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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양산 출신 의병장 항일활동, 정당한 평가받아야”..
문화

“양산 출신 의병장 항일활동, 정당한 평가받아야”

홍성현 기자 redcastle@ysnews.co.kr 입력 2023/03/16 18:13 수정 2023.03.16 18:16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주최 학술대회
‘서병희 의병장과 김병희ㆍ김교상 의병활동’ 주제

경남 전역에서 활동한 서병희 의병장 루트 개발 등
관련 지자체와 협력해 구체적인 현창사업 서둘러야

뚜렷한 공적에도 국가유공자로 서훈 인정받지 못한
김병희ㆍ김교상 등 미서훈자 대상 서훈 추진 시급

‘양산 출신 의병장 서병희와 김교상의 경남항일의병운동’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홍성현 기자]

 

“서병희 의병장은 경남 동부와 서부, 남북을 오가면서 항일의병운동을 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이병길 항일독립운동연구소장은 16일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양산항일독립기념관 강당에서 열린 ‘양산 출신 의병장 서병희와 김교상의 경남항일의병운동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에 나서 이같이 밝혔다.


상북면 좌삼리 출신인 서병희 의병장은 1907년 11월부터 1909년 12월까지 의병활동을 수행한 경남 후기 의병을 대표하는 의병장이다. 그동안 서병희 의병장 활동은 그가 체포된 이후 진술을 토대로 기록했기 때문에 기억 왜곡으로 구체성이 떨어졌다.

이병길 소장은 서병희 의병장 활동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당시 일본 경찰과 헌병, 보병 제14연대 『진중일지』 등을 토대로 활동 내용과 현재 지명을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이날 학술대회에서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병길 소장은 “서병희 의병장 활동은 경주와 언양(울산), 양산, 산청, 함안, 합천, 의령, 창원(웅천), 고성, 진주 등 경남 전 지역을 대상으로 했으며, 경남 동부에서 활동했던 초기에는 일본군과 직접 전투를, 경남 서부에서 활동했던 후기에는 대부분 소규모 유격전으로 변모했다”고 말했다.

이는 경주와 언양지역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통해 군사적 열세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으로, 부대 규모가 작을수록 이동과 유격전이 쉽다는 점을 고려해 부대 규모를 20~30명, 적게는 10명 전후로 구성해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서병희 의병장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13회의 의병활동 가운데 일본군과 직접 전투는 활동 초기인 두량곡 전투와 사구곡 전투, 판곡동 전투 3회고, 나머지 9회는 일본인 처단(4회)과 함안 칠원주재소 습격, 진주 친일부왜인 재무주사 참살, 고성 공전영수원 습격, 군자금과 군수품 조달 등 유격전 성격을 띤다.

이병길 소장은 서병희 의병장 연구와 관련해 ▶의병에 투신한 결정적 계기 ▶경남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해 의병활동을 펼친 이유 ▶1908년 9월 두량곡 전투에서 1909년 3월 방목동 일본인 처단까지 6개월 활동 공백 등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이병길 항일독립운동연구소장이 ‘양산 출신 의병장 서병희와 김교상의 경남항일의병운동’을 주제로 학술대회 발표를 진행했다. [홍성현 기자]

이와 함께 이병길 소장은 1908년 6월 26일 황산역 상삼마을에서 일본군 15명과 의병 40명이 전투를 벌인 ‘황산역 전투’를 새롭게 조명하면서, 전투 핵심 인물인 김병희ㆍ김교상 부자(父子)의 역할과 그들의 의병활동이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의병운동사에 한 집안의 사병(私兵)으로 구성한 의병과 일본군과 전투는 없었으며, 마을 전체가 전투 현장인 경우도 없었다. 아울러, 당시 군용금 5천엔을 제공한 지주도 없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의병장으로서 김병희ㆍ김교상 부자의 역할과 황산역 전투는 경남 의병운동사에서 그 가치가 분명하다는 것이 이병길 소장의 설명이다.

이 밖에 김병희ㆍ김교상 부자는 당시 양산 지주로는 드물게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고, 1908년 사립양성학교를 설립ㆍ운영한 선각자였으며, 『진중일지』에 기록된 군용금 5천엔 지원은 항일의병운동사 최고액이다.

특히, 황산역 전투 이후 일제로부터 적괴(의병장)로 인정돼 체포된 뒤 순국한 사건은 당시 양산을 넘어 부산에까지 알려져 항일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의 후손은 선조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육영사업과 독립운동 지원 토대 마련, 사회운동을 펼치는 등 지역사회에 본보기가 됐다.

이병길 소장은 “김병희ㆍ김교상 부자가 국가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 점은 분명 문제가 있으며, 양산지역에서 활동하거나 서병희 의병부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된 의병에 대한 서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후 토론에 나선 이병길 항일독립운동연구소장과 김형목 선인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김명관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왼쪽부터). [홍성현 기자]

이병길 소장의 주제발표에 이어 김형목 선인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와 김명관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가 참여한 토론이 열렸다.

김형목 연구이사는 “이병길 소장의 발표문은 서병희와 김병희ㆍ김교상 부자 의병운동을 전면적으로 재조명한 사실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서병희의 경북과 경남 서부지역에서 활동상과 호남지역 의병세력과 연대 등은 ‘고립 분산적’이라는 지금까지 연구에 많은 시사점을 주며, 김병희ㆍ김교상 부자의 활동상은 이번 학술대회에서 나온 내용만으로도 국가보훈법에 따라 최소 애국장 이상의 서훈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명관 상임이사는 “이번 학술대회는 그동안 중앙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인물과 시각에서 의병활동을 조명했고, 미서훈자에 대한 재조명에서 큰 의의가 있다”며 “서병희 의병장 현창사업과 김병희ㆍ김교상 부자의 서훈 청원 등은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의 앞으로 과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경남도와 관련 지자체와 협의해 서병희 의병 루트를 개발하고, 지역 의병활동과 지역 의병장을 교육하는 교육의 장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를 주최한 박정수 (사)양산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서병희 의병장과 동시대를 살았던 김병희ㆍ김교상 부자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위한 제언은 우리 사업회의 오랜 염원이기도 했다”며 “학술대회를 기회로 서병희 의병장에 대한 구체적인 현창사업을 서둘러야 하며, 김병희ㆍ김교상 부자의 서훈이 이뤄지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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