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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내 차에는 길고양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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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에는 길고양이가 산다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7/11/07 08:58 수정 2017.11.07 08:58













 
↑↑ 김민희
minheek@ysnews.co.kr
ⓒ 양산시민신문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이 생겼다. 고양이 7마리를 키우는 ‘집사’의 방송인데, 개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는 랜선 집사로서 그렇게라도 고양이를 보는 것에 만족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얼떨결에 한 달 전부터 캣맘으로 살게 됐다. 더울 때는 우는 소리로만 생사를 확인했던 길고양이들이 점점 추워지니 내 차 밑으로 밤을 보내는 장소를 옮기게 된 것이다. 덕분에 아침이면 보닛을 똑똑 두드리고 차 주위를 한 바퀴 돌며 혹시 타이어 사이에서 잠들어있나 살펴보는 게 버릇이 됐다. 다행히 잠귀 밝은 아이들은 아침이 밝아오면서 차들이 달리는 소리에 이미 사라져 자리에 없는 날이 대부분이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늘 같은 자리에 차를 주차하면 어떻게 아는지 근처에 와 있다. 그리고 내가 내리면 이제 자기들 구역이라는 듯 차 밑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한동안은 얼굴 구경도 힘들었다. 다가가면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는 야생 길고양이는 초보 캣맘에게 곁을 내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 궁금했던 나는 또 다른 캣맘인 친구에게 언젠가 받았던 츄르(고양이가 환장한다고 소문난 간식이다)로 아이들을 유혹했다. 바닥에 떨어진 사료를 주워 먹는 아이들이 가여워 집에 있던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차 밑(그러나 내가 애들 얼굴을 볼 수 있는 위치)에 넣어두고 한참을 기다렸다. 몇 번이고 야옹 하고 울더니 맛있는 냄새에 못이긴 척 얼굴을 내밀었다. 하얀 몸에 얼굴에만 까만 점이 있는 ‘애기’와 갈색과 노란 털이 예쁜 ‘냥이’(동네에서 유명한지 불리는 이름이 있었다)와 실질적인 첫 만남이었다.


아이들과 만남 이후로 내 가방에는 꼭 고양이 간식이 들어있다. 그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혹시나 마주칠 길고양이에게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방에도 혹시 떨어지면 안 되니까 작은 캔을 몇 개 준비해뒀다. 앞으로 닥칠 추위가 걱정돼 ‘겨울집’도 사버렸다. 많은 아이를 돌볼 순 없을지라도, 내 주변에 있는 아이들만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일방적인 애정이지만 어쨌든 얼굴을 자주 보게 되니 걱정이 커졌다. 춥지는 않을까, 밥은 먹고 다닐까, 교통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 괴롭히는 사람은 없을까…. 이런 걱정에 누군가는 ‘정 그러면 네가 키워’라고 할지 모르지만, 아직 아이들에게 손 한 번 못 대본 내가 집사가 될 자격이나 있는지, 잘 키울 자신은 있는지가 사실 더 걱정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원하는 바인지도 모르겠고. 비겁하다면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길고양이를 한 자리에 머무르게 하는 게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싫을 수 있다는 건 “우리 집(인간 영역)에 길고양이가 침범했다”고 말하는 엄마를 통해 충분히 알게 됐다. 거기다 쓰레기봉투를 헤집어 놓거나 밤에 심하게 울어버릴 때면 “저놈에 고양이 때문에 못 살겠다”며 하소연하는 걸 바로 옆에서 보니 길고양이가 불편한 사람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나는 그저 아이들이 겨울에도, 아니 굳이 겨울이 아니더라도 따뜻하길 바란다.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에 내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인간과 길고양이 공생’을 얘기하지만 저마다 공생 기준은 다르고 인간 기준에서 공생을 이야기한다는 게 썩 내키지 않는 것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어놓을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길고양이에게 마음이 움직인 누군가는 작은 베풂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아이들이 불편하고 싫다고 해서 괴롭힘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있는 그대로 존재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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