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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무녀리가 바라본 첫 세상..
오피니언

무녀리가 바라본 첫 세상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7/09/05 09:07 수정 2017.09.05 09:07
한 도시 한 책읽기는 식구 만들기
마음의 양식 나누는 양산시민 되길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의 소중함
‘고맙다’고 말할 용기에서 깨달아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식사하셨습니까?”

세상 모든 나라마다 자신 언어로 사용하는 인사말이 있다. 유독 우리나라 인사말 가운데 “식사하셨습니까?”라는 인사는 다른 나라와 다른 느낌을 준다. 오랜 세월 전란과 어려운 경제환경을 이기며 살아온 탓일까? 밥을 먹고 다니는지가 중요한 인사말이 돼 버린 것을 보면 가끔 삭막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족을 뜻하는 또 다른 표현은 ‘식구’(食口)다. 함께 밥을 먹는 사이라는 의미다. 여기에서도 ‘밥’은 서로 안위와 이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다. 먹거리를 나누는 사람들. 우리는 식구를 그렇게 이해해 왔다. 삭막하다고 느낀 인사말도 이쯤이면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겨본다. 
 
양산시립도서관이 올해부터 ‘한 도시 한 책읽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살고 있지만 정작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운 요즘에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일은 마치 식구가 밥을 나누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다. 올해 ‘모두 깜언’이라는 책을 선정했는데 읽고 나니 참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깜언’은 베트남어로 ‘고맙다’는 의미다.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처럼 책은 중학교 3학년인 유정이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강화도 시골마을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태어나 성장한 유정이는 부모 없이 할머니와 작은 아빠 그리고 베트남에서 온 작은 엄마와 조카들과 함께 식구다. 또한 책 속 유정이 곁에는 성장통을 함께 앓고 있는 단짝 친구들과 힘겨운 농촌현실 앞에 좌절하는 어른들 모습이 아름다운 시골풍경과 겹쳐 묘한 성장이야기를 들려준다. 

유정이가 바라보는 시골 풍경은 봄부터 겨울까지 아름답게 그려진다. 하지만 농촌현실은 막막함 그 자체다. 어른들은 유정이가 바라보는 풍경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팍팍한 현실을 보내고 있다. 조금씩 성장하는 유정이와 친구들에게도 세상은 녹록치 않은 벽이다. 
 
그럴 때 유정이를 일으켜주는 말 한 마디가 바로 ‘깜언’, 고맙다는 말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한뼘 성장한 스스로를 확인한다. 

유정이는 태어날 때부터 속칭 ‘언청이’로 구순 구개열을 앓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태어난 뒤 자신으로 인해 부모는 갈등을 겪다 결국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떠나게 된다. 유정이가 할머니 손에 자란 배경이다. 유정이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 역시 각각 다른 가정사 속에서 힘든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 가운데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는 친구들이다. 

그리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온 작은 엄마 역시 이방인으로 녹록치 않은 생활을 보낸다. 다정한 작은 아빠 역시 허물어가는 농업을 일으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번번이 현실 벽에 부딪치고 있다. 누구 하나 쉬운 삶이란 없다. 

하지만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돼 서로 ‘고맙다’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식구. 그 식구들이 팍팍한 현실을 이기는 힘이 된다. 

책에서 나오는 표현 가운데 가장 마음 깊이 와 닿은 구절이 있다. 

모내기를 마치고 유정이와 산책을 나온 작은 아빠는 “유정아, 이 벼도 말이지, 주인의 발소리를 알아듣거든. 이렇게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또 한낮에도 논에 내려와서 주인 발소리를 들려주면 벼가 아, 내 주인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하면서 쑥쑥 자라는 거야. 뭐든 살아 있는 건 말이지, 사랑이 가장 중요해”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랑하는 일 못지않게 사랑을 알아채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낀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가끔 잊을 때가 많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 우리에게 ‘밥’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식구는 단지 밥을 나눠먹는 사이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사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즈음, ‘무녀리’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온다. 

무녀리는 비로소 문을 열고 나왔다는 뜻의 ‘문열이’가 변한 말이다. 한 태에서 낳은 여러 마리 새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새끼를 일컫는데 제일 먼저 나온 새끼는 다른 새끼들에 비해 유난히 비실비실하고 몸이 허약하다고 한다. 유정이 집 개 복동이가 나은 새끼 가운데 곧 죽고 마는 ‘꼬맹이’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나온 무녀리라는 표현은 한동안 머리 속을 맴돌았다.

우리가 처음 세상을 접했을 때 우리 모두는 무녀리가 아니었을까? 약하고 작은 존재인 탓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세상을 어떤 모습일까?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때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다는 평범한 진실을 일깨우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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