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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김영란 법과 알렉산더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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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법과 알렉산더의 칼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7/09/26 10:11 수정 2017.09.26 10:11
사람과 사람 간 공통점을 보는 방식
지연ㆍ학연이 아닌 인품ㆍ능력으로
김영란 법 시행 1년이 안겨준 변화
얽히고설킨 지연ㆍ학연사회 재성찰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경주(慶州) 이(李)가 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이 가진 장점 가운데 하나가 다양한 삶의 이력을 가진 이들을 늘 만난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설레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나와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진 이들 이야기를 듣는 상황은 무척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그들이 기자에게 자신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일은 어려운 과정임에 틀림없다. 처음 기사를 작성할 때 가장 어려운 취재가 인터뷰라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겉핥기식 기사를 한참을 쓰고 나서야 문득 되돌아보고 부끄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들, 누구 하나 예사로운 삶을 살아온 이들이 없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때론 억울함을 호소하고, 때론 자랑스럽게 자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속에는 감쳐진 진실을 한 걸음 더 들어가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이 숨어 있고 미처 표현하지 못한 사연을 헤아려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대 중반 시작한 기자생활은 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이 만나야 하는 상황을 더 많이 안겨줬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 생각을 꺼내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은 한참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얻은 노하우였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묵묵히 귀를 열어놓아야 했다. 


취재를 시작하면서 인간적인 유대감을 쌓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서로 공통점을 찾는 일이다. 비단 취재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서로 공통분모를 발견할 때 그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양산지역 출신이라면 곧 어느 동네에서 태어났으며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 심지어 누구네 아들인지…. 한바탕 호구조사가 끝난 뒤 비로소 취재를 시작한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아버지 고향은 밀양이라는 말을 하면 무언가 공통점을 찾지 못한 듯 머뭇거리기도 한다. 처음엔 낯선 상황이 어색했지만 이내 나 스스로 그들과 공통점을 찾는 방법을 하나둘 터득하기 시작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姓) 씨 가운데 하나인 이(李) 씨 성을 가진 나는 명함을 주고받을 때 상대 성 씨를 확인하곤 “경주(慶州) 이(李)가 입니다”라고 공손하게 말한다. 양산지역 이 씨 가운데 경주를 본관으로 하는 이들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본관을 확인하고 이름에 드러나는 항렬을 묻기 시작하다 곧 친밀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양산에 새 터전을 잡은 유입인구 역시 서로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다 보니 출신 지역이나 학교 따위를 물어보는 일도 잦다. 좁은 국토에 살다보니 마음만 먹으면 연결고리 하나쯤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대한민국을 지연과 학연사회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인 탓에 첫 만남에서 호구조사가 필수적인 의례처럼 여겨진다. 


오는 28일이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 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방지법을 시행한 지 1년이 된다. 추석을 앞두고 1년을 맞은 김영란 법은 여전히 사회적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연과 학연으로 뒤섞인 사회에서 단호한 결정없이 새로운 문화를 정착하는 일은 쉽지 않다. 


김영란 법이 우리 사회에 가지는 의미는 흡사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고대 프리기아라는 나라에 고르디우스 전차가 있었는데 그 전차에는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매듭이 달려 있었다. 아시아를 정복하는 사람만이 그 매듭을 풀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는데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그 말을 듣고 칼로 매듭을 잘라버렸다는 일화를 일컫는다.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이 필요한 일이 분명 있지만 얽히고설킨 매듭은 과감하게 끊어내는 일도 분명 있어야 한다. 이제 1년을 맞은 김영란 법이 지연과 학연으로 얽힌 우리 사회에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을 끊어낸 칼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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