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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하늘 아래 ‘스튜핏’한 덕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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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스튜핏’한 덕질은 없다

김민희 기자 minheek@ysnews.co.kr 입력 2018/01/02 10:17 수정 2018.01.02 10:17













 
↑↑ 김민희
minheek@ysnews.co.kr
ⓒ 양산시민신문 
‘어덕행덕(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 ‘하늘 아래 같은 공연은 없다’, ‘올콘(모든 공연에 참석하는 것)은 진리다’

주말 아침부터 덕질(덕후질의 줄임말로, 마니아 수준으로 취미 생활로 즐기는 행위) 명언이 쏟아졌다. 요즘 인기라는 KBS ‘영수증’에서 14년 차 동방신기 덕질 중인 의뢰인을 감싸기 위한 박지선 씨 멘트였다. ‘스튜핏’이 난무하는 영수증 분석 속에서 홀로 ‘그레잇’을 외쳐주는 덕질 선배 말씀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내 옆에서 훅하고 들어온 한 마디.


“저 나이 먹고 쓸데없는데 돈 쓰는 애가 아직도 있나?”


의뢰인 나이는 겨우 27살이었고, 그보다 3살 많은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덕질 얘기도 하고 회사는 물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아이돌 덕후인 나지만, 집에서는 나름 일코(일반인 코스프레)하며 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숨기진 않았다. ‘네가 그런다고 걔가 널 아냐? 그럴 시간에 책을 한 자라도 더 보고 걔한테 돈 쓸 시간에 부모한테나 잘해라’ 등 아이돌 덕후에게 늘 따라오는 질문에 못 이겨 숨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학생일 때는 나았다. TV 앞에서 웃고 있는 나를 보며 혀를 차더라도 ‘저때 아니면 언제 그래보겠냐’며 넘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음악방송을 본방사수(본 방송을 반드시 본다는 뜻)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넘기며 결제 버튼을 몰래 누르곤 한다. 학생 땐 용돈을 아껴가며 했던 덕질도, 이제는 내가 번 돈으로 당당히 하는데도 눈치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극성스럽다는 말이 맞을지 모른다. 서울까지 올라가 몇 번이고 같은 공연을 보고, 같은 앨범을 몇 장이고 사고…. 이제는 오빠도 아닌, 나보다 동생인 아이돌을 보며(물론 잘생기면 다 오빠다) 힘을 얻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취향이 그런 탓인걸.


세상에는 다양한 취미가 있다. 낚시, 등산, 음악 감상, 독서처럼 늘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오래된 취미가 있고, 시대가 바뀌면서 게임, 피규어 모으기, 아이돌, 애니메이션 등 ‘취미’라고 부르기엔 촌스럽지만 그래도 새롭게 즐길 수 있는 취미 역시 속속 등장한다. 고전적인 취미든, 새로운 취미든 취지는 같다. 무언가에 내 마음을 바치고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할 각오가 충분히 돼 있는 것. 그를 통해 작은 행복을 찾을 때만큼은 세상 누구 부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취미는 가치가 있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 모든 사람은 무언가의 덕후라고. 인터넷에 ‘덕후’로 검색만 해봐도 별별 덕후가 다 나온다. 가장 찾기 쉬운 게 연예인 덕후요, 애니메이션, 게임, 화장품, 음식, 여행, 스포츠, 동물, 기계, 심지어 색깔과 역사에 이르기까지…. 하늘 아래 덕후는 많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 책 잡히고 싶지 않아 다들 숨기고 살 뿐이다. 


나에게 덕질은 숨겨진 힘이다. 하기 싫은 것도, 할 수 없어 보이는 것도 기어이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작은 희망이랄까. 모든 덕후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대상은 달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고 열정을 쏟는 삶.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기에 오늘도 숨어있는 덕후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그레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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