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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기온보존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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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보존 법칙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7/08/16 10:14 수정 2017.08.16 10:14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현상
우리 모두가 편의를 선택한 대가
계절 변화 따라 잊기 쉬운 기억들
다시 여름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내 더위 사려!”

우리 조상들은 정월대보름이면 이른 아침 지인을 찾아 더위팔기를 하곤 했다. 음력으로 한 해 첫 날 곧 다가올 모진 더위를 이기려는 풍습이다. 굳이 지인에게 더위를 팔아먹는 짓궂음이라기보다 어차피 겪을 수밖에 없는 무더위를 농담으로라도 무사히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올해 더위는 모두에게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가뭄까지 겹쳐 무심한 하늘만 바라보는 날이 더 많았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여름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더위’와 ‘장마’였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면 곧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몇날며칠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 내리는 일이 다반사였던 장마기간은 이제 먼 추억처럼 느껴진다. 기후 변화로 장마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국지적으로 짧은 시간동안 쏟아 붓는 호우가 어느새 일상이 돼버렸고, 올해는 이마저도 일부 지역에서만 집중호우 양상으로 나타나고 다른 지역은 긴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굳이 지구 온난화라는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과거 기상과 오늘날 기상 상황이 달라졌다는 사실은 모두가 몸으로 느끼고 있다. 



지난 주 양산지역은 역대 일일최고기온 기록을 이틀 연속 갱신했다. 더운 지역으로 악명을 떨쳐온 대구를 일컬어 ‘대구+아프리카’ 합성어인 ‘대프리카’라고 불렀지만 이젠 ‘양프리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할 지 모른다. 


양산은 전통적으로 덥고 추운 도시다. 지형을 살펴보면 영축산에서 오봉산으로 이어지는 산맥과 정족산에서 금정산으로 연결되는 산맥 사이 분지 지형에 도시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동풍은 산맥을 넘어서며 온도가 올라 덥고 습한 바람을 양산에 뿌려왔다. 


여기에 양산은 전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개발이 이뤄지는 도시 가운데 하나다. 과거 논과 밭, 산으로 이뤄졌던 지역에 하나 둘 높은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로를 개설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집집마다 더위를 식히려는 에어컨이 돌아가며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다. 흙과 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아스팔트와 시멘트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과학이론 가운데 ‘질량보존 법칙’이 있다. 화학반응 전후 반응물질 전질량(全質量)과 생성물질 전질량이 같다는 법칙인데, 쉽게 풀이하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그 모습이 달라져도 결국 성분이 변할 뿐이고 새로운 물질이 생기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질량보존 법칙은 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현상을 재치 있게 설명하기도 한다. 최근 직장인 사이에서 유행하는 우스갯소리로 ‘돌아이보존 법칙’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직장 동료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가령 ‘내 직장 상사 중에 돌아이가 있다’는 표현은 그래서 팀을 옮기면 그 팀에도 똑같은 돌아이가 있다던가, ‘옮긴 팀 상사가 조금 덜 돌아이다’는 의미는 대신 그런 상사가 여러 명 있다는 식으로 어디를 가나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 동료가 있기 마련이라는 웃지 못할 상황을 ‘돌아이보존 법칙’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기온 역시 질량보존 법칙에 빗대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산과 들을 파헤쳐 도시를 만든 결과 더위를 식혀주던 나무가 사라졌고, 과거보다 더운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 또 다시 자연을 파괴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지금 이상기온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우리가 편의를 추구하면서 감당해야 할 자연스러운 일인 셈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존 법칙을 설명하면, 무더운 여름을 견디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집집마다 에어컨이 있다는 사실이 당연스레 보이지만 손부채에 의지해 힘겹게 여름을 나야하는 우리 이웃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는 현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누군가 시원한 여름을 보내야 하는 대가로 다른 누군가는 더 굵은 땀방울을 쏟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다행히 비가 내리고 있다. 절정에 이르렀던 더위 역시 지난 주말부터 몰라보게 시원한 날씨로 변했다. 어리둥절하지만 계절 변화는 자연 이치다. 갈팡질팡하는 기상청 예보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 돼버린 요즘, 정월대보름 더위를 팔러 나섰던 풍습이 마냥 해학과 풍자에 그치지 않을지도 모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씁쓸함이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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