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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황찬해(69), 양한수(71), 정수임(73), 김삼구(81), 김민수(92), 김순자(74), 여복숙(70), 차도룡(80), 서화순(69), 서생금(68) 어르신. |
ⓒ 양산시민신문 |
그래서 양산시노인복지관(관장 김정자) 소속 어르신들이 자신의 한평생을 기록하기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25일, ‘내 인생 책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자서전 만들기 수업에 어르신들이 도전했다.
“다들 글쓰기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해봤습니다. 호기심에 시작했지 진짜 해낼 거라고는 우리도 몰랐거든요”
어르신들은 입을 모아 첫 수업을 떠올렸다. ‘정말로 내가 책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의문 속에 시작했지만, 오영진 부산웰다잉문화연구소장과 함께 10번에 걸쳐 진행한 수업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오 소장과 함께 내 인생 돌아보기, 자서전 주제 정하기, 어린 시절과 청년기, 중ㆍ장년기 회상 등 단계를 거쳐 어르신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어르신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졸업하거나 다녔다. 한국전쟁도 겪었고 경제 발전 속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대한민국을 지켜본 산 증인이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의 기록을 담아내는 일이 마냥 쉬운 건 아닌 게 사실이었다.
정수임(73) 어르신은 “수업 시간은 물론 짬을 내 때로는 늦게까지 깨어 있으면서 글을 써내려 갔다”며 “‘내 문장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하는 고민도 많았지만 계속 다듬고 또 다듬으면서 완성한 자서전”이라고 말했다.
김삼구(81) 어르신은 “지난날 겪었던 고생과 고민, 살아온 배경과 과정, 위기를 어떻게 넘겼는지 세세하게 적어내진 못했지만 내 자식들, 손주들에게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 남길 수 있어 다행”이라며 “내가 자라던 시절과 지금 시절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지만, 밝음보다는 어두움을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어르신들이 말하는 자서전 의미는 ‘치유’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힘든 기억, 그리고 그 속에 소소하게 웃음을 전하는 따뜻한 추억까지 떠올려가며 내 삶이 나쁘지만은 않았구나 하고 되새겨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서화순(69) 어르신은 “지나온 이야기를 끄집어내다 보면 옛날의 나를 용서하고 그 힘든 날을 이겨낸 내가 대견하기도 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며 “지금까지 내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 삶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최고령으로 자서전 쓰기에 도전한 김민수(92) 어르신은 “인생의 먼 길에서 처음을 되돌아보기엔 까마득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젊은 날 꿈과 희망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며 “이 평범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함께한 선생님, 기회를 준 복지관 등 어르신들은 많은 이에게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특히 책 분량이 정해져 있어 아쉽게 자서전 쓰기 대신 이들 도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으로 기록한 양한수 어르신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양한수(71) 어르신은 “자서전 쓰기에 함께 도전했지만, 뒤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첫 강의부터 자서전 출간기념식까지 사진으로 기록하는 재미도 컸다”며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같은 글을 끊임없이 다듬으며 ‘명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니 더 많은 이가 자서전 쓰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자랑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삶의 작가’라는 누군가 말처럼, 어르신들은 자신 삶을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글’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이번 글이 아쉬워서 다시 또 써보고 싶다”며 환하게 웃던 어르신들 말처럼 다음엔 작가 9명 개인이 써낸 자서전이 나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