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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 ||
ⓒ 양산시민신문 |
“앞으로의 꿈이 뭐에요?” “음… 온게임넷 PD가 되고 싶어요. 게임 방송국에서 생방송 하는 현장에 있고 싶어요”
중학교 3학년, 하고 싶은 걸 꿈이라 생각했던 나는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내 꿈을 그렇게 설명했다. 그런 내 대답에 담임 선생님은 의외라고 말했다. 눈에 띄지도 않고 그저 그런 아이였던 내가, 대부분 ‘잘 모르겠다’ 또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을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들 사이에 있으니 눈에 띄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꿈이 희미해졌다. 금방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꿈이 생각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부족함에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 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대학 가기’가 고1 때 목표가 되고 고2 때는 ‘원하는 과라도 가기’, 고3 때는 ‘어디든 대학이라도 가기’로 꿈이 변해갔다.
대학생이 되면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때도 다른 건 없었다. 조금 더 쉽게 학점을 따기 위해 수월한 과목을 수강하고, 자신 없는 토론이나 발표 과제가 있는 과목은 당연하게 버렸다. ‘개나 소나 다 있다’는 모스 자격증은 ‘개와 소’라도 되기 위해 방학을 쪼개가면서 공부했고, 취업 서류 접수에 필수라는 토익과 토익 스피킹은 1년 휴학까지 하면서 나름 고득점을 달성하기도 했다.(물론 토익 성적과 영어 실력은 별개였다)
이는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지금 10대와 20대 대부분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꿈이 뭐냐고 묻는 건 사치라고 여겨질 만큼 세상도, 우리 마음도 각박해졌다. 정해진 세상 틀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이 바로 꿈이 돼 버린 우리들 청춘. 이것을 과연 청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한탄마저 청춘에겐 ‘사치’일지 모른다. 마땅히 하는 것은 없지만 여유와 휴식을 잘못처럼 여겼던 그때 내가 그랬듯, ‘다들 똑같이 힘든데’,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라는 마음 뒤에서 아픔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아픔과 생각을 누구와도 나눠볼 생각을 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20대 후반, 청춘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끄럽지만, 별거 없는 내 지난 청춘을 되돌아보며 ‘진짜 푸른 청춘’을 위한 꿈을 다시 찾아보려 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청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 아픈 청춘을 달랬던 치유의 노래도 한 곡 올린다.
“‘나는 왜 이러지, 내가 뭐 그렇지’ 이런 말은 절대로 하지 말기. 아무 대책 없는 막연함이라도 괜찮아, It’s gonna be all right”(스윗소로우-Sunshine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