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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회색도시 양산, 문화감성으로 색칠하라] ⑤ 일본 세타가야 극장
문턱 낮춘 공공극장, 주민에게 안기다

조원정 기자 vega576@ysnews.co.kr 입력 2008/12/02 14:59 수정 2008.12.04 09:15
10년 구상단계 거쳐 지역특성 맞춘 극장 설립

민관 상호 협력 속에 지역 이미지 쇄신에 성공

하나의 공공극장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어떤 목적을 가진 공공극장이 들어서냐에 따라 지역민 개개인의 삶과 지역 색깔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본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는 이런 공공극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민관이 10년 동안 구상단계를 거쳐 지역 색깔에 꼭 맞는 극장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는 26층짜리 복합건물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극장 규모도 600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건물설계당시부터 ‘생활과 예술의 만남을 통한 창의적인 극장’이라는 운영목적에 맞췄기 때문에 극장으로서 기능에 충실한 공간으로 구성됐다. 도쿄 내에서는 유일하게 전문 학예팀을 갖춰 무대제작과 의상까지 자체제작을 하고 있으며 대관 공연은 연 2회밖에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지자체의 대다수 극장들이 프로그램 구성없이 단순히 넓은 부지에 화려한 외관을 갖춰 대관공연만 하는 무용지물에 그치는 경우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양산시 역시 전국최대 규모라는 헛된 구호에 묻혀 운영 방향조차 모호한 지금,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의 운영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별취재팀
조원정 기자 / vega576@
이현희 기자 / newslee@



① 양산문화예술회관, 무엇이 문제인가
② 전문성 무장만이 살길이다 - 의정부예술의전당
③ 관객의 심(心)을 사로잡아라! - 김해문화의전당
④ 연극의 일상화 속으로 빠져보자 - 안산문화예술의전당
⑤ 지역민이 바로 공연전문가 - 일본 세타가야 공공극장
⑥ 예술회관, 양산의 새로운 희망으로


세타가야구는 인구 85만명, 동경 시부야·신주쿠와 인접하고 있어 교통편이 매우 좋은 고급 주택가다. 하루에도 수십만명의 이동이 있지만 정작 내세울 만한 지역 특색이 없던 이 지역은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로 ‘생활과 예술이 만나는 지역’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도쿄 최대의 번화가 시부야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산겐자야역과 지하통로로 연결된 26층짜리 고층빌딩 안에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가 설립 돼 있다. 공공극장을 지으려면 반드시 넓은 땅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이 극장은 설립부터 운영까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재개발 때 문화시설 필요성 대두
10년간 구상, 민관협력으로 설립


↑↑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는 이 캐롯타워 3~5층에 위치하고 있다.
ⓒ 양산시민신문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의 기본 구상안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급 주택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베드타운이었던 세타가야구는 뛰어난 예술교육과 문화를 배양하는 동네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문화시설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은다.

우선적으로 지역에 산재하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가꾸고 구민에 의한 문화창작활동을 지원하는데 그치던 중, 1980년대 후반 우체국이 이전하면서 재개발 사업안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미술관 운영을 비롯해 각종 문화행사를 통한 워크숍으로 민관협력이 잘 되고 있던 세타가야구는 지역에 필요한 문화시설이 무엇인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수차례의 워크숍을 가지면서 지역 특성에 꼭 맞는 문화시설을 찾아낸 것이 바로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다.

지하철 순환선 밖에 위치하고 있는 세타가야구 특성상 이동인구가 많고, 인근에 대형 콘서트홀이 위치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국제문화교류가 가능한 커뮤니티를 설립해 근대적인 공연장으로 특화시킨 것.

하지만 한 구에 문화시설은 하나여야 한다는 법률 때문에 커뮤니티진흥재단을 먼저 설립한 후, 1996년 기존에 있던 미술진흥재단과 통합해 세타가야 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 안에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가 자리 잡고 있다.



규모 집착 없는 발상전환이
지역 색 바꾸는 밑거름 돼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는 넓은 부지가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을 깬 발상전환으로, 산겐자야역의 랜드마크인 26층짜리 복합건물 캐롯타워의 3층부터 5층까지 쓰고 있다.

600석에 불과한 대극장은 어느 자리에 앉아도 무대가 가리지 않고 보일 만큼 과학적으로 설계돼 있다. 218석 규모의 소극장 시어터 트램은 건물 뒤편 1층에 있다.

좁은 공간이지만 두 공연장외에도 두 개의 연습실과 세트제작소, 음향 스튜디오 등 공연제작에 필요한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다.
↑↑ 600석의 대극장.
ⓒ 양산시민신문

세타가야구는 발상전환으로 좁은 면적을 활용해 효과적인 문화시설을 운영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극장 운영에 있어 가장 부담이 되는 토지 매입과 임차금 문제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했다.

캐롯타워가 지어질 당시 세타가야구는 대지의 일정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구는 공동 투자자인 민간기업과 논의한 끝에 완공 후 건물을 토지 소유분과 투자금액에 해당하는 비율로 분할해 공간 소유권을 갖는 것으로 결정했다.

세타가야구는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가 위치한 3층부터 5층, 그리고 1층 공간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해 월세의 부담을 없애준 것.

운영비 또한 구가 재단에 지원하는 금액이 5~60%를 차지하고 35~40%는 공연수익으로 충당한다. 나머지 1~15%는 문화거점 확대를 위해 지원되는 문화청 기금이다. 월세걱정이 없기 때문에 운영비는 오롯이 작품제작에만 쓰인다.

또 재단이 설립된 후 구는 전적으로 신뢰를 나타내며 운영방향과 프로그램 내용에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는 점 또한 눈여겨볼 대목이다.

민관의 상호 협력 속에 도시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하게 된 문화예술공간인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 구민에게 사랑받는 곳으로 태어나기 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민관의 끊임없는 대화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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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차별화된 자체제작공연, 주민 자긍심 고취

공공극장의 첫 번째 기능은 좋은 자체제작 공연을 올리는 것이다.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공공극장이지만 지역민의 발표회 같은 공연만 올려 진다면 매력을 상실하게 된다.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의 가장 큰 특징은 대관공연이 없다는 점이다.

단, 황금연휴기인 5월 한 달 동안 지역 문화단체가 무료로 극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프리 스테이지’와 지역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거리축제 ‘아트타운 페스티벌’ 기간인 9월에만 대관을 하고 있다.

나머지 기간에는 자체 기획·제작 공연이 40%, 공동주최·제휴공연이 40%를 차지한다. 국내 공공극장이 대관공연과 우수공연 유치에 90%를 할애하고 자체제작공연은 기껏해야 연 1~2회에 그치는 것을 감안할 때 실로 놀라운 수치라 할 수 있다.

지역성을 떠나 해외를 겨냥한 독특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는 12년 동안 한결같이 지역민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수준 높은 작품을 공연할 수 있는 데는 예술감독의 역할이 컸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초대 예술감독을 맡은 연출가 사토 마고토는 아시아와의 교류와 여러 장르간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일본과 태국의 합동 공연 등 명작을 많이 만들었다.

2002년부터는 일본전통예능 ‘노(能)’의 연기자인 노무라 만사이가 예술감독을 맡아, 전통예능과 현대극의 접목을 주제로 재공연이 가능한 자체 레파터리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의 또 다른 장점은 자체 학예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감독이 마음껏 창작열을 피울 수 있도록 무대·의상제작은 물론, 국내외 공연 정보수집, 무대예술에 관한 세미나와 워크숍 등을 진행하며 지역에서 공공극장의 역할을 좀 더 다양하게 설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공연이 결정되면 연습기간 동안 예술감독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극장 내에 위치한 소품실과 의상제작실, 세트제작소에서 자유롭게 의상과 무대를 제작한다.

이런 자체 학예팀 운영은 문화청에서 운영하는 국립극장에서 이뤄지는 시스템으로, 지자체에서는 첫 시도였다. 제작부 29명 중 학예팀 인원만 9명에 달하는 파격적인 운영시스템은 일본 전역에서도 우수 사례로 꼽을 만큼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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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들이 직접 지역 곳곳을 누비며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상황극을 해보는 ‘지역이야기-10대 워크숍’.
ⓒ 양산시민신문
일본 세타가야 공공극장의 교육프로그램

다양한 워크숍으로 문화예술감성 키워

전통예술체험·인재육성·무대체험 등
30개 주제로 워크숍 진행, 호응도 높아


수준 높은 공연 상영과 함께 공공극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난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술교육이다.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 역시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역민을 공연전문가로 양성시키기 위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기에 나선다.

극장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꼴로 무대 뒤를 둘러보는 ‘백 스테이지 투어’와 연극과 무용, 마임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워크숍의 종류는 큰 주제로 나눠서 30개 정도다. 각 주제아래 진행되는 세부워크숍까지 합하면 한 번에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참가자가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짧은 연극을 해보는 ‘지역 이야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지역민을 끊임없이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 ‘토요일 플레이 파크’.
ⓒ 양산시민신문


학교 찾아가는 워크숍
연간 6천명 참가 ‘성황’


가장 눈길을 끄는 워크숍은 극장이 학교를 직접 찾아가는 ‘학교 방문 워크숍’이다. ‘극장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이란 고정관념을 깬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매년 6천명이 참가하고 있다.

학교 방문 워크숍은 기간을 정해 실시되는 종류와 언제든지 신청이 가능한 두 종류로 나뉜다. 기한에 구애받지 않는 프로그램은 학교에서 워크숍을 초청한 이유에 맞춰 학예팀이 워크숍 내용을 짜고 교실을 순식간에 무대로 바꿔놓는다. 처음 시작한 2005년도에만 10개 학교가 ‘왕따 문제를 아이들과 해결하기 위해’, ‘의기소침한 아이들을 바꾸기 위해’ 등 다양한 이유로 워크숍을 가졌다.

<.com상회>라는 프로그램은 9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기간을 정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배우 5명이 각자 노래, 춤, 말, 악기, 흉내내기 등으로 여러 가게를 홍보한다.

아이들은 배우들의 연극을 본 뒤 자신이 상상한 가게를 직접 홍보하는데 2005년부터 모두 31회의 워크숍을 가졌다.

연간 6천명의 아이들은 이런 워크숍을 통해 사회와 연대고리를 찾기도 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개인이 가진 재능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방학마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놀이 워크숍도 여는 등 세타가야구의 문화학교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상호작용 놀이 워크숍’.
ⓒ 양산시민신문


공연전문가 양성 코스 갖춰
일본에서 첫 시행, 롤 모델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공극장의 교육적 역할을 더 확대해 공연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 코스까지 만들었다.

워크숍을 통해 일반인들이 예술을 편안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지역 분위기를 만든 뒤, 전문 배우들을 위한 워크숍을 따로 개최해 공공극장을 중심으로 예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데 힘을 쏟는다.

기술 스태프와 전문 배우, 연극인을 위한 맞춤 전문 워크숍을 진행하는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실습을 통해 10개월 동안 전문가를 양성하는 ‘아트매니지먼트 워크숍’까지 생겼다. 공공극장, 그것도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극장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예술교육에 나서는 것은 일본 내에서는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가 처음이다.

아트매니지먼트 워크숍은 이론과 현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기 위한 5명 정원의 소수정예 프로그램이다. 일본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극장 운영의 노하우를 살려 공연계 인력 양성에 나선 것이다.

훈련생들은 일주일에 3~4회 교육일정 외에도 10개월간 극장시스템을 직접 경험하며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가 자체 제작하는 공연과 기획공연 등 20편을 접할 수 있다. 또 일대일 강의를 통해 교육기간이 끝날 때는 논문집도 제출해야 하는데, 극장운영에서 기획, 사회에서 공공극장의 역할과 공연예술의 창조성 등이 주제다.

대관업무만 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해야 할 공공극장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창의적인 자체제작 공연을 넘어 그런 공연을 제작할 수 있는 공연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본 공연문화계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는 먼저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 극장을 돌아볼 수 있는 ‘극장경험 워크숍’.
ⓒ 양산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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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 제작부장 미도리 오쿠야마

“공공극장은 지역의 사랑방”

 
ⓒ 양산시민신문 
“공공극장은 구민이 편안하게 모여 활발하게 놀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작부장 미도리 오쿠야마(46)가 정의한 공공극장의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거대 예술의 전당으로 수준 높은 예술을 대중에게 확대하는 역할과 지역민과 호흡하며 지역 문화예술커뮤니티로서의 역할.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는 두 가지 모두 성공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곳이다.

과도하게 넓은 부지와 화려한 외관을 배제한 극장의 외형은 일반인에게 높았던 극장의 문턱을 낮췄다. 그러면서도 매번 수준 높은 자체제작공연을 선보이고, 극장이 먼저 구민에게 다가가는 워크숍을 열자 지역의 신뢰를 쌓을 수 있게 됐다.

제작부장 미도리 오쿠야마는 “개개인의 구민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감각을 깨워주는 계기를 공공극장이 제공해야 한다. 일깨워진 예술적 욕구를 제대로 이끌어주고 스스로 꽃 피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공공극작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는 개인의 삶, 더 나아가 구 전체를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이며 문화예술을 제대로 알고 즐길 수 있는 구민을 만들어 이들이 편안하게 극장을 찾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문화를 공유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사랑방’ 역할을 도맡고 있는 것이다.

지역민의 사랑방 역할과 양질의 공연 제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거머쥔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의 운영방식은 현재 표류하고 있는 국내 공공극장이 가슴 깊이 새겨야할 대목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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