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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옛 양산땅, 구포를 되찾으려는 양산군민 이야기..
문화

옛 양산땅, 구포를 되찾으려는 양산군민 이야기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7/04/10 09:54 수정 2017.04.10 09:54
양산시립박물관 개관 4주년 특별전
1874. 한양으로 떠난 세 사람 이야기

오는 11일부터 6월 25일까지 87일간
시립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서 개최
양산 옛 땅 ‘구포’ 환속 관련한
역사 자료 100여점 전시 예정

1869년(고종 6년) 당시 양산군 세금 수입 대부분을 차지했던 노른자위 구포면이 동래군에 편입됐다. 양산군민은 이에 분개해 구포를 양산 관할로 환속하려 양산군수와 관찰사, 의정부에 상서문(上書文)을 올리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좀처럼 성사되지 않았다. 이에 양산군민은 우석규와 이기수, 서상노 세 사람을 대표로 뽑아 한양으로 보냈다. 세 사람이 양산군민 여론을 직접 임금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세 사람은 고생 끝에 한양에 도착했지만 임금을 만날 방법이 없었다. 궁리 끝에 죽기를 각오하고 남산봉수대에 올라 봉화를 올렸다. 봉홧불이 하늘을 밝히자 도성은 발칵 뒤집혔고, 세 사람은 의금부에 체포돼 신문을 받게 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봉화를 올릴 수밖에 없던 사연을 설명했고, 당시 영의정인 이유원이 그들을 가상히 여겨 봉화사건을 면책하고 귀향하게 했다. 이를 계기로 1874년 구포면은 다시 양산군에 귀속됐다. 양산군민은 이들의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1875년 내원사 입구 국도변에 비석을 세웠는데 현재 양산향교에 옮겨진 ‘구포복설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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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립박물관(관장 신용철)이 개관 4주년을 기념해 오는 11일부터 6월 25일까지 특별기획전 ‘삼인행(三人行) 1874, 한양으로 간 세 사람’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구포 환속문서를 통해 양산 옛 땅이었던 구포 역사를 살펴보고 환속 과정을 통해 양산사람이 보여준 애향심을 재조명하고자 마련했다.

















↑↑ 1980년대 구포나루와 구포다리
구포는 양산 8개 면 가운데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인구 역시 가장 많았다. 상선들이 무상으로 왕래해 돈과 재물의 출입이 다른 7개 면보다 100배나 돼 양산에서 구포는 세금을 가장 많이 거둘 수 있는 중요한 땅이자 목숨줄 같은 지역이었다.
ⓒ 양산시민신문



특별기획전은 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구포복설(龜浦復設) 상서문 12점을 비롯해 구포 관련 역사 자료 100여점을 전시한다.


특별전은 양산군 9개 면(面) 중 가장 넓은 면(面)이었던 구포지역이 조선 시대 말엽 동래부로 편입되자 구포를 지키기 위한 양산군민 노력과 그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당시 양산민 애향심과 양산 옛 땅이었던 구포의 역사적 중요성을 재조명하고자 기획했다. 전시 역시 모두 4부로, 또 개인 안위를 돌보지 않고 봉홧불을 피워 구포를 지킨 양산사람들의 고향 사랑을 담은 구포 환속과정을 스토리텔링해 선보인다.


1부에서는 조선 시대 영남 최대 조세 창고였던 감동창(甘同倉, 일명 남창)을 소개하며 낙동강 관문으로써 구포가 어떤 경제적 중요성을 가지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2부에서는 구포복설상서문(龜浦復設上書文) 12점을 통해 구포를 돌려받기 위한 양산군민 이야기를 실감 나고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꾸며진다. 3부에서는 대리천 제방을 쌓아 오늘날까지 칭송받고 있는 양산군수 이유하를 비롯해 구포에 남아있는 양산군수들 업적을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구포가 다시 동래(부산)로 편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물류와 교통 중심으로 주목받았던 구포의 뒷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구포복설상서
구포복설상서는 양산군민이 동래군으로 편입된 구포면을 환속하기 위해 작성한 상서문이다. 모두 12점으로 구성된 이 상서는 500년 간 양산에 속했던 구포가 양산에 미친 영향에 대해 역설하면서 각 면마다 환속조치를 요청하는 서명을 받기도 했다. 사진 왼쪽은 양산군수에게 올린 상서문으로 양산 구역에서 가장 중요한 구포를 동래부에 뺏긴 것에 대해 원통하고 답답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며 사진 오른쪽은 영의정에게 구포면이 동래부에 이속된 것은 불합리하다고 호소한 세 번째 상서문이다.
ⓒ 양산시민신문



특히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구포복설상서’는 1869년 당시 동래부에 편입된 구포를 환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양산군민의 절박한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박물관은 특별전 개막에 맞춰 구포복설상서 전문과 구포복설비 등 전시 내용을 정리한 도록을 발간하기도 했다.

















↑↑ 양산향교에 있는 구포복설비
구포복설비는 구포지역이 다시 환속된 일을 높이 삼아 세운 것으로, 구포를 양산군에 복원 조치한 영의정 은혜를 기리는 ‘영상대감 이유원 영세불망비’, 구포를 되돌려 받은 당시 양산군수 공덕을 찬양한 ‘군수 어윤중 영세불망비’, 비석을 건립할 당시 군수 공덕을 기린 ‘군수 이능화 애민선정비’등이 있다.
ⓒ 양산시민신문



양산시립박물관 신용철 관장은 “당시 양산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구포복설에 담긴 양산군민 이야기를 전시실에 담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신 관장은 “최근 양산은 급속한 인구 증가와 편리한 교통수단 발달로 지역공동체가 약화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특별전을 통해 양산군민들의 애틋한 애향심을 이해하고 이를 계기로 양산시민 역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시민의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문의 392-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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