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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괴담(怪談)의 탄생
오피니언

괴담(怪談)의 탄생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6/09/27 09:19 수정 2016.09.27 09:19
무능하고 불투명한 정부 대처 논란 속
책임 외면한 채 소극적 자세 지자체
무너진 신뢰 앞에 확산하는 괴담들
단속 아닌 신뢰 회복 방법부터 고민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불안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 지진이 발생하고 뒤를 이어 여진이 계속되면서 또다시 큰 규모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이 사람들 사이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물론 실체는 없다. 더 큰 지진이 일어날 수도 지진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깨져버린 ‘지진 안전지대’라는 환상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속 시원하게 알려주지 않는 지진 대비 행동요령을 다른 나라 정부가 만든 매뉴얼을 번역해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고, 현관 앞 생존배낭을 놓아두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무조건 정부를 믿고 따르라고 윽박지르는 대통령,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대책 수립에 만전을 다하겠다는 공허한 주장만 되풀이하는 총리, 지진으로 가뜩이나 불안한데 머리맡 원전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는 양산시장…. 우리 안전을 책임진 이들을 믿기 힘든 현실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 살아남으려 하는 발버둥으로 이어진다.


날씨조차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여름 내내 욕을 먹어야 했던 기상청은 이번에도 오락가락했다. 결국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올려다보던 사람들은 띠 모양으로 층층이 떠 있는 구름을 지진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구름을 보며 곧 지진이 올 것이라 예측하는 괴담은 그렇게 탄생했다.


개미나 물고기가 길게 줄지어 이동하는 것을 보고 곧 지진이 올지 모른다고 호들갑을 떨게 하는 괴담은 지진이 발생하고 한참 뒤에야 재난문자만 달랑 보내온 국민안전처가 만들어냈다. 정작 필요한 순간 홈페이지가 먹통이 돼 버리는 국민안전처보다 미물에 불과한 개미나 물고기에 의지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해안을 타고 번지는 가스 냄새에 킁킁거리는 사람들은 생존을 코에 의지한 채 있을지 모를 지진을 두려워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가스 냄새를 맡았지만 속 시원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이상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지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은 원인 모를 가스처럼 괴담으로 번지고 있다.
이처럼 ‘지진괴담’이 확대ㆍ재생산되고 있는 가운데 웃지 못한 일이 하나 있었다.


일본 지진 감지프로그램에 의하면 24일 더 큰 규모 지진이 또다시 발생한다는 괴담이 나돌자 김관용 경북지사가 앞서 강진이 발생한 진앙지 마을을 찾아 하룻밤을 묵었다는 이야기다. 주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하지만 한 지자체장이 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긴 앞서 콜레라 확산이 우려되자 매일 회를 먹겠다며 카메라 앞에 선 여당 대표에 비하면 훨씬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주민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겠다는 의지는 그 지자체장이나 대통령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괴담에 맞서 싸우는 방식이 그때그때 상황을 모면하는 식이라면 신뢰를 쌓을 수 없다.


괴담이란 본래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생기기 마련이다. 귀신이나 유령과 같은 존재는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만큼 그것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정보가 부족한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곤 한다. 일단 괴담이 신뢰를 얻기 시작하면 곧잘 진실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 소재로 자주 다루는 음모론도 일종의 괴담에서 시작돼 여러 상황증거들과 맞물려 힘을 가지게 된다.


정부에서 괴담으로 치부하는 최근 일련의 상황 역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정부 탓이 가장 크다. 문제 핵심은 부족한 정보인데 정부는 충분한 정보보다 괴담을 단속하는 일에만 더 신경 쓰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듣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말이 다르다. 정부 입장에서는 괴담을 믿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괴담을 믿고 있는 이들은 정작 듣고 싶은 말이 더 많을지 모른다. 듣고 싶은 말을 숨기고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정부에게 무슨 신뢰를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지진 그 자체도 재앙이지만 인근에 위치한 원전은 어쩌란 말인가.


이미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버젓이 추가 원전을 짓겠다는 발상을 하는 정부는 이 순간에도 괴담 대신 신뢰를 보내달라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은 어쩌면 단순하다. 그동안 ‘지진 안전지대’라는 환상에 갇혀 지진 대비를 소홀하게 했다는 솔직한 인정, 그리고 지금까지 미처 갖추지 못한 대비책을 빠르고 구체적으로 마련하겠다는 다짐, 모두 함께 백지상태였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정중한 요청 그리고 의심이 있는 부분을 보다 투명하게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결단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잘하고 있고, 잘하려고 하는데 괴담이 퍼져 억울하다는 식 태도는 괴담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괴담에게 영양분을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이 순간을 잊을지 모르지만 무너진 신뢰는 또 다른 상황에서 또 다른 괴담을 탄생하게 할 것이다.


지금 수많은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괴담은 “더 이상 큰 지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원전을 안전하게 건설하고 운영하고 있다”는 정부 말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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