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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분노와 망각의 시간
오피니언

분노와 망각의 시간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7/06/20 10:11 수정 2017.06.20 10:11
아파트 추락사 앞에 수많은 분노
아픔을 공감하는 사회를 꿈꾸다
곧 찾아올 망각의 시간에도 불구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믿음 기억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함께 분노했고, 함께 아파했다. 

지난 주 양산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은 사건이 있다. 지난 8일 양산지역 한 아파트 도색작업을 하던 40대 인부가 건물 아래로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다. 작업 도중 두려움과 무료함을 달래려 음악을 듣던 인부들에게 한 주민이 ‘시끄럽다’며 항의했고, 이후 그 주민이 인부가 매달려 있는 줄을 끊어버린 일이다. 

사건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분노했다. ‘시끄럽다’다는 이유로 목숨줄을 끊어버린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분노했고, 피해자가 다섯 아이 아버지라는 사실에 또다시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15일 오전 범행현장에서 이뤄진 경찰 현장검증 장면이 세상에 전해지면서 분노는 들끓어 올랐다. 고개 숙인 채 얼굴을 가린 가해자에게 비난이 쏟아졌고, 절규하는 유가족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분노는 분노에 그치지 않았다. 양산지역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가족을 위로하려는 성금모금을 시작했다. 분노한 만큼 사람들은 앞 다퉈 십시일반 정성을 보내왔다. 남겨진 아이들 입장에서,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미망인 마음으로, 다정했던 이를 허망하게 보내야 했던 친지들 심정으로 정성은 하나둘 모여 커다란 치유를 만들어냈다. 비록 상처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서로 정성이 상처를 보듬는 치유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마치 기적처럼 행동으로 옮겨졌다. 

처음 성금모금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양산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양산시민 한 사람으로 책임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다. 세 아이 아버지기도 한 웅상이야기 카페지기는 피해자에게서 자신 모습을 들여다본 셈이다. 그리고 그 마음에 각자 자신들 상황과 입장을 겹겹이 쌓아올리며 분노에 그치지 않고 치유로 나아갔다. 

비단 우리 사회 억울하고 어처구니없는 사건사고는 이 일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수많은 사건사고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심지어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상처 주는 일도 끊이질 않는다. 

세상에 끔찍한 일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사람들은 측은지심(惻隱之心)과 금수(禽獸) 사이를 늘 방황하고 있는지 모른다.

굳이 맹자(孟子)가 한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측은지심 즉,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반면 측은지심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금수 즉, 짐승과 같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는 때로는 누군가에게 천사처럼, 또 어떤 때는 누군가에게 악마처럼 행동하는 건 아닌지 곰곰이 되돌아본다. 

이번 사건에서도 극히 일부 사람들이 피해자 유가족을 조롱하는 모습이 보였다. 상대 아픔을 아픔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우리 사회가 각박하다고 여기면서도 지쳐 쓰러지지 않고 힘을 내는 것은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고, 나와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이들이 서로 아픔을 위로하기 때문이다.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야말로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사실을 믿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분노는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잊을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일들을 모두 세세히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는 기억을 잊을지 몰라도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다. 각자 바쁜 삶에 쫓겨 다니다 잠시 기억을 잊는다해도 문득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상처를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잊고 지낸 시간을 또 한번 반성하면서….

안도현 시인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詩)가 주는 울림은 서로를 의지해야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상황을 ‘연탄’이란 소재로 풀어내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너는 누구에게/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자신의 몸뚱아리를/다 태우며 뜨끈뜨끈한/아랫목을 만들던/저 연탄재를/누가 함부로 발로 찰 수 있는가?/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저 연탄재를/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 있는가?”

뜨거운 분노는 식기 마련이다. 식어가는 분노는 곧 망각으로 이어진다. 분노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공감은 냉기와 함께 서서히 무관심으로 모습을 달리한다.

지금은 분노의 시간이다. 허망한 죽음 앞에서 한 개인 일탈로 모든 것을 덮어서는 안 된다. 다시 분노하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합리와 모순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시간이다. 수많은 해석과 진단이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대답을 찾으려 할 것이다. 곧 다가올 망각의 시간을 대비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망각과 반성을 반복하며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믿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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