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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당신의 휴가는 안녕하십니까?..
오피니언

당신의 휴가는 안녕하십니까?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7/08/08 10:07 수정 2017.08.08 10:07
휴가 역시 일처럼 치열하게 사는 우리
여름휴가, 다시 떠올리는 여행의 의미
‘낯섦’과 ‘일탈’이라는 여행의 즐거움
‘쉼’을 느긋하게 즐기는 휴가 되길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낯선 환경과 문화 그리고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느끼는 ‘낯섦’이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 자체가 주는 짜릿함에다 그동안 스스로를 가둬온 많은 시선에서 벗어나는 일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일탈’이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요즘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공항마다 낯선 행선지를 향해 떠나는 이들이 가득하다. 국내를 벗어나 해외에서 느끼는 ‘낯섦’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 극대화한다. 익숙한 국내에서 느끼지 못하는 당황스러움과 어색함 등과 같은 감정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해외여행이 보편화하면서 유명 관광지는 한국인들로 가득 하다. 웬만한 해외 관광지에서 한국인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 정도다. 오히려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해외로 떠나고 있다. 홀로 낯선 공간에 떨어져 낯선 시간을 즐기고 싶었던 이들은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국말에 당황스러울 정도다.


성급한 일반화일지 모르지만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들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바쁘다. 예전에는 여행책자를 손에 들고 분주하게 목적지를 찾아가는 모습이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바라보며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하루 일정을 미리 계획하고 마치 작전을 수행하듯 움직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해외에 나가면 꼭 들러야 할 명소와 맛집 리스트를 빼곡하게 정리해 숨 돌릴 틈 없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몇 해 전 아내와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하고 있을 때다. 한 달 넘게 유럽을 돌아다니다 한인민박에 머문 적이 있다. 한인민박은 대부분 조식을 한식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오랜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며칠 민박에서 지내다보니 아내가 더 힘들어하는 게 아닌가?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이해가 됐다. 한인민박은 남녀가 따로 방을 쓰는데 아내와 떨어져 지냈던 나는 잘 알지 못했던 사연이 있었다. 장기여행을 계획한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서두를 일이 없었고, 밤늦게까지 움직일 일도 그다지 없었다. 처음 집을 나설 때부터 오늘 하지 못한 일은 내일 하면 된다는 식으로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방을 썼던 젊은 친구들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큰마음 먹고 여행에 나섰던 친구들은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밤늦게까지 목표했던 일들을 마치고 들어와서는 다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들 사이에서 아내는 내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 여행을 떠나서도 고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일종의 직업병인데 여행 때마다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 바로 카메라다. 무거운 카메라를 끙끙 짊어 메고는 늘 피사체를 찾아 분주히 움직인다. 다른 여행객처럼 아름다운 풍경이나 건물 그리고 아내 모습을 찍기도 하지만 도로 표지판이나 관광안내도, 심지어 쓰레기통을 찍기도 한다. 기자 생활이 몸에 익다보니 자연스레 국내 상황과 다른 취재 아이템을 사진 속에 담아두는 일이 습관이 돼 버린 셈이다. 


아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낯선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내 모습은 여행에서도 ‘일’을 찾는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아내 역시 불만을 털어놨다. 여행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노을이나 멋진 야경을 함께 바라보고 싶은데 내 눈은 카메라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여행지에서 해야 할 일과 맛집 리스트를 빼곡하게 머릿속에 담아두고 바쁘게 움직이는 아내가 불만일 때도 있다.


여행지에서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없는 한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어릴 적부터 쉼을 느긋하게 즐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탓일까?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늘 바쁘다.
여름휴가가 한창이다. 다들 휴가계획을 세우고 가족과 친구, 연인과 일상을 떠나고 있다. 하지만 휴가를 즐기기보다 전투처럼 치르고 난 뒤 후유증을 앓는 경우도 많다. 휴가 역시 일처럼 보내는 문화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에 익숙한 우리는 ‘쉼’마저 일상의 연장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낯섦’과 ‘일탈’이라는 여행의 즐거움을 우리는 만끽하고 있는가? 그래서 묻는다. 


“당신의 휴가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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