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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안전도 디테일에 숨어 있다..
오피니언

안전도 디테일에 숨어 있다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6/10/18 10:33 수정 2016.10.18 10:33
복구(復舊)와 복기(復棋)의 시간
구멍 뚫린 매뉴얼, 재난대책 한계
시민 중심ㆍ상황 중심 매뉴얼
제대로 된 복기 통해 마련해야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양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씁쓸한 순간이다. 재난을 당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일 텐데 결국 ‘특별재난지역’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태풍 차바가 휩쓸고 간 양산 곳곳에 많은 상처가 남았다. 피해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


양산은 상대적으로 자연재해에 안전한 곳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최근 몇 해 동안 자연재해로 큰 피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서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덩달아 인구도 크게 늘면서 발전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태풍으로 양산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양산천과 회야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성장한 결과는 언제든 침수 피해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현실을 보여줬다.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문제가 발생하는 곳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큰 부분이 아니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작은 부분에서 일어난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산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말을 반대로 뒤집어 “안전도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자연재해에 대비한 매뉴얼과 행동지침이 마련돼 있지만 정작 재해 순간 매뉴얼도, 행동지침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는 ‘디테일’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태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상북면 대우마리나아파트 현장에서 만난 주민은 사전에 차를 지하주차장에서 이동하라는 방송을 하지 않아 차량이 침수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기설비가 지하에 있는 바람에 아파트 방송 자체가 먹통이 된 탓이다. 대우마리나 아파트에서만 차량 400여대가 침수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들어보면 주민 불만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주민 이야기를 듣다 문득 정전이 되지 않아 양산천이 범람하려고 하던 순간 관리사무소에서 차량을 대피하라는 방송했다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차량을 이동했던 주민 이야기는 지하주차장 입구를 나서는 순간 빗물이 쏟아져 내렸고, 이내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만약 대피 방송을 듣고 지하주차장으로 수많은 주민이 내려갔다면 입구에 몰린 차량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순식간에 불어난 물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이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번 피해 가운데 가장 다행스러운 일은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점인데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만한 상황이다. 정전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었던 셈이다.


다시 ‘디테일’로 돌아가자. 양산시가 마련한 재난 대책 매뉴얼엔 대우마리나 같은 상황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이 같은 상황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물론 주민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홍보나 교육이 이뤄졌을 리 없다. 이보다 앞서 양산천이 범람할지 모를 상황을 알려줄 수 있는 시스템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다.


상황을 넓혀 신도시지역 양산천이 범람했다고 가정하면 수많은 차량과 주민이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우왕좌왕할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단지 우왕좌왕 어수선한 모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과 차량이 뒤엉켜 더 큰 사고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매뉴얼에 ‘디테일’을 담아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 경우 한 부서에서 길어야 2년 남짓 근무하도록 돼 있다. 한동안 양산에 수해가 없었다고 하지만 뉴스만 검색해봐도 4~5년 간격으로 피해를 봐왔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안전 업무 전문가가 양산시에 없다는 현실은 현재 공무원 인사체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서 시작한다. 어느 분야든 수시로 업무가 변하는 공무원이 전문성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디테일’이 살아 있는 매뉴얼을 통해 업무를 파악하고, 실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태풍 예보가 있으면서 양산시는 비상근무체계에 들어갔다. 복구 현장에서 많은 공무원이 구슬땀을 흘렸다. 그들 노고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어 ‘헛심’을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효율적인 인원 배분과 장비 배치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비상대기시간만 늘어나고, 현장에서도 역할 구분이 모호해 공무원 스스로 머쓱해지는 경우도 봤다. 매일 해야 하는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재난 대응 업무가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현장에서 이뤄지는 주먹구구식 대응은 ‘기본’과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제 복구(復舊)와 복기(復棋)의 시간이다. 복구는 시간과 돈이 있으면 되는 일이지만 복기는 ‘의지’가 필요하다. 제대로 복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특별재난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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