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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빠르게 변하며 음악을 듣는 방법도 달라졌다. 인터넷으로 클릭 몇 번만 하면, 앱을 켜고 터치 몇 번만 하면 원하는 노래를 손쉽게 들을 수 있게 됐다. 이런 변화로 LP(long-playing record) 시대는 완전히 종료되는 듯했다. 하지만 LP는 부활했다. 답답한 디지털 사회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LP 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편안하면서도 입체적인 소리, 그 소리를 혼자 듣는 게 아쉬웠던 김상헌(59) 씨는 지난해 초 중부동에 ‘LP 카페 소리창고’를 열고 LP 소리를 시민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아직 모르는 분도 많죠. 그래도 제 만족으로 하는 일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가게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운 LP 2천여장과 유리 칸막이 속 뮤직박스가 눈에 띈다. 그리고 일부러 옛 시골다방처럼 보이게 하려고 갖다 놓은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7080 음악다방 분위기죠. 그런데 찾는 분들의 나이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해요. 음악을 즐기는 사람, 제대로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들이 소리창고를 찾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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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가 LP에 빠지게 된 것은 바로 외제 앰프 때문이었다. 김 씨가 중 3이었던 1975년, 그때 그는 국산 오디오로 음악을 듣곤 했지만, 성능이 낮아 제대로 음악을 즐길 수 없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앰프와 턴테이블 등 외제 음악 장비였다.
“형님도 저처럼 LP와 음악 장비에 관심이 많았어요. 형제가 같이 이런 취미를 즐긴 거죠. 음악 장비를 쓰기 위해 LP를 사곤 했는데, 형님은 주로 가요를, 저는 팝송을 좋아했어요. 그때를 시작으로 LP를 모은 지 벌써 30년이 다 됐네요”
음악 카페를 운영하기 전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김 씨에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바로 큰 소리로 음악 듣기였다. 음원과 CD로는 성에 차지 않는,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하는 LP 소리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김 씨는 바늘이 레코드판을 긁으면서 나오는 소리와 귀를 간지럽게 하는 그 감각에 현실의 스트레스를 잊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정집에서 이런 취미생활을 하기엔 가족 반대도, 이웃 눈치도 있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음악 카페였다.
“카펜터스의 ‘yesterday once more’,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등 좋아하는 음악을 좋은 소리로 크게 들으면 속이 뻥 뚫리죠. 근데 아내가 참 싫어했어요. 그래서 음악 카페를 시작하게 됐는데 제 놀이터 같아서 더 좋더라고요. 지금도 손님 없을 때나 오픈 시간 전에 혼자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감상하곤 하죠”
↑↑ 김상헌 씨는 LP를 구하기 어려웠을 때는 CD와 테이프, 음원을 모으며 음악 사랑을 이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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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손님들이 원하는 음악은 무엇이든 틀어주고 있다. 소장한 LP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 음악을 틀어주는 것은 물론, CD와 테이프, 경우에 따라선 음원으로라도 원하는 음악을 손님에게 선물한다.
“LP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음악을 모았어요. LP가 없으면 CD와 테이프를, 그것도 안 되면 음원을 구했죠. 소장한 LP도 많지만 음원 데이터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김 씨는 30년 동안 음악을 들어왔지만 아직도 손님들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접하고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많은 음악을 들었는데도 아직 못 들어본 음악이 있는 게 신기하고 즐겁죠. 그렇게 저도 배우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음악을 선물하기도 하고요. 즐겁게 감상하시고 웃는 얼굴로 돌아가는 손님을 보는 게 제일 뿌듯하죠. 제 역할을 다 한 거 같고요”
원래 오후 5시부터 오전 1시까지 소리창고를 이용할 수 있었으나 더 많은 시간을 음악으로 소통하기 위해 김 씨는 11월부터 오전 11시 문을 열기로 했다.
“정말 음악 듣는 걸 사랑하는 분이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소리창고는 음악에 취하고 소리의 감동이 있는 곳이거든요. 이어폰으로, 핸드폰으로 듣는 것보다 LP로 풍부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한 번 접하면 이 감동을 잊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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