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마케팅이 지역을 살린다
<3>오스트리아 바트블루마우-도시의 도약 이끈 창조적 발상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남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바트 블루마우(Bad Blumau). 이곳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온천단지를 설계하면서 단박에 유명세를 탔다. 이와 더불어 지역사회도 함께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마을은 ‘한 사람의 예술가가 변화시킨 공간이 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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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사업가와 환경운동가의 만남
그러나 처음엔 이러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한 굴지의 정유회사가 석유개발을 위해 굴착하던 중 온천수를 발견하게 됐다. 당시 정유회사는 온천수의 가치를 모른 채 되레 이곳을 콘크리트로 막았다. 정유회사가 철수하고 몇 년이 지난 후, 자치단체와 의회가 온천 개발을 추진하게 됐다.
때마침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호텔업 사업가인 R. 로그너가 개발사업을 제안해 재발굴한 결과, 100℃의 분출성 온천을 발견하게 됐다. 고품질의 온천수를 발견한 로그너는 저명한 아티스트 훈데르트바서에게 시설개발에 대한 디자인을 의뢰했다.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에 자리잡고 있는 온천리조트는 ‘동화나라’라고 일컬어질 만큼 기발하다. 2천500여개에 달하는 창문이 똑같은 게 하나도 없으며, 건물 모양과 색깔 또한 제각각인데다, 길 마저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미로와 같은 복도를 거닐다보면 어느새 다른 동의 지붕으로 올라가게 되는 묘한 구조가 이색적이다.
게다가 온천리조트가 단순히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친환경적이다. 건물 전체가 나무와 잔디 등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여름엔 에어컨이 필요없고, 겨울에는 온천수로 난방을 하는 등 자원순환 능력이 탁월하다.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셈이다.
커뮤니티와 소통이 우선
예쁜 온천리조트가 조성돼 있다고 치더라도 변방의 시골마을에 불과한 이곳에 한 해 평균 15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온천리조트가 정작 지역 사람들의 삶에는 얼마나 닿아 있을까. 온천리조트가 이 작은 마을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은 건립 이전부터 착실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조트 건립 여부를 둘러싸고 지역사회는 물론 의회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일었다. 건물주인 로그너는 지역주민 우선 고용 등 비전을 제시하며 대다수의 주민들로부터 동의를 얻어냈다. 현재 리조트에 근무하는 직원 330여명이 모두 이 지역주민들로 채워졌다.
산업경제의 사이클 또한 배울만 하다. 온천리조트는 지역 농가와 직거래를 체결, 육류ㆍ약초ㆍ달걀ㆍ치즈 등 농산물을 100% 조달받아 이를 관광객(투숙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공급(농가)-수요(리조트)-소득증가’라는 지역경제의 선순환구조를 구축한 셈이다.
온천리조트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면서 주민들이 만든 민박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현재 이 마을에는 리조트를 포함해 2곳의 호텔과 39곳의 민박시설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에케 콘라드 리조트 안내원은 “단순히 멋진 볼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요구를 함께 고민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일군 건축물”이라며 “지역발전을 위한 커뮤니티 재생 프로그램이 선행된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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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품질 온천수를 자랑하는 야외온천. |
ⓒ 양산시민신문 |
자연의 일부로 공존하려는 노력
‘로그너 바트 블루마우’는 개장 이래 훈데르트바서의 ‘자연과 조화로운 삶’의 철학을 따라왔다. 구체적으로 전체 기후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세계자연보호기금(WWF)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노력을 실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온천리조트에 숙박한 요금중 0.6유로는 WWF에 기부하고 있다. 만약 1박을 하게 되면, 1년 기준으로 아마존 우림을 최소 축구장만한 규모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브라질 열대우림 지역에 50만㎢에 달하는 구간을 보호하기 위한 WWF의 노력에, 온천리조트에 숙박하는 관광객도 동참하는 것이다.
온천리조트에서는 심신의 피로를 푸는 것은 물론 상상을 자극받고 인간이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명소가 됐다. 바트블루마우의 사례는 언뜻 건축물이 낳은 기적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바트블루마우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사실은 단지 허허벌판에 멋진 건물 짓는다고 해서 저절로 지역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 건축보다는 항상 사람과 자연이 먼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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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비유하듯, 건물 통로마저 평평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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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멜라니프랑케 온천리조트 총지배인
“창조는 자연과 사람 속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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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온천리조트의 운영회사인 로그너바트블루마우의 멜라니 프랑케(Melanie Franke) 총지배인은 온천리조트 건립이 가져온 변화 가운데 사람들의 달라진 인식을 첫 손에 꼽았다.
오스트리아 남부 변두리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이 소득 창출에 대한 욕구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동화같은 건축물로 인해 하루아침에 ‘다른 세상’을 맞이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한 사람의 예술가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또한 친환경도시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고 알리기 위해 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이 ‘협력’해 왔기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기서 협력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주된 화두가 되고 있는 ‘소통’이 바로 그것이다. 단지 온천리조트를 개발만 한 게 아니라 리조트와 주민, 나아가서 지역사회의 요구를 함께 고민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까지 마련했다. 예를 들면 직원채용시 지역주민 우선이라든지, 농산물 직거래, 마을회관의 관광정보센터화 등 서로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는 “새로운 창조의 기회는 늘 자연과 사람 속에서 나온다”며 “돈으로 건물만 짓는 게 아니라 이 건물(온천리조트)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특히 지역사회 속에서 건물의 효용가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면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지역 거주인구보다 무려 100배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도시를 새롭게 재생시키기 위한 ‘일차적인 고민’을 어디에 둬야 할 지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