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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축제에도 쉼표가 필요하다..
오피니언

축제에도 쉼표가 필요하다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7/10/17 10:24 수정 2017.10.17 10:24
빽빽한 일정 따라 움직이는 여행처럼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 축제문화
‘즐김’과 ‘쉼’이 공존하는 축제로
시민에게 더 사랑받는 삽량축전 기대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여행과 축제는 일상을 벗어나는 일탈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 쳇바퀴 돌듯 매일 경험해야 하는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낯선 시간과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부대끼는 경험은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고 일상에 활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고 축제를 즐기려 애쓴다. 

우리네 여행문화는 매우 전투적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 빽빽하게 짜인 일정에 따라 마치 과제를 수행하는 듯 움직이곤 한다. 서구권에 비해 휴가기간이 턱없이 짧은 탓인지 ‘빨리빨리’를 선호하는 습성 탓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네 여행은 잠시 머무를 틈 없이 빼곡한 일정을 소화하기 급급한 경우가 많다. 이국땅에서 가끔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낯선 풍경과 사람을 바라보며 쉬고 있는 여행자를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여행 못지않게 우리네 축제문화도 전투적이다.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3일 동안 양산천을 중심으로 2017 삽량문화축전이 열렸다. 올해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민을 맞았다. 양산천 특설무대와 삽량무대, 거리무대에서 시간 단위로 쉴새없이 공연이 펼쳐졌고, 실내체육관 앞에서는 거리 버스킹 공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로 다양한 체험ㆍ전시부스를 축전 기간 내내 운영했다. 볼거리가 많은 만큼 양산천을 찾은 시민 대부분 환한 표정으로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축전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2006년부터 꾸준히 완성도를 더하기 위해 노력해온 삽량문화축전은 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더 많은 프로그램을 추가해왔다. ‘삽량’이라는 신라시대 양산 지명을 축전 이름으로 선택한 탓에 역사적 정체성을 축전에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실상 시민 피부에 와 닿는 체감도는 크지 않다. 


오히려 종합문화축전이라는 성격에 걸맞게 양산지역 거의 모든 문화적 자원을 끌어 모으겠다는 의지가 두드러진다. 그래서일까? 축전 현장은 늘 분주하다. 서로 성격이 다른 공연이 뒤섞이기 일쑤다. 


어르신들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는 공연장 너머에는 읍면동 풍물패들이 흥을 돋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겹친다. 한 자 한 자 정성을 기울여 써내려간 붓글씨를 감상하기에는 온종일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가 반갑지 않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악기소리와 노랫소리가 뒤엉켜 정신이 멍해지기도 한다. 


넓은 축전 현장을 돌아다니다보면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축전 어느 곳에서도 ‘쉼표’가 될 만한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지친 다리와 눈, 귀를 쉬게해줄 시간은 각자 몫이다.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다 오히려 여행후유증을 앓곤 하듯이 축제 끝 역시 후유증을 남기곤 한다. 


삽량문화축전이 10년을 훌쩍 넘기면서 양산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한 만큼 많은 이들에게 축전이 낯설지 않다. 해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추가되고 있지만 이미 시민에게 익숙한 풍경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지금까지 삽량문화축전이 살을 덧붙이고 색을 입히는 과정이었다면 새로운 10년은 몸매를 가다듬고 색을 진하게 만드는 과정이 돼야한다. 50가지 반찬이 나오는 화려한 한정식집에 갔더니 정작 먹을 것은 없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는 축전이 아니라 단품이지만 맛집을 찾았다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축제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올해 삽량문화축전이 반가웠던 이유는 정체불명 야시장이 자리 잡았던 공간에 프리마켓이 서고 그 곳을 여유 있게 둘러보는 시민이 차지했다는 점이다. 10년 동안 야시장은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해마다 문제를 지적하는 동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만 되돌아왔지만 결국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 문제의식을 가진 공통점을 하나 둘 찾아내 보다 나은 축제로 삽량문화축전을 만들어 가길 기대할 뿐이다. 

 
내년에는 더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축제에도 ‘쉼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돌아보고 ‘즐김’과 ‘쉼’이 함께 어우러지는 삽량문화축전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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