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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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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시간

이현희 기자 newslee@ysnews.co.kr 입력 2017/10/24 09:47 수정 2017.10.24 09:47
탈원전이라는 밀물이 몰려오는 시간
새로운 가치와 기존 가치가 공존
민주주의 작동 원리를 다시 고민
헌법에 보장한 주권을 생각한다













 
↑↑ 이현희
본지 편집국장
ⓒ 양산시민신문 
사실 과학적으로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밀물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썰물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시간을 경험해왔다. 오히려 밀물의 시간만 존재하거나 썰물의 시간만이 사회를 지배하는 순간은 극히 드물다. 새로운 가치가 늘 기존 가치를 위협하고 어느새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로 자리바꿈을 하는 사례를 수도 없이 봐왔다. 


지난 20일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공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결론은 멈췄던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건설은 계속하되, 원자력 발전은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공론화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인다며 입장을 밝혔고, 아울러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다시 한 번 천명했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대에서 원전은 각광받은 에너지원이었다. ‘값싸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관료사회와 전문가 집단 이야기를 오랜 세월 국민 대부분이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만 하더라도 원전 안전성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소수 환경단체에서 끊임없이 탈원전을 주장했지만 찻잔 속 태풍처럼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후쿠시마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원전 안전성을 걱정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시간이 시작된 셈이다. 

 
이번 공론화위원회 과정은 우리 사회 원전 논의가 본격적인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시간으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공론화위원회 구성 시작부터 지금까지 원전과 관련한 언론보도가 이렇게 많았던 시기가 있었나 되돌아본다. 단지 언론보도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원전, 에너지와 같은 단어가 대화 소재로 등장하는 일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공론화위원회 결정에 문제제기 하는 이들은 결과에 집착하는 못된 습성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껏 탈원전을 주장해온 이들은 원전 추가 건설 결정이 온당치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원전 발전을 선호하는 이들은 결국 건설해야 할 원전을 괜한 시간 낭비, 돈 낭비로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며 비판하고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은 공론화위원회 결정이 타당한가, 그렇지 않은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라는 방식을 거쳐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 결정하는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이번 공론화위원회 활동을 되짚어보자는 의미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모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가정에 기반을 둔 정치제도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진위(眞僞), 선악(善惡)을 식별해 바르게 판단하는 본질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믿음이다. 


불행하게도 민주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같은 믿음을 허물어뜨린 사례를 셀 수 없이 확인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직접민주주의는 소크라테스를 죽였고, 수많은 인명을 학살한 히틀러 역시 민주주의를 통해 집권했다. 우리나라 역시 정치적 고비마다 민주주의라는 과정을 통해 독재를 정당화한 사례를 겪어왔다. 


이번 공론화위원회 의사결정과정에서 눈여겨보는 점은 바로 ‘학습과 토론’이라는 단어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어느덧 정기적으로 공직자를 선출해서 권력을 위임하는 일에 그치고 있다. 이른 바 대의민주주의가 뿌리 내리면서 주권, 즉 결정권을 가진 국민 스스로 정책에 참여하는 일을 거세해버렸다. 권한을 위임 받은 국회를 욕하면서도 아무런 견제를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놓이고 만 셈이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헌법에 보장한 ‘국민주권’이라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탓이 크다. 여기에는 의사결정권을 독점하려는 정치권과 전문가 집단 그리고 언론의 불성실이 국민을 우매하다고 치부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공론화위원회 결정을 폄하하는 이들 대부분 지금까지 독점해온 의사결정권을 뺏겨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마저 엿보인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이번 공론조사 과정은 국민 누구나 적절한 기회를 통해 학습과 토론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존 의사결정방식과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 학습에 필요한 전문가 정보가 제대로 제공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국민이 특정사안에 학습하는 기회는 언론이 제공해야 한다. 이 같은 전문가 집단과 언론 역할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채 단순인기몰이식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민주주의가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 모습은 아닐까?


탈원전과 원전이라는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시간을 지켜보듯 지금 우리는 대의민주주의라는 허울 아래 국민이 갖고 있는 의사결정권을 어떻게 되돌려 받을 것인가를 두고 다시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시간 한 가운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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