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종합사회복지관에 들어서니 전에 느끼지 못했던 향긋한 커피 향이 반겼다. 실버카페 ‘다락(茶樂)’이 문을 열고 난 뒤 생긴 작은 변화다. 다른 카페와 차이가 있다면 이곳에서 일하는 바리스타 모두 60세 이상 어르신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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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문을 연 카페 다락은 양산시니어클럽(관장 성지혜)이 지난해 3월부터 경제적 안정과 사회참여를 통해 행복한 노년을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한 사업이다. 특히 경상남도에서 실버카페 설치지원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시니어클럽이 양산에 실버카페 사업을 진행했다.
장소 물색에만 7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역 내 여러 곳에 실버카페 설치를 추진했지만 엎어지기 일쑤였다. 그때 양산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입구에 있던 사무실을 카페로 바꿔도 괜찮다는 협조를 얻어냈다. 그리고 1개월 만에 카페에 참가자를 모집했고 10명의 어르신 바리스타가 모이게 됐다.
양산시니어클럽 원동성 사회복지사는 “양산시와 복지관에서 협조를 잘해준 덕분에 멋지고 아름다운 카페가 만들어졌다”며 “어르신들 모두 카페와 커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만큼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락’은 이름 그대로 참여 어르신은 물론 고객들까지 차 한 잔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곳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더불어 지역에서 모든 세대가 어우러질 수 있는 다락방 역할을 해 누구든 편하게 올 수 있는 정겨운 카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
실버카페라고, 바리스타가 어르신들이라고 해서 다른 카페에 비해 커피 맛이 못할 거라는 편견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 어르신들은 카페 운영에 앞서 2주간 10회 교육을 받은 뒤 2주 동안 실습을 통해 실력을 쌓았다. 특히 어르신 중 2명은 바리스타 자격 소유자로, 로스팅부터 추출, 라떼 아트까지 소화할 수 있다.
다락의 팀장을 맡고 있는 곽인석(64, 사진 왼쪽 위) 씨는 카페가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을 줬다며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5시 30분까지 3명씩 2교대로 일하는데 직원들 모두 카페 올 생각에 들떠 출근 시간보다 훨씬 먼저 출근하기 일쑤”라며 웃었다. 63세부터 69세까지, 예순이 넘는 나이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 삶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곽 팀장은 “바리스타를 하며 근사한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을 자녀와 손자들에게 보여주면 다들 ‘멋있다’고 말해주는 게 정말 기분 좋았다”며 “우리가 돈 벌자고 카페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커피 한 잔을 통해 여러 사람과 함께 소통하고 보람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은퇴하기 전까지 공직에 있었고, 다른 분들도 직장 생활을 하거나 봉사활동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했던 분들이지만, 이 나이에 전문적인 직업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라며 “몸은 60대지만 마음은 20대 같은 열정을 가지고 커피를 공부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덧붙였다.
물론 그 도전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도 ‘내가 진짜 바리스타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한 적도 있다고 했다. 커피 이름과 제조 과정 외우기도 부담스러웠다. 물의 양과 온도 등을 섬세하게 조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손님들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버거운 느낌도 경험했다.
곽 팀장은 “처음 실습할 때만 하더라도 긴장해 손을 덜덜 떨고 조금씩 실수도 했는데 서로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계속 연습하니 이제는 이 일에 익숙해졌다”며 “아직 카페 운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저희가 만든 음료를 손님들이 맛있다고 할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카페모카, 바닐라라떼 등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거기에 착한 가격은 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웬만해서 4천원을 훌쩍 넘기는 가격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단돈 1천500원에 즐길 수 있다. 다른 메뉴들도 2천원 정도에 커피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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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곽인석, 황일자, 이남례, 한순옥, 심영남, 박정희, 곽라인, 손정희, 허복수, 이희석 어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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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팀장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은 커피가 너무 뜨거워 마시기 어려운데, 그런 점을 고려해 우리는 물 온도를 60~70 ℃ 사이로 유지하며 누가 만들어도 같은 커피 맛을 낼 수 있도록 동일한 양을 넣자고 아침마다 회의를 통해 되새기고 있다”며 “더 좋은 커피를 손님께 선보이기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이 없는 8명도 자격증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커피와 함께 다락에서만 즐길 수 있는 커피콩빵을 선보이고 있으며 양산시니어클럽 소속 어르신들이 제조하는 뻥튀기 등을 함께 판매해 다른 어르신 자립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운영 초기부터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는 다락이지만, 아쉬움은 있다. 곽 팀장은 다락에서만 즐길 수 있는 메뉴가 없다는 점을 꼽으며 앞으로 연구를 통해 다락만의 특별 메뉴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곽 팀장은 “매주 월ㆍ수ㆍ금이면 경로식당을 운영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복지관을 많이 방문하는데, 대부분이 커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또 입에 맞지 않아 하더라”며 “커피믹스에만 익숙한 어르신들과 커피를 자주 접하는 세대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우리만의 메뉴를 꼭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를 시작으로 실버카페가 많은 호응을 얻고 또 다른 이들에게 희망이 돼 지역에 계속 2호점, 3호점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며 “다락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편하게 많은 분이 놀러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관심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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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버카페 다락을 이끄는 곽인석 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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