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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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향교(鄕校)가 교동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있지만, 그곳이 무엇을 했던 곳인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곳인지 대부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예전 향교는 성균관과 더불어 우리나라 중추적인 교육기관으로 존재했다. 조선 시대에 지어져 유림이 모여들었던, 또 양산 최초 근대적 교육기관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그 역할이 바뀌어 지역 청소년과 시민을 대상으로 각종 강좌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에서 담당하지 못하는 인성 교육과 유교에 대해 알리는 전통문화 전당으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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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중심에는 전교(典校)가 있다. 향교에서 진행하는 제사와 각종 일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정규화(72) 전 전교는 그를 비롯해 아버지와 증조부까지 3대가 전교로서 양산향교를 이끌어왔다.
“양산향교는 1406년 현유(賢儒)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역민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한 곳입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610년 무렵 다시 지었고, 이를 1626년 중건해 양산읍 서쪽과 동쪽 등 여기저기로 옮겼다가 1828년에서야 지금 자리로 오게 됐습니다. 향교는 지역 지식인 구심처였으므로 지방 단위 문화 행사나 특히 유교 문화에 따른 행사가 이뤄졌던 곳이죠”
지난 2012년부터 3년 동안 향교를 이끌어 온 정 전 전교에게 ‘유교’는 어린 시절부터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증조부와 조부, 아버지가 모두 유교 문화를 지켜온 향교에 몸담으면서 자연스럽게 유교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향교에 몸을 담으면서 향교 발전과 전통 보존에 앞장서왔다.
“선친이 유교를 지켜왔다고 해서 집안 전체가 유교를 배우고 익힌 건 아닙니다. 제 형제자매 중에서 불교, 기독교 등을 종교로 삼는 이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저 스스로가 유교 문화를 우리 세대를 넘어서 계속 지켜야 하는 가치로 봤기에 전교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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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전교가 유교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우리 선조들의 얼이었기 때문이다. 유교 문화 중심에는 공자 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2천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자 사상은 군주와 정치가, 사상가, 교육가, 민중 등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다.
공자는 사람이라면 자기 수양을 통해 덕을 닦을 수 있다고 했으며, 미래 지도자를 위한 인문과목 교육도 처음으로 실시했다. 공자는 배움이란 지식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인격의 도야(陶冶, 인간의 소질이나 능력을 계발해 바람직한 모습으로 형성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고 정의했고, 배움의 목적은 자기발전과 자기실현, 그리고 벼슬에 나아가 사회를 변모시키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정 전 전교는 현대 교육 기틀을 세운 공자 사상이야말로 지금 세대에게 꼭 필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특히 각박해진 현대 사회와 함께 청소년 인성 교육이 많이 부족해진 것을 꼽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향교는 꼭 필요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청소년 인성교육이 절실한 사회가 됐습니다. 옛 성현들이 향교에서 교육하던 내용이 바로 인성교육인데, 이 교육이야말로 현대 사회에 가장 필요한 교육인 것이죠. 특히 양산이 점점 젊은 도시가 되고 올바른 교육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젊은 부모들이 유교를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볼 게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마음가짐도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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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에서 자라 이곳에서 평생을 지역 유림으로 살아온 정 전 전교. 그는 옛것을 오늘날 새롭게 적용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정신으로 양산향교 존재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며 앞으로도 향교 전승과 발전을 위해 힘쓰는 후배들과 유림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
“우수한 전통과 이념을 담고 있는 유교 문화가 젊은 세대에게 외면받고 있는 이유는 유림들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상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도 있을 겁니다. 양산향교와 유림은 우리 시대 부족한 점을 유교 문화가 보충할 수 있도록 현대와 전통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자 저를 비롯해 제 전 세대, 후 세대 모두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노력을 시민이 알아주시고 향교를 먼 존재가 아닌, 가까운 존재로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