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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년기획] 양산의 얼 복원사업 점검
박제상 유적지 복원사업 '헛구호'뿐

조원정 기자 vega576@ysnews.co.kr 입력 2009/01/06 11:21 수정 2009.01.06 12:08
올해 예산 겨우 2억, 추가 예산 확보가 관건

울주군, 박제상 기념관 건립 등 의지 비교돼

양산을 대표하는 충신열사 박제상 유적지 정비 사업이 애초 계획대로 올해 안에 끝날 수 있을 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업추진에 필요한 35억원 중 2억원만 확보된 것으로 알려지자 효충사 일대를 재정비해 양산시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충효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반면 망부석과 은을암이 있는 울산시 울주군의 경우 치산서원을 관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난해 63억원을 들여 박제상기념관을 개관했다. 올해에는 박제상 문화제까지 추진하는 등 박제상을 울주군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산업기반으로 조성하고자 전력투구 중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양산시의 거북이걸음이 계속되다가는 고향의 봄 배경을 창원에 빼앗긴 선례를 다시 밟을지 모른다는 지역 문화계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 양산시민신문
보상지연으로 늑장 추진
나머지 예산 추경 확보해야


양산시는 지난 2003년부터 양산의 얼인 박제상 유적지를 복원ㆍ재정비하는 사업을 통해 양산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애초 53억원의 예산을 들여 올해 안에 징심헌과 문화관, 전시실 등 3동의 건물을 짓고 역사체험현장으로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토지매입이 미뤄지면서 계획이 연기됐다.
 
지난해 10월에야 효충사 부지와 인근 영농지를 매입, 보상했지만 이번에는 사업비가 발목을 잡았다. 현재까지 들어간 토지매입비와 보상비, 실시설계비 18억원을 제외한 사업비 35억원 중 2억원만 올해 예산으로 편성됐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시비는 6천500만원에 그쳤다.
 
시는 실시설계가 끝나는 2월 말 께 공사에 착공할 예정이며 부족한 예산은 추경에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울주군이 국비 27억원, 시비 14억원, 군비 21억원 등 총 64억원을 투자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기존 박제상 유적지를 관리하는 면에서도 울주군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제상과 그의 아들 백결선생의 위패와 초상화를 모신 사당인 효충사는 그동안 관리주체가 불분명해 건물에 금이 가고 잡초가 무성하게 방치돼 왔다.
 
지난해 시가 효충사를 매입하기 전까지 상북면과 효충마을에서 잡초 손질과 출입문 관리만 한다는 애매한 기준으로 방치돼 충신열사의 고향을 찾은 관광객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삽량문화축전 역시 테마로 내세운 박제상의 충효정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2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박제상 가무악극을 제작, 초연했지만 부족한 예산과 짧은 준비기간으로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 효충사의 입구의 잠금장치는 고장난 지 오래다. 그나마 주민이 끈으로 묶어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열린 대문너머로 황폐한 효충사 전경의 모습이 보인다.
ⓒ 양산시민신문


울주, 박제상테마개발에 주력
역사체험축제로 이미지 쇄신


반면 울주군은 박제상 테마관광사업에 사활을 걸고 군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울주군은 지난 2002년부터 박제상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 지난해 9월 국ㆍ시ㆍ군비 64억 600만원을 들여 개관했다.
 
치산서원의 왼편 부지에 세워진 박제상기념관은 2동의 한옥 속에 박제상이 살던 시대상과 울주군의 민속을 담은 울주 문화관, 교육 영상실을 비롯해 박제상 추모비와 효열비가 세워진 옥외 전시실을 갖췄다.
 
박제상의 일대기와 그의 가족사에 관련된 유물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박제상 기념관은 울주군 내 학교체험프로그램과 맞물려 교육체험의 장으로 인기를 끌면서 개관 한 달 만에 7천500여명의 내ㆍ외국인을 끌어들였다. 하루 평균 250여명이 박제상 기념관을 보기 위해 울주군을 찾고 있는 것이다.
 
박제상 기념관 건립 전에도 치술령을 중심으로 망부석과 은을암, 치산서원까지 박제상 유적지를 개발해 테마관광자원으로 활용해왔다. 또 올해부터는 울주문화원에서 박제상 문화제를 추진하고 있어 양산시가 더욱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울주문화원은 2006년부터 망부석 설화를 각색한 마당놀이를 개최해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박제상 기념관을 중심으로 마당놀이와 기존에 따로 진행해 온 백일장 및 푸른음악회를 한데 모아 올해부터 박제상 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음력 3월에 열리고 있는 기존 박제상 추모제 기간에 함께 개최해 역사체험축제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지역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문화콘텐츠 생산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 문화계에서는 박제상 유적지 복원 및 재정비 사업을 서둘러 양산의 충효정신을 드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한 번 타지역에 양산의 문화를 뺏긴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 울주군은 총 63억원을 들여 6년 만에 박제상 기념관을 개관해 지역 이미지 제고에 나섰다. 울주군이 건립한 박제상 기념관 조감도(위)과 내부 모습(아래).
ⓒ 양산시민신문
 

이제는 도시기반사업 보다
정신적 문화 복원 서둘러야


양산시는 지금까지 도시기반사업에 전력적으로 투자해왔다. 도로를 닦고 기업유치를 위한 공업용지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정작 중요하게 다뤄야 할 정신적인 부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 타 지자체에 선점을 내줬다는 결론이다.
 
이미 울주군이 박제상 유적지를 지역 브랜드 가치로 높게 보고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양산시는 서둘러 효충사 재정비 사업에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는 지역 문화계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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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독립열사 윤현진

공업단지 내 생가터 위치
시 차원 보존 계획 수립 안돼

↑↑ 지난 2005년 양산문화원이 세운 생가터 표지판만이 외로이 선생의 넋을 기리고 있다. 현재 문화원은 선생의 업적을 다룬 달력사업을 진행중이다.
ⓒ 양산시민신문
박제상과 함께 양산을 대표하는 근대 충신열사인 윤현진 선생의 선양사업 역시 지지부진해 정신적인 문화를 가꾸는 일에 시의 관심이 적음을 나타내고 있다.
 
양산지역 출신 항일 독립 운동가이자 상해임시정부 설립의 주역인 우산(右山) 윤현진(尹顯振) 선생의 생가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정작 사업을 진행해야할 시의 의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윤현진 선생의 생가터는 공업단지 내에 포함돼있다.
아직 공업단지 실시설계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채 공업예정부지로만 지정돼있지만 향후 언제든 공업단지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생의 생가터를 하루 빨리 시가 매입해 보존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임시정부설립의 주역으로 초대 재무차장을 지내며 조국광복에 앞장 선 선생은 고향에서 후진양성을 위해 의춘의숙(宜春義塾)을 설립하고 일본상인에 대항하기 위해 의춘상행(宜春商行)이란 소비조합을 설립했다.
 
그리고 임시정부의 재정난을 타개키 위해 사재를 헌납하는 등 헌신적인 활동을 하다 30세이던 1921년 9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인주 의원(동면, 상ㆍ하북면)은 "선생의 타계 후 일제신문이 '형극(荊棘)의 배일(排日) 수완가 윤현진의 사(死)'라는 제목 하에 그의 사망은 임시정부의 패망이라고 논평할 정도였으니 선생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위대한 분의 선양사업이 몇 해째 제자리걸음인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선생의 선양사업은 지난 2005년 양산문화원(원장 김영돈) 주최로 선생의 생가인 상북면 소토리 158번지에 생가터 표지판을 세운 것과 지난해 2월부터 문화원 홈페이지를 리모델링해 선생의 업적과 일대기를 수록하고 달력으로 제작하는 것 뿐이다.

부산시가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0세기 전후로 '부산을 빛낸 인물'을 선정할 때 윤현진 선생을 백산 안희제 선생과 함께 민족운동 부분에 포함시켜 각 구청과 학교, 도서관 등에 배포한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당시 부산시 시사편찬위원회 관계자는 "윤현진 선생은 25명의 선정위원회위원들이 엄격한 심사를 해서 포함시킨 인물"이라며 "선생은 양산태생일 뿐 구포 구명학교를 다녔고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운영하며 독립운동의 국내외 연락과 독립운동 자금조달에도 크게 활약해 부산의 이름을 널린 알린 인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시가 지역의 독립열사에 대한 예우를 챙기지 못하는 동안 지역 청소년들은 윤현진 선생을 부산출신 독립열사로 기억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양산의 얼을 복원하는 사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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