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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실패할 권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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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권리를 응원한다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7/02/07 09:59 수정 2017.02.07 09:59
미생(未生)은 완생(完生)으로 가는 과정
실패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청춘에게 가혹한 이중잣대를 대지말고
시행착오를 응원하는 사회를 꿈꾼다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몇 해 전 웹툰과 드라마로 ‘미생(未生)’이란 말이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바둑 문외한인 사람에게조차 ‘미생’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미생의 반대말은 완생(完生)이다. 웹툰과 드라마에서 미생이 뜻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이 완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보잘 것 없는 인생으로 미생은 이미 죽은 돌, 즉 사석(死石)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로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뜬금없이 미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2월이 졸업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많은 이들이 이전과 다른 환경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시기다. 특히 고등학교든 대학이든 졸업 후 사회 진출을 하게 되는 이들에게 졸업은 특별히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더한다. 더 이상 졸업이란 과정을 거치기 힘들다는 상황 탓이다. 



졸업 후 진로가 정해졌다면 새로운 사회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기 마련이지만 ‘취업난’을 겪고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 졸업은 ‘막막함’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학생이란 신분을 벗어나 사회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지만 막상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더 크게 와 닿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청춘에게 유독 가혹한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되면 불과 어제까지 어린애 취급하다 성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그러다 중요한 결정과정에서는 “아직 어린 것이 무얼 안다고?”하며 그들의 생각을 폄하하기 일쑤다. 흔히 어른들이 청춘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청춘에게 수많은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이중잣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청춘이 가진 권리는 무엇일까? 많은 권리가 있겠지만 졸업을 맞는 수많은 청춘에게 반드시 지켜줘야 할 권리는 아마 ‘실패할 권리’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하게 마련이다. 시행착오를 인정하지 않고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청춘을 움츠리게 만든다. 대학 입학 후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볼 수 있을까?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일 또한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 

설을 앞두고 양산지역 청년들이 작은 강연회를 마련했다. 양산청정기(양산청년 정치 관심 기르기)와 양산YMCA가 준비한 강연회는 ‘청년 알바와 시급 그리고 소통’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양산에 살고 있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결코 어리지 않았다. 스스로 삶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에게 실패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맞서는 일에 두려움과 불만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시행착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비단 청춘에게만 가혹하지 않다. 이미 청춘을 지난 이들에게도 실패를 되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실패보다 성공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도전’이라는 단어는 ‘사치’와 동일어인지 모른다.

이미 우리는 오래 전에 도전이라는 사치를 누릴 기회를 눈감은 채 살아왔는지 모른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자신만만함을 잊고 날개 꺾인 채 하루하루를 사는 어른들의 오늘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 땅 청춘에게 또 다른 자신을 강요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자기 관리’와 ‘성장’이라는 무한 압박 속에 자격증을 따고, 영어 점수를 올리며 스펙을 쌓고, 인턴과 봉사활동으로 경험과 안목을 넓히길 강요받는 청춘은 남이 아닌 우리 자신이다. 

아픈 것은 비단 청춘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시행착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결국 우리 삶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시행착오가 가지는 가치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일과 시행착오 자체를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일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다. ‘실패할 권리’를 말 그대로 ‘권리’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미생을 완생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 땅 모든 이들에게 드라마 미생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응원’이란 노랫말을 선물한다. 

“사람들 틈에서 외롭지 않고 잿빛도시가 익숙해져요. 열평 남짓 나의 집이 아늑한 걸요. 한번쯤 멋지게 살고 팠는데 이제는 많이 지치나봐요. 괜찮다고 말하는게 편안해져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누구나 그렇게 살듯이 나에게도 아주 멋진 날개가 있다는 걸 압니다. 당당하게 살거라. 어머니의 말씀대로 그때처럼 억지처럼 축져진 어깨를 펴봅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며 집을 나섰던 아이는 내가 아니지만 그래도 힘을 내자. 누구나 알고 있듯이 누구나 그렇게 살듯이 나에게도 아주 멋진 날개가 있다는 걸 압니다. 당당하게 살거라. 어머니의 말씀대로 그때처럼 억지처럼 축져진 어깨를 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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