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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한국 전통문화, 폴란드 남자를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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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문화, 폴란드 남자를 사로잡다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6/09/12 09:41 수정 2016.09.12 09:41
폴란드서 영남농악 접한 표토르 씨
홀로 장구 연습하며 한국전통 익혀
한국서 국악, 전통무예 배우기도
“멋있는 전통 많이 알려졌으면”

“저 봐라~ 외국인 아이가? 근데 어째 저래 장구를 잘 치노!”


지난달 23일, 물금 워터파크 공연장에서 열린 양산학춤보존회 공연에 파란 옷을 입은 한 사내가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은 분홍 옷을 입은 단원들 사이에서 홀로 파란 옷을 입고 훤칠한 키와 이국적인 이목구비를 뽐내는 외국인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 양산시민신문



무대 위에서 역동적으로 설장구(장구만으로 진행하는 개인놀이나 장구 놀음)의 다양한 장단을 선보인 그는 폴란드 출신 표토르(Piotr.M , 30, 어곡동) 씨. 지난해부터 약혼자를 따라 양산에서 머물고 있는 그는 지난 4월부터 ‘국악예술단 풍’에서 설장구를 배웠다. 낯선 가락을 어째서 배우게 됐는지, 어렵진 않았는지 궁금해 하던 기자에게 표토르 씨는 웃으며 말했다.


“설장구는 폴란드 전통 음악과 경쾌하고 신나는 느낌은 같지만 많이 달라서 좋아요. 폴란드에 있었을 때는 혼자 장구를 연습해 보곤 했는데, 한국에서 직접 배우니까 더 재밌어요”


폴란드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던 표토르 씨는 우연히 학교에 특강하러 온 한국인 교수로부터 영남가락을 배우게 됐다. 자국 전통 음악과 많이 다르지만 한국 음악의 맑고 깨끗함, 신명남에 매력을 느낀 그는 장구를 배우며 국악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우리 전통 음악과 비슷하지만 특별한 매력도 있어요. 에너지도 많고 하면 할수록 흥도 생기고요. 박자에서도 폴란드는 ‘하나~둘, 하나~둘’ 처럼 행진하는 듯하지만 한국은 ‘하나~둘~셋, 하나~둘~셋’하고 둥글게 튀어오르는 느낌이 달라요. 소리도 깊고 장구뿐만 아니라 사물놀이, 농악같이 다양한 종류가 있어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 양산시민신문



그가 한국에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국악 때문은 아니다.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2009년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표토르 씨는 국악이 아닌 다른 한국전통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한옥과 궁궐, 한복 등 새로운 아름다움에 빠지게 됐다.


“서울에서 한 달 정도 국악을 배웠어요. 매일 혼자 듣고 따라 해보다가 정식으로 배우니 또 새로웠어요. 그 중에서 설장구가 인상 깊었는데, 설장구는 영화랑 구성이 비슷해요. 처음에는 천천히 시작하다가 점점 클라이맥스로 가고 마무리를 해요. 그런 점이 좋았어요. 또 ‘무예24기’라는 전통 무예가 있어요. 수원에서 배울 수 있는 건데 무예를 배우려고 서울과 수원을 왔다 갔다 했어요. 한국에는 멋있는 전통이 많아요”


좋은 점도 많았지만 그의 한국 적응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을 배우든 경쟁하는 분위기와 우리나라 특유의 상하관계에 당황하기도 했다.


“처음 왔을 땐 모든 게 다 충격적이었어요. 문화 차이라고 하지만 제가 봤을 때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었고, 그런 일을 당한 적도 있어요. 저는 배우러 왔는데 한국은 경쟁에 목적이 있는 거 같았어요. 또 ‘예의’는 존중에서 나오는데 예의를 지키라고 억압하는 부분도 있고요. 몇년 전 서울에 있었을 때는 거리를 걸어가면 신기한 눈으로 보는 사람, 수군거리는 사람도 많았고요. 그래도 양산은 그런 게 덜해서 편하고 좋아요. 도시도 조용하고 깨끗하고요”


다만 그는 한국 사람들이 전통에 대해 무관심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옛 것이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지만, 가꾸고 계승할 만큼의 가치가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K-pop을 예로 들 수 있겠어요. 한국 사람들도, 또 한류 팬들도 많이 좋아하는 장르니까요. 가장 유명한 게 싸이의 강남스타일인데, ‘강남스타일=한국’이라는 이미지가 좋은 건 아니라고 봐요. 가사를 보면 한국에 안 좋은 면을 조롱하고 있는 거 같아요. 한국사람들도 한국 가수가 유명하다는 면에만 열광하잖아요. 한국에 좋은 점은 전통문화에 많이 있는데 한국이 전통을 홀대하는 거 같아 아쉬워요”


현재 표토르 씨는 영화 준비로 잠깐 손에서 장구를 내려놨다. 그동안 공연 준비로 시간을 뺏긴 만큼, 잠시 배움을 멈추고 영화에 집중해서 시나리오를 마무리한 뒤 촬영을 시작할 계획이라는 것.
“장구를 배운 지 5개월 만에 공연하게 돼서 더 많이 연습해야 했어요. 그러다보니 원래 해야 했던 일을 미룰 수밖에 없었죠. 이제 그것도 마무리했으니 본래 일로 돌아가야 할 거 같았어요. 아쉽지만 또 배울 날이 오겠죠”


개량한복을 즐겨 입고 국악을 비롯한 한국 전통을 사랑하는 표토르. 그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워가고 싶다고 했다.


“양산은 좋은 곳이에요. 특별한 경험도 많이 하고 설장구도, 학춤도 배워보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 더 좋은 곳이죠. 이곳에서 경험이 제 삶과 제 영화에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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