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슬기로운 명상생활] 단전이란 무엇인가(하)..
오피니언

[슬기로운 명상생활] 단전이란 무엇인가(하)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7/20 09:55 수정 2021.07.20 09:55

박대성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원불교 교무, 명상ㆍ상담전문가)

 

명상을 하다 보면 특정한 ‘경지’를 마음속으로 설정하고, 여기에 도달해야 한다는 일종의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를 꾸준한 정진력으로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인위적인 노력의 ‘포인트’를 적립하는 것으로 자신의 명상실력을 과신해서는 곤란하다. 명상이 잘 되는가를 확인하는 방법은 몇 시간씩 오래 앉아 있는 능력이나 아랫배에 단전이 두둑이 잡히는 정도가 아니라 시시각각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욕구를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탄력 있는 마음가짐이다.

명상으로 무언가 성취를 하려 한다면 이는 참 명상이 아니다. 시장에서 흥정하면서도 갖가지로 일어나는 감정의 발생을 즉각 바라보고 멈출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명상이 된다. 흔히 선가(禪家)에서 ‘평상심(平常心)이 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 평상이 이러한 통찰의 방향으로 향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이지, 수승화강의 여부나 단전의 형성과 같이 수행을 돕는 보조 수단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필자는 대학생(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시절 단전호흡을 열심히 하다 하단전에 강한 열감과 더불어 강력한 에너지가 전신을 휘감으며 온몸이 개혈(開穴)되는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선정에 잠겨 있으면 우주가 내 것이 된 것 같은 기분과 솟구치는 힘으로 세상의 이치를 다 알아버린 것 같은 아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출정(出定) 이후에는 일체 생령에 대한 자비와 연민은 잃어버린 채, 오욕칠정에 고스란히 노출돼 수행을 안 하느니만 못한 중생의 나를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수행은 ‘단전’이라는 현상을 알아차림의 대상이 아닌 실제 하는 것으로 착각한 외도선(外道禪)이었으며 마음작용을 알아차리기 위한 수행이 아닌 체험에 대한 소유와 집착의 범부선(凡夫禪)을 닦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단전호흡을 효과적으로 닦는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는 단전을 형상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이다. 단전을 형상으로만 본다면 힌두교의 브라만 개념과 같이 별도로 존재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으로 파악돼 헛된 망상에 빠지게 된다. 우선 진리는 텅 비어 있음(진공)을 전제로 여기에서 발현되는 자비(묘유)에 기초하여 단전 명상을 실천해야 한다.

두 번째는 내 단전과 싸우지 않는 것이다. 내 단전과 싸워 승리하게 된다면 상대처에서 패배한 단전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이원론에 빠져 마음이나 단전을 원수 대하듯이 대적할 것이 아니라 아이를 보살피듯 시시때때로 챙기고 일어나는 모든 심신작용을 온전히 그곳에 맡겨야 한다. 그렇게 해야 머리의 나(상단전)에서 벌어지는 시비이해가 가라앉고 가슴의 나(중단전)에서 일어나는 분별주착이 소멸돼 온전히 통합된 나와 소통이 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저절로 전신에 의식과 기운이 충만하게 된다.

세 번째는 단전 명상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궁수의 과녁판은 궁술을 돕는 도구이지 목표가 아니다. 궁수의 최종 목적은 상대(경계)가 나타났을 때 백발백중하는 실력이다. 단전은 단지 과녁이다. 이를 넘어서야 참다운 마음공부의 실력이 생긴다. 단전주를 통해 마음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참 자유를 향해 가야 한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