쏟아져 들어온다. 국민을 개, 돼지에 비유한 한 공무원처럼 지금 아우성치는 국민 목소리를 정치권과 기득권 세력들은 매미처럼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의미 없는 소리로 시끄럽게 귀를 어지럽히는 매미 소리, 그 또한 여름 한 철이라 곧 지나가리라.
잠들기 전 더위를 잊기 위해 샤워를 하고 선풍기 바람 앞에 헐벗은 채로 있다 견디지 못해 에어컨을 틀어볼까 고민하는 여름밤. 에어컨을 틀기 전 누진세 걱정에 전기계량기 한 번 들여다보라는 아내 성화에 그깟 전기세 얼마나 나온다고 가진 건 돈밖에 없다는 허세를 부리고 나서야 마지못한 듯 전기계량기 한 번 들여다보고 에어컨을 틀어본다.
에어컨 실외기가 요란하게 돌아가자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지만 몸을 계속 뒤척이는 것은 아직 채 식지 않은 열기 탓일까 아님 조금 전 들여다본 계량기 숫자가 떠올라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