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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 ||
ⓒ 양산시민신문 |
지난 5일, 태풍 차바로 억수같이 비가 오던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상북면 대우마리나 아파트에 사는 우리 할머니는 평생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 양산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손녀에게 부리나케 전화하셨다. 통화 후 내 일을 끝내고 나니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아져 있었다. 한적했던 도로는 다시 차들이, 아무도 없던 거리엔 하나둘씩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길에는 토사와 나뭇가지가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차바의 심각함을 느끼지 못했다.
눈으로 뒤늦게 확인한 차바는 최근 들어 가장 위력적으로 양산을 비롯해 경남을 휩쓸고 갔다. 그리고 할머니가 계셨던 대우마리나가 양산에서 가장 큰 피해를 봤다. 현장을 찾았을 때 자원봉사자와 공무원 등 많은 사람이 복구를 위해 대우마리나로 오고 있었고, 한창 복구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태풍이 들이닥친 이후 3일 내내 대우마리나를 찾았다. 소방차, 굴착기, 덤프트럭, 레카 차량 등이 아파트를 쉴 새 없이 돌아다녔고 기계로 정리하지 못하는 곳에는 자원봉사자와 공무원, 주민들이 힘을 쏟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구호품이 대우마리나로 향했다. 현장은 점차 정리되고 있었고 진흙과 흙먼지를 덮어쓴 사람들을 보며 아파트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마음을 모은 이의 노고가 느껴졌다. 현장은 얼핏 보기에 매우 체계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머물수록 허술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열정을 갖고 현장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봉사를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이들을 지휘해야 하는 공무원들은 보이지 않았고 현장을 책임지는 이가 누군지도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봉사자들은 스스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한 봉사자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에 고생할 각오로 현장을 찾았는데 정작 와서 보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필요한 장비도 인원보다 모자라게 준비해놔 답답했다”며 “현장을 보니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현장 봉사 말고 물품 기부를 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불만은 이뿐만 아니었다. 아파트로만 인력이 집중된 탓에 아파트 인근 주택 주민들은 도와주는 인력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삶의 터전이 무너진 건 대우마리나나 인근 주택이나 같은데 피해 상황이 알려진 건 아파트 위주라 장비도 봉사자도 모두 한곳만을 향하고 있었다.
무심한 수마(水魔)는 수재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떠났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책임한 행정은 현장에 있던 모든 이에게 상처를 줬다. 자연재해보다 무서운 것은 이런 재난에 준비돼 있지 않은 행정의 태도였다.
기상청이 참으로 오랜만에 정확하게 예고한 태풍이었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태풍을 맞았고 엄청난 피해를 봐야만 했다. 공무원들은 24시간 비상근무에 들어가고 주말까지 출근하며 현장을 지켰지만, 책임지는 사람도 대책을 세우는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지구 곳곳에서 해마다 자연재해로 피해를 보는 곳 사례를 본다. 그러나 태풍과 호우 등 자연재해 발생 자체를 막을 수 없다는 것 또한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숱한 재해의 교훈을 보고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처마저 소홀히 하는 행정을 시민이 믿을 수 있을까. 이번 재해 현장에서 양산시가 보인 모습은 무척이나 허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