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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연극 ‘햄릿’ 관람기
모든 것은 무덤 속에서 이뤄진 찰나의 꿈이로다

조원정 기자 vega576@ysnews.co.kr 295호 입력 2009/09/08 09:37 수정 2009.09.08 09:38



ⓒ 양산시민신문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400년 전의 햄릿이 무대 위로 나타나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잠들면 모두가 끝인 이 세상에서 어떤 꿈을 꾸며 살 것인가에 얽매여 스스로 불행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미워하고 증오하고 사랑하고 시기하던 모든 자들, 찰나같이 짧은 삶에서 헛된 욕망을 쫓아 삶을 소비한 자들의 말로는 같았다. 모두가 사라진 자리에는 새로운 꿈을 꾸는 산 자의 나팔소리만 남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거리는 풍성했다. 맛과 향도 좋았다.
지난 5일 문화예술회관에서 선보인 이윤택 연출 ‘햄릿’은 모처럼 양산시민들에게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개관 9년차를 맞은 문화예술회관에서 ‘햄릿’이 공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이윤택 씨가 지금까지 작품과 다르게 새로운 구성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이어서 시민들의 기대는 더욱 컸다.

무대세트는 천마총을 형상화한 무덤 그 자체로 연극의 주제의식을 뚜렷하게 나타냈다. 천마도가 내려보는 어두컴컴한 무덤 안에서 배우와 관객은 한 인간의 짧은 생애에 빠져들었다. 
연희단거리패 5대 햄릿으로 캐스팅된 신예 윤정섭은 가녀린 외모와 체구로 공연 내내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다.

삼촌에게 독살당한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 모든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는 아들, 미친 척 거짓연기를 하며 오직 복수만을 꿈꾸는 여린 소년의 마음, 끝내 복수에 성공했으나 사랑도 자신도 모두의 목숨을 앗아간 불운한 청년. 윤정섭은 복잡다단한 햄릿의 마음을 꿰뚫어 그 자신이 곧 햄릿이 됐다. 그가 세상에 염증을 느끼며 소리 지를 때 관객도 함께 소리 질렀고 그가 쓰러질 때 함께 눈물 흘렸다.

이 날 공연의 백미는 마지막 부분이었다.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고 사랑하던 모든 자들이 죽고 호레이쇼만 남은 가운데 휘틴브라스의 진격 나팔이 울린다. 시체를 덮은 흰 천으로 세상이 깨끗해지는가 싶더니 작은 틈으로 죽은 자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클로디어스도 거트루트도 오필리어도 무덤 속에서 진흙범벅이 된 자들은 미처 세상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한 듯 기괴한 몸짓으로 무대를 배회한다. 마지막으로 햄릿이 나와 알 듯 모를 듯한 눈빛으로 관객을 바라보고 그를 집어 삼킬 듯이 감싸는 시체들의 행렬. 그 기괴한 모습은 관객들을 꿈에서 깨어나 무덤 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들었다.

이윤택 씨는 그로데스크한 마지막 장면을 양산 공연에서 처음 시도했다며 폭발적인 시민들 반응에 만족스러워했다.
2시간 30분 동안 연극 ‘햄릿’에 빠져들었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같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무한한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혀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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