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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부끄러움은 누구 몫인가
오피니언

부끄러움은 누구 몫인가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7/04/04 10:00 수정 2017.04.04 10:00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기가 필요
세월호는 우리 현실을 비추는 거울
거울 앞에서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성찰이 가능한 사회 되길 바란다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맹자는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일찍이 ‘부끄러움’을 이야기했다. 

맹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며 사람이 본래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다. 이 가운데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떠올리는 시기다. 

1천75일이 지나서야 세월호가 깊은 바다 아래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기억 저편으로 미뤄뒀던 망각의 대상이었다. 숱한 의혹 속에 바다 아래 잠들어 있던 세월호가 눈앞에 나타나자 다시 3년 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주장이 함께 물 위로 올라왔다. 곧 3주기를 맞는 세월호 사고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말하고 있다. 

맹자가 성선설을 주장하며 사례로 든 예는 바로 우물에 빠진 아이였다.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다 놀라고 불쌍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어린아이 부모와 인연이 있어서도 아니고, 아이를 구하는 행동이 다른 이에게 칭찬받기 위함도 아니라고 맹자는 말한다. 또한 아이를 구하지 않아 비난 받기 싫어서도 아니다. 단지 아이가 위험에 처한 것을 근심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험에 처한 이를 볼 때 달려가 도움을 주려는 것을 인간 본성이라고 맹자는 생각했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세월호 사고와 구조 실패 원인은 여전히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숱한 의혹과 주장 속에서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미처 생을 피워내지 못한 어린 생명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우리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고 원인도 아직 밝혀내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야했던 부끄러운 현실 속에서 세월호가 떠오르자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하는 말들이 다시 쏟아지고 있다. “단지 해난사고일 뿐”, “유가족이 어린아이 생명을 팔아 장사를 한다”, “세월호 인양에 들어가는 비용은 세금 낭비”, “이미 죽은 사람 찾는 게 무에 그리 큰 일이냐”…. 

옮기기조차 부끄러운 말을 사석도 아닌 공공연한 장소에서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고 있다. 요즘 자주 쓰이는 말처럼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인가?”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탓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끄러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월호는 우리를 비추는 거울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거울 앞에서 행여 흐트러진 모습이 없나 확인하고 단장한다. 세월호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우리 사회 흐트러진 모습을 빼놓지 않고 비추고 있다. 이미 운행을 중단해야 할 낡은 배를 고쳐 무리하게 과적을 한 채 짙은 안개 속에서 출항한 세월호는 처음부터 불행의 시작이었다. 사람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수많은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 그래서 세월호는 우리 부끄러움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세월호 침몰 후 보상항목과 액수를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열을 올렸던 언론은 그 정점에 서 있다.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내자 윤동주 시인이 자꾸 떠오른다. 빼앗긴 조국의 청년으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식민지 시대 젊은이의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털어놓던 시인 윤동주. 참회록에서 윤동주는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면서 “욕될까”라는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그리고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며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을 잊지 않는다.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노력이 없는 사회. 우리는 그 사회 속에 살고 있고, 그런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세월호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일에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부끄러움을 알고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세월호 인양과 동시에 막말을 쏟아내는 이들은 부끄러움을 인정하기 싫은 것인지 모른다. 진실의 거울 앞에 서 있기 힘든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진실은 세월호 사고 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분명하고 확실한 사람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4월 16일 세월호 사고 3주기를 앞두고 있다.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윤동주 서시를 되뇐다. 별이 된 이들에게 용기 내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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