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四面楚歌).
재판을 뒤집어야 하고, 주민소환투표는 막아야 하고….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현용선)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홍 지사에게 징역 1년6월과 추징금 1억원을 선고했다. 홍 지사는 지난해 4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로 시작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았다.
고 성 전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현직 도지사인 점을 감안해 법정구속은 피하게 됐다.
재판부는 홍 지사에 대해 “1억원이라는 거액을 불법 수수하고서도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허위로 꾸며냈다고 말하며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홍 지사가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성완종 리스트’ 수사 결과 유죄를 받은 사람은 이완구 전 총리에 이어 두번째다. 이 전 총리에 이어 홍 지사까지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자 다시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메모와 마지막 언론 인터뷰 내용이 주목받고 있다.
홍 지사를 기소한 검찰은 재판에서 성 전 회장 육성 인터뷰 파일과 금품 전달자인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 진술을 홍 도지사 혐의 핵심 증거로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물증 확보가 쉽지 않은 뇌물ㆍ정치자금 제공 등 공직부패 사건에선 공여자 진술 확보가 어렵고 법정에서 공여자 진술만으로 유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공여자 진술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타당성을 지녀야 하며, 전후 일관성 등을 잣대로 삼아 신빙성을 판단한다는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번 홍 지사 재판과 같은 경우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강한 입증이 필요했다. 따라서 금품을 줬다고 주장한 성 전 회장이 이미 고인이 된 상황에서 공소 유지나 유죄 선고가 모두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 |
ⓒ 양산시민신문 |
결국 재판부에서 홍 지사에게 유죄를 인정한 것은 금품 공여자가 비록 사망했지만, 생전에 남긴 진술이 상당한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핵심 증거로 제출한 성 전 회장 인터뷰 내용과 윤 전 부사장 진술을 사실로 받아들인 셈이다.
또한 직접 돈을 건넨 것으로 진술한 윤 전 부사장에게 ‘배달 사고’를 주장한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검찰 수사가 들어가자 홍 지사측 인사들이 윤 전 부사장을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윤 전 부사장에게 “검찰에 사실과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진술해 줄 수 없겠느냐, 홍 지사가 아니라 비서진이 돈을 받은 것으로 하자”는 취지로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가 이에 대해 “누구도 윤 전 부사장이 1억원을 횡령했다는(가로챘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은 ‘배달 사고’를 주장한 홍 지사 입장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 판결 후 홍 지사는 “내 오죽답답했으면 다음에 저승가서 성완종에게 한번 물어보겠다고 했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돈을 어떤 경로든 갖다 주었다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은 참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었다”며 “돈은 엉뚱한 사람에게 다 줘놓고 왜 나를 끌고 들어갔는지 말이냐”며 “흔들림 없이 내 길을 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유죄가 선고되자 지역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 등이 홍 지사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보궐선거는 없다”며 일축했다.
10일 홍 지사는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도민 여러분께 이런 일로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상급심에서는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성완종 리스트로) 기소돼서 1년 5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도정을 소홀하게 취급하지 않았고 흐트러짐 없이 정상적으로 운영해왔다”며 “앞으로 도정에만 전념하고 상급심에서 누명을 벗는 데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지사직 사퇴 요구에 대해 불쾌한 심기를 나타내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홍 지사는 “평소 지사직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1심 판결로결론이 나지 않았는데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재판으로 정치일정이 다소 엉켰지만, 앞으로 도정에 전념하는 것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한편, 홍 지사가 사퇴설을 일축하고 도정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힌 가운데 홍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홍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해놓고 있는 상태다.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26일 홍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 실시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계획으로 주민소환 투표 청구인 서명 숫자가 경남도 유권자 10%를 넘어 주민소환 투표가 발의된다면 투표는 오는 11월 중순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선관위가 투표 실시를 결정할 경우 이번 유죄 선고가 투표 결과에 미칠 영향도 예의주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