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
ⓒ 양산시민신문 |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사람들이 가진 자기중심적 사고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역’이라는 말 앞에서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마치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여기는 태도를 보인다. 자신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지역을 대하는 사람들 태도는 마치 가치 없거나 수준 낮은 무언가를 접하기라도 한 듯 외면하거나 무시하기 일쑤다.
오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다.
사실 ‘지방자치’라는 표현 자체에도 지역을 낮춰보는 의미가 숨어 있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지방’이라는 말뜻에는 “서울 이외 지역”, “중앙의 지도를 받는 아래 단위 기구나 조직을 중앙에 상대해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중앙인 서울을 기준으로 지역 가치를 폄하하는 의미가 지역 자율성을 나타내는 ‘지방자치’라는 표현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그래서 글 첫머리에서 ‘지방’이 아닌 ‘지역’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다. 지방이 서울 이외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지역은 대한민국 곳곳을 아우르는 말이다. 서울 역시 지역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지방자치가 아니라 지역자치로 불러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대부분 사람이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면서도 지역이라는 이슈 앞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니라 서울 중심적 사고를 펼치는 탓에 지역자치는 시행 21주년이 됐지만 아직 튼튼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덩어리에 지역마다 지자체장을 선출하고, 지역의회를 두는 일이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지자체마다 벌어지는 낯 뜨거운 예산 낭비 사례와 지역의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수준 낮은 의정활동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 주장이 힘을 얻곤 한다.
하지만 지역자치를 본격적으로 시행한 지난 21년 동안 지역 주민들이 과연 얼마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가를 돌이켜보면 수준 낮다고 여기는 지자체나 지역의회만큼이나 부끄러운 상황이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 지역에 사는 우리 현실이다.
물론 오랜 세월 중앙집권적 사회 구조를 가져온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와 지역자치 시대를 맞이하고도 제대로 된 지역자치를 실현하지 못한 것에는 언론 역할도 크다. 지역언론이 건강하게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싶어도 지역 소식을 전달할 통로를 갖지 못한 탓에 늘 지역보다 서울 소식을 전해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새삼스레 지역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방자치의 날을 맞기도 했지만 최근 지진과 태풍 등 자연재해를 맞아 과연 지자체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자체 기본 업무는 분명 지역 주민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다.
하지만 지역정부인 지자체가 근본적으로 주민 안전을 보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중앙정부에 예산과 인력을 통제받아오면서 안전 업무는 지역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지역 공무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중앙정부에서 지침을 줄 때까지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쉽게 나오곤 한다.
최근 양산시의회 임시회에서 재난 관련 시정질문이 있었다. 양산시만의 재난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 앞에서 나동연 양산시장은 중앙정부 지침이 마련되는 연말까지 구체적인 양산만의 매뉴얼을 만들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매뉴얼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 지침이 마련된 후”라는 시기다. 양산시는 선도행정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다양한 분야에서 다른 지역보다 앞서가는 행정을 펼치겠다는 각오를 알려왔다. 그런데 지진과 태풍이라는 재난을 대하는 태도는 여느 지자체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중앙의 지도를 받는 아래 단위 기구나 조직을 일컫는 ‘지방’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지역’으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올바르게 시민안전을 지켜내기 어렵다.
양산시가 말하는 선도행정이 중앙정부 지침을 우선 따르겠다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중앙정부 지침을 하염없이 기다리겠다는 답변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이 이해하는 선도행정은 다른 지역과 다른 행정, 시민을 우선하는 행정이다.
지방자치의 날을 맞아 지방이 아닌 지역을 생각하는 일은 시민안전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중앙정부 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지역 입장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고, 지역 스스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은 중앙정부에 당당히 요구하는 지역정부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수동적인 ‘지방’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지역’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지역을 외면하고 무시해온 지역주민 스스로 지역에 관심을 가질 때 지방정부가 지역정부로 바뀔 수 있다.
지방자치의 날을 맞아 역설적으로 지방에는 ‘안전’이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