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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진실은 쉽고 단순하다
오피니언

진실은 쉽고 단순하다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6/12/20 09:04 수정 2016.12.20 09:04
‘고구마’가 시사용어로 둔갑한 세상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비정상사회
거짓이 진실과 뒤섞일 때 기억할 것
어렵고 복잡할수록 진실과 멀어진다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고구마와 사이다. 

최근 국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가 열릴 때면 뜬금없이 언론과 SNS 등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답답한 상황이 반복될 때 마치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해진다는 뜻을 상징하는 ‘고구마’와 그 반대로 사이다를 마실 때 느끼는 시원함을 주는 상황이나 발언을 접할 때 ‘사이다’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음식물이 현 상황을 나타내는 시사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청문회 과정을 보면 답답함이 계속 이어지다 한두 번 사이다처럼 시원한 질문과 답변이 튀어나오곤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는 시원함과 달콤함은 청문회에서 진실의 끝자락이라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탓에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문제는 그 기다림이 너무 길고 시원함은 짧다는 것이다.

청문회가 열리는 날이면 식당을 비롯한 상가 곳곳에서 TV를 틀어놓고 청문회 이모저모를 들여다보는 시민이 하나 둘이 아니다. 심지어 밤늦은 시간까지 즐겨보던 드라마도 제껴둔 채 청문회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다.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자 허구인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청문회에 눈과 귀가 쏠리게 되는지 모른다. 막장드라마를 욕하면서 계속 보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답답한 청문회를 안타까워하며 행여 나올 지 모르는 사이다같은 질문과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모른다”와 “기억나지 않는다”가 판치는 청문회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끈 사람들이 있다. 바로 최순실의 딸 정유라 부정입시 관련 증인으로 나선 이화여대 교수들이다. 이들이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교육자기 때문이다. 이미 교육부 감사로 정 씨 입학이 취소됐지만 부정입시 자체를 부인하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에서 ‘스승’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더구나 질문하는 국회의원에게 답변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가르치려 드는 ‘선생질’도 빼먹지 않는 모습을 볼 때 답답함은 두 배가 됐다. 


진실과 정의를 가르쳐야할 교육자들이 자신의 부정을 외면하며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해명의 탈을 쓴 훈계를 늘어놓는 모습이라니…. 지금 믿기 힘든 현실이 왜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교육자로 자존심마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가르치려 했고, 그 가르침이 가지는 무게를 전혀 알지 못했다. 

스승이 건네 준 고구마로 답답함을 삭이지 못하고 있을 때 매주 토요일 양산에서 열리는 시국대회에 함께 하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지한 눈빛으로 촛불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어른들에게 그들이 전하는 말은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것 같은 사회였으면 좋겠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일 가운데 과연 학교에서 배운 일들이 얼마나 될까?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 자신들만의 연줄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람 목숨도 아랑곳 않고 돈과 권력을 쫓는 사람들,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보다 눈과 귀를 막고 거짓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 있게 학교에서 배운 사회가 바로 이곳, 바로 오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구마와 사이다가 시사용어로 둔갑한 세상, 진실은 쉽고 단순한데 어른들은 어려운 말과 복잡한 논리로 아이들에게 진실을 설명하고 있다. 아니 강요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후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는 진실은 쉽고 단순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탄핵 사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는 답변서는 각종 법리와 사례를 끌어와 진실을 어렵고 복잡한 문제로 변질시키고 있다. 물론 답변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대통령 잘못으로 언급한 모든 내용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사실로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쉽고 단순한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쉽고 단순하다. 탄핵 이전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수차례 진실을 밝히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잘못 없다는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채 청와대 문을 굳게 닫고 있다. 청문회가 열리는 동안에도 청와대 문은커녕 어떤 자료도 증인도 내놓지 않고 진실을 밝힐 것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법대로 하자’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배우지 못한 상황이 몇 달 째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긴 시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그때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비정상인 상황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인가를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할 의무를 기억해야 한다. 설명은 쉽고 단순해야 한다는 원칙을 잊지 말자. 진실은 쉽고 단순한 것이기 때문에 어렵고 복잡해지는 순간, 우리는 진실에서 멀어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 같은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아이들 바람처럼 지금 어지러운 상황이 쉽고 단순하게 정리되길 함께 바란다. 다시 한 번 진실은 쉽고 단순하다는 말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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