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국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힙합은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서 ‘비주류’로 손꼽히며 냉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힙합을 주제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중 관심을 받으며 대중음악계 판도를 바꿨다. 힙합과 랩이 그야말로 스타일이자 유행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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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양산에서 4년차 래퍼로 활동하고 있는 조슬기(30, 물급읍) 씨는 그럼에도 아직 힙합은 비주류 문화라고 말했다. 공연할 기회와 힙합 레이블(lable, 음반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모인 집단)이 많은 서울이나 부산 위주로 문화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양산에도 힙합 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몇몇은 서울에 올라가서 실제로 활동하고 있고요. 양산에도 랩 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여건이 안 되다 보니 포기한 친구들도 있고…. 많이 남아있지는 않죠”
양산 힙합을 ‘불모지를 넘어 사막’라고 표현할 정도지만, 그래도 조 씨가 양산에서 힙합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개척’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힙합 듣기를 좋아했던 조 씨가 래퍼로서 활동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제 기억으로는 저랑 당시에 같이 랩 했던 친구들이 이마트 맞은편에 만남의 광장인가요? 거기서 처음 버스킹(거리공연)한 걸로 기억해요. 그 전에는 양산에서 그런 공연을 하는 걸 보지도, 듣지도 못했었거든요. 양산에서 제대로 된 공연을 해보진 못했지만 기억에 많이 남네요”
그는 멋있기 때문에 힙합을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보이는 멋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위해 도전하는 것. 남과 똑같아지지 않기 위해 시도하며 자유롭지만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존중하는 정신이 힙합의 멋이라는 것이다.
“디스(Dis, Disrespect(무례)의 줄임말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힙합 문화 중 하나)하고 허세 부리고 이런 모습이 미디어에서 많이 노출되니까 힙합과 래퍼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도 많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힙합은 그게 다가 아니거든요. 저는 제 삶에 대한 생각과 진솔함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가사를 쓰고 믹스테이프(Mixtape, 원곡이 있는 비트에 자신의 랩을 얹는 곡, 주로 자신을 알리기 위한 용도로 많이 쓰인다)를 내고요. 랩을 하는 건 제 삶을 표현하는 도구고 장치죠”
조 씨는 어릴 때를 공부보단 놀기에, 사고 치기에 바쁜 학생이었다고 회상했다. 바른길로 가라고 인도하면 엇나가 더 삐딱해지는, 소위 ‘문제아’였다는 것. 하지만 그가 힙합을 하면서 자연스레 공부하고 자신에 대해, 또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자기 고백’과 ‘진실함’이 특성인 힙합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메모가 일상이 됐어요. 좋은 글, 괜찮은 단어를 보면 적어놓고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 영어사전이랑 국어사전을 펼쳐요. 학생 때도 안 했던 짓인데…. 랩 하며 여러 가지 배우는 게 많아요”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바로 ‘나이’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 씨는 나이로 대표되는 ‘편견’에 갇혀 자신을 판단하는 시선이 싫다고 했다. 이제 30대에 접어든, 게다가 한 가정의 가장인 조 씨가 힙합을 한다는 것에 대해 ‘철없다’고 말하는 게 불편하다는 것.
“‘너는 30대니까 이제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해’, ‘가장이니까 그에 맞는 책임을 다해야 해’라는 이야기를 안 듣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직장에 제가 힙합 한다는 이야기를 제가 먼저 꺼내지도 않았고요. 물론 우연히 공연하는 저를 본 직장동료로 인해 밝혀지긴 했지만, 부모님을 비롯해 아내와 딸, 주변인도 저를 응원하고 믿어줍니다.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해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있고요. 제가 랩을 한다고 해서 현실을 등지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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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라는 음악 장르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편견을 사기 쉬운 현실이지만, 조 씨는 이제 당당하게 ‘회사는 직장일 뿐, 내 직업은 래퍼’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멋과 재미, 흥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제 업입니다. 제가 메이저 무대로 나가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양산에서 랩 하면서 잘하는 동생들, 하고자 하는 동생들을 지지해주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조력자로만 남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해 디지털 싱글 ‘Eg o’를 발매하고 올해 초 케이블 ‘쇼미더머니 5’에 도전할 정도로 래퍼로서의 활동에도 욕심을 내고 있다.
“쇼미더머니도 합격을 목표로 간 건 아니에요.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가족과 주변인에게 보여주고 싶었죠. 덕분에 심사위원이었던 사이먼 디 씨 앞에서 랩으로 양산 출신임을 당당하게 말하기도 했고 조언도 들었죠.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에 멋진 곡 딱 하나를 내고 영상 작업까지 마칠 예정입니다. 멋있게 해내고 싶어요”
양산 힙합을 대표하는 사람이자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앞장서는 조 씨는 장르를 넘어 다양한 음악과 젊은 문화가 결합한 공연을 양산에서 꼭 한번 진행하고 싶다는 목표도 밝혔다.
“기회만 된다면 장르를 넘어서 함께 놀 수 있는 사람들과 공연을 하고 싶어요. 랩도 좋고 밴드도, 댄스도 다 모여서 풍성하게요. 저와 같은 꿈을 꾸는 분이 분명 양산 어딘가에 또 있을 거니까 어렵진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 날이 오면 그런 문화를 편견에 두지 말고 나이 상관없이 모두가 즐겨주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