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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지자체의 역점사업 예술촌, 그 과제는 무엇인가?
지역주민과 함께하던 예술촌, 농사짓던 예술인이 사라진다

김경희 기자 alice0z@hanmail.net 입력 2012/12/11 11:03 수정 2012.12.13 01:31
③ 예술인 직접 운영사례 I : 전남 무안 월선리예술인촌










↑↑ 한때 20명의 예술인들이 입주했던 월선리 예술인촌 전경.
예술인들이 직접 ‘깡촌’을 찾아 하나 둘 모여들어 만든 전남 무안 월선리예술인촌. 지역활성화에 기여할 수 없는 예술인촌은 필요없다며 예술인이 직접 지역 자생조직에 흡수되며 한 때 마을공동체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곤 했다. 2012년 현재 월선리예술인촌은 농촌정보화마을, 체험마을로 여전히 ‘깡촌’ 시절보다 많은 외지인들이 찾고 있지만 정작 창작활동을 보이던 예술인들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글 싣는 순서>

-지자체 주도사례 I
경남 하동예술촌, 제주 저지예술인촌

-지자체 주도사례 II
경남 남해 원예예술촌

-예술인 직접 운영사례 I
전남 무안 월선리예술인촌

-예술인 직접 운영사례 II
경남 남해 해오름예술촌, 경기 파주 헤이리

-한송예술인촌의 현황과 향후 과제



↑↑ 월선리예술인촌을 20여년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도예가 김문호씨의 복사꽃피인집.
전국에서 가장 소문난 예술인촌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경기도 파주의 헤이리마을, 또 하나가 바로 월선리예술인촌이다.

지역주민과 상관없이 능력있는 예술인들이 공간을 마련하며 형성된 파주 헤이리와는 달리 월선리예술인촌은 예술인들이 모여들어 지역농민들과 함께 예술촌을 조성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월선리예술촌은 약 22년 전인 1990년 당시 34살의 도예가 김문호 씨(현 예술인촌장)가 입주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 김문호 씨의 소개로 윤숙정(도예가), 박인수(서예가), 김석전(서양화가) 씨 등이 마을로 이사를 했다.

월선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중에서도 시골 중의 시골 ‘깡촌’이다. 대부분 예술인들은 조용한 곳에서 예술활동에 전념하고자 이곳을 선택했고, 마을의 주요 이슈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는 마을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곱지않은 시선이 더 많았다. 특히 김문호 씨가 마을에 들어 온 후 신선이 사는 마을인 무릉도원에는 복숭아나무가 있어야 한다며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주민들은 복숭아나무가 마을 남자들을 바람나게 한다며 몰래 베어버려 600주의 나무가 150주 밖에 남지 않기도 했다.

마을주민과 예술인들의 간극이 그대로인 채 월선리예술인촌에는 20여명이 예술인들이 이사를 오거나 작업장을 만들었다. 도자기·서예·조각·문학·국학·천연염색 등 분야도 다양했다.

↑↑ 천연염색체험행사.

마을의 문제 앞장서 해결
외지인이 아닌 마을주민으로

그러다 1996년 마을에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김문호 촌장은 누구보다 앞장섰다. 무안군청 앞에서 동네사람들과 함께 공동대책위원장으로 삭발까지 하며 싸웠다. 이후 행정관청에는 미운털이 박혔지만 동네일원으로 인정을 받아 예술인과 지역주민과의 마을공동체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 

예술인촌과 마을청년회는 마을살리기를 함께 고민했다. 교육 문제와 경제적 문제만 해결되면 청년층도 시골로 내려온다는 것에 착안해 예술촌에서는 ‘방과후 학교’를 책임졌다. 인근 청계초등학교의 방과후 학교에 예술인촌의 교수들이 강의에 참여했다. 미술인들은 학교 벽화작업을 실시했다. 덕분에 30여명이었던 학생들이 200명으로 늘어났다.

경제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농촌체험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예술인촌에 입주한 예인들을 중심으로 다도, 도예, 예절교육, 한국화 체험, 천연염색체험 등을, 마을주민 중심의 양파수확체험, 연근된장, 청국장 만들기, 유기농 금단농법, 새끼꼬기체험 등을 운영하였고  깡촌에 관광객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또 2004년부터 매년 4월 복숭아꽃 살구꽃 축제를, 2005년부터 무안분청축제와 함께 개최하며 문화예술공연과 민속놀이, 전통음식 먹기 등 행사를 치러 무안의 대표적인 관광 축제로 자리매김하며 지역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는 모두 “지역활성화에 기여할 수 없는 예술인촌은 필요없다. 예술인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 지역주민을 가르치려 하면 안된다. 마을은 살아움직이는 공동체다” 는 김문호 촌장의 지론 덕분이었다.


주민들이 직접 만든 계획서
65억 정부 프로젝트 성공


월선리 주민들이 직접 만든 20만원짜리 용역계획서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2004년 4월. 예술인촌과 청년회로 구성된 월선리마을살리기위원회는 농림부가 추진 중인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응모하고자 ‘월선권역 종합개발사업’ 계획서를 수립하고 무안군에 제출했다. 무안군의 반응은 냉담했다. 대학교수나 전문연구용역기관도 아닌 주민들의 계획에 대한 신뢰성을 가질 수 없고 응모하더라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문가들이 계획서를 작성한 타 자치단체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었다.

다행히 당시 새로 부임한 건설교통과장은 “주민 스스로가 만들어낸 계획서가 최고의 계획서”라며 수정 없이 ‘월선리예술인촌 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 예비계획서’를 원안대로 전남도 심의위원회에 제출해 전라남도 예선을 가까스로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농림부에 올라가서는 주민들이 실제 만든 계획이라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전국 4등을 차지하며 2010년까지 월선리, 청계리, 달산리 3개리에 65억원의 예산을 투자받았다.

이후 월선리예술인촌은 마을만들기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전국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2006년 전원마을 페스티벌에서 문화예술과 농업을 결합한 마을살리기 운동으로 도시인의 이주와 폐교 위기의 학교가 살아난 농촌관광우수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한명숙 전 총리 등 유명인사의 방문이 이어졌고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변호사 시절 내고장 희망찾기 대표마을로 소개하기도 했었다.

↑↑ 2010년 준공된 월선권역 다목적회관.

다목적회관 짓고 나니
영농법인이 맡아서 운영키로


하지만 이는 예술인들과 지역주민과의 상생에 독이 되고 말았다. 월선권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으로 지역역량강화 사업인 주민리더 교육 등이 시행됐고, 하드웨어 사업으로 지붕계량, 복숭아나무 심기, 담장 벽화 조성 등 예술마을가꾸기가 시행되었으며, 실개천 정비 사업과 운중 방죽이 조성되었다. 전체 예산의 3분의1 가량인 22억원이 투입되어 농업교육관, 다목적실, 식당, 체험장, 전시장, 숙소 등 시설을 갖춘 다목적회관도 2010년 5월 준공 되었다.

문제는 다목적회관의 운영권을 둘러싸고 발생했다. 다목적회관은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확정 당시‘운중(雲中)예술센터’로 계획돼, 월선리의 예술인 자원을 활용한 각종 예술체험프로그램과 행사 및 전시 등으로 활성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농림부의 지원과정에서 예술센터는 취지에 맞지 않아 다목적회관으로 사업 내용이 변경됐다. 다목적회관으로 변경되어 2010년 준공후 무안군이 소유권을 갖고, 월선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추진위원회가 월선권역영농법인을 구성해 운영을 맡기로 했다.


운영배제된 예술인들 손 떼
하나둘씩 떠나 이젠 11명 남아


다목적회관 운영을 위해 예술인법인까지 설립하며 준비해 왔던 예술인들은 실망이 컸고 반발도 컸다. (사)월선리예술인촌(대표 김문호)측은 “당초 예술인촌이 운영하는 것으로 계획됐고 그렇게 약속됐지만, 건물이 준공되면서 예술인들이 배제되었다”며 “ 해외 예술가 초청 공연이나 국악, 도예 등 각종 예술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농촌소득사업으로 활성화 시키고자 하였으나 운영권이 없어 사실상 어렵다. 이에 이해다툼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며 월선권역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 손을 뗐다.

9개 마을 이장이 주축이 된 영농법인측과 무안군측은 운영 전권을 주지 않는다고 협조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예술인들이 조금만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년이 지난 현재 월선권역다목적회관은 단체워크샵 하기 좋은 장소로 선정되며 많은 외지인들이 모여들고 있지만 열정을 가졌던 예술인들은 하나 둘 씩 사라지고 있다.

2010년 21여명의 예술인들이 입주하며 농민과 함께 예술을 하던 월선리예술인촌. 더 많은 예술인들이 마을공동체에 흡수되고 싶어 입주를 희망하였으나 땅을 내놓은 주민이 없어 아쉬움의 대상이 되었던 월선리예술인촌은 이제 상주하는 예술인이 단 11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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