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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
ⓒ 양산시민신문 |
의사결정과정에 너무 많은 주장이 앞서면 바람직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뜻을 가진 속담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배가 엉뚱한 곳을 향해 갈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 속담은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때때로 부정적 의미를 돌려 말할 때 사용하곤 한다.
최근 탈원전과 관련해 다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정부가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중단을 논의하기 위해 ‘시민 배심원제’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기로 하자 국내ㆍ외 대학 60곳과 원자력이나 에너지 관련 학과 교수들이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은 졸속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문가는 권력을 가지고 행사하는 주체가 아니다. 전문가 역할은 국민 모두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로써 의미를 가진다. 전문가 집단이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려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어리석은 대중’이다. 그리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태도다.
우리 민주주의는 모든 이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기본원리에서 출발한다. 남녀 성별, 나이 많고 적음, 빈부격차, 지식습득정도 등 다양한 차이에도 민주주의는 ‘차별’ 대신 ‘평등’을 지향한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구절은 이 같은 민주주의 원리를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부터 우리는 수많은 ‘민주주의’를 이야기해왔다. 국정농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대통령 탄핵과 새로운 정부 선출과정을 거치는 정치적 격동기 속에 저마다 생각하는 민주주의 모습이 쏟아져 나왔다. 정의로운 나라, 공평한 나라, 상식이 통하는 나라와 같은 목표를 이야기했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함께 쏟아져 나왔다. 흡사 수많은 사공이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노를 젓는 모습처럼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사실 민주주의는 효율성 측면에서 최상의 정치제도는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들은 목표 달성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힘든 비합리적인 방식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여전히 박정희 정권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일사불란하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
민주주의가 세상에 등장하기 이전, 왕정 시대에 권력자 한 사람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다시 왕정 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장에 몸서리치며 모든 국민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오늘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이들이 더 많다.
문제는 민주주의가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여길 때 왕정 시대와 같은 독재가 차라리 낫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곤 한다는 점이다. 뛰어난 지도자가 어리석은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은 세계 어느 곳이나 어느 역사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민주주의를 ‘우민주의(愚民主義)’라고 부르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대다수 사람들이 어리석기 때문에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는 이유다. 이들이 바라보는 민주주의는 ‘권력’을 갖고 활용하는 방식으로써 민주주의다.
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책임’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과거 왕정 시대나 독재정권 시대에서 권력은 개인 또는 소수집단 전유물처럼 사용해 왔다. 돌이켜보면 인류 역사상 특정 개인이나 소수집단이 내린 잘못된 결정으로 일어난 불행한 일에 대한 책임은 결정을 내린 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권력을 가지고 정치적 결정을 내렸지만 그 영향은 하루살이가 버거운 민초(民草)에게까지 미쳤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잘못된 정치적 판단으로 임진왜란을 대비하지 못했던 선조는 임란이 일어나자 서울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 다녔지만 전란으로 인한 어려움과 전쟁을 극복하고 왜군과 맞서는 일은 백성 몫이었다. 무능했던 왕조와 부패한 관리들이 일본과 치욕스러운 을사늑약을 체결할 때도 식민지 시대 고난은 이 땅을 살았던 모든 이들에게 함께 짊어져야 할 멍에였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은 함께 나눠야 하는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한 방식이다. 책임을 지는 이들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권력제도로 민주주의를 파악하기 바쁜 나머지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놓칠 때마다 사람들은 효율성을 이야기하고, 어리석은 대중이라며 손가락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