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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양산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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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중심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7/02/28 09:52 수정 2017.02.28 09:52
시대 따라 변해온 양산의 중심
중심은 사회기반시설 이전에
공동체를 잇는 공간으로 기능
새로운 양산의 중심을 고민해야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과거 세계를 호령했던 로마제국 때 나온 말이다. 방대한 점령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고대 로마인은 로마와 점령지를 잇는 도로를 건설했고, 그 결과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자신 넘치는 말을 남겼다. 

대부분 지역에는 ‘중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공간이 있다. 거창하게 로마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작은 시골마을에도 주민에게 중심이 되는 공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이 로마와 같은 대도시일 수도 있고, 동네 사랑방과 같은 아담한 곳일 수도 있다. 지역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도로와 역, 광장 같은 사회기반시설이 집중된 곳일 수도 있고, 지역을 대표하는 행정ㆍ상업ㆍ교육ㆍ문화ㆍ종교시설이 있는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이상 로마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항상 지역의 중심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월 따라 사회환경이 변하면 중심 역시 달라지게 마련이다. 

양산 역사만 되돌아봐도 양산의 중심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양산(梁山)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것은 신라시대 때 일이다. <삼국사기지리지>를 보면 “양주(良州)는 문무왕 5년, 인덕 2년(665)에 상주(上州)ㆍ하주(下州)의 땅을 분할해 삽량주(歃良州)를 설치한 것이었다. (중략) 경덕왕이 이름을 양주(良州)로 고쳤다. 지금(고려)의 양주(梁州)다”라는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고려 태조 23년(940) 경자에 양주(梁州)로 고치고, (중략) 본조 태종 13년(1413)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양산군(梁山郡)으로 고쳤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결국 양산은 신라시대 삽량주(歃良州)에서 고려 양주(良州, 梁州)를 거쳐 양산으로 지명이 변했다는 게 역사적 사실이다. 오늘날 해마다 10월이면 열리는 삽량문화축전의 ‘삽량’이 양산의 시작을 의미하는 셈이다. 

신라시대 양산의 중심은 어디였을까? 지금도 양산하면 떠오르는 곳이 통도사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통도사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왕명에 따라 창건했다고 전한다. 신라시대 국교가 불교였고, 자장율사가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창건했다는 사실을 미뤄볼 때 당시 양산의 중심은 통도사가 있던 하북지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톨릭 국가였던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대성당이 지역의 중심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게다가 양산천을 따라 통도사까지 나룻배가 오갔다는 기록이 있어 하북지역은 종교중심지에다 물류중심지로 역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흘러 상황은 달라졌다. 조선시대에 와 불교 대신 유교가 국가 중심 사상으로 변했다.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한 종교시설이자 교육시설은 바로 향교였다. 양산향교는 현재 교동에 있다. 교동(校洞)이란 지명 자체가 바로 향교가 있는 동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교동의 옛 이름은 구읍포(仇邑浦)다. 곡포(曲浦)나루라고도 불린 나루터가 있어 상업중심지로 역할했다. 

다시 시간이 흘러 현재 행정구역 체계를 갖춘 근대 이후 양산의 중심은 이름 그대로 중앙동이다. 중앙동에는 시청을 비롯해 각종 공공기관이 밀집했고, 터미널과 시장이 있었다. 행정ㆍ교통ㆍ상업기능이 밀집한 곳이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선거 때면 선거사무실이 몰려 있는 이곳에서 후보자마다 대형유세를 펼치곤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양산의 중심은 어디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신도시를 떠올리곤 한다. 과거 양산을 대표하는 곳이 통도사였다면 오늘날 양산이미지는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가 대표하고 있다. 문제는 양산의 중심이라 부르기엔 신도시가 너무 넓다는 점이다. 신도시 조성 후 오히려 양산은 모든 지역이 점으로 분산돼 중심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신도시 조성 전 “모로 가도 터미널만 가면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물론 그만큼 양산이 큰 도시로 성장했다는 반증이다. 


뜬금없이 중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어느 지역이나 주민에게 중심이 되는 상징적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회환경에 따라 변하더라도 주민에게 공감대를 뒷받침하는 공간의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이나 부산 서면로터리처럼 그 지역만 떠올려도 중심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는 공간은 그 자체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힘이 된다. 

양산이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가진 도시로 성장하고 있지만 중심을 찾지 못한다면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외형으로 보이는 기반시설이 중심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양산의 중심은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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