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애린 35호입니다. 올해 나이는 13살. 뭐 사람으로 치면 65세 정도 됩니다. 적은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아직 ‘청춘’이랍니다. 실제로 전 여전히 매일 70리터의 우유를 생산하거든요. 젊은 친구들도 30리터가 고작인데 전 두 배가 넘죠.
13년 동안 매일 70리터씩 생산하는 우유는 양산지역 초등학생 모두를 먹이고도 남는 양이에요. 뭐 어른 혼자 먹는다면 2300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기도 하고요. 제가 왜 슈퍼젖소인지 아시겠죠? 실제로 지난달 18일에는 농협에서 저를 대한민국 최고의 ‘슈퍼젖소’로 인정까지 해 줬지요.
물론 ‘슈퍼젖소’는 저 말고도 3마리나 더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지난해 모두 은퇴를 했어요. 더 이상 우유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죠. 결국 아직도 매일 70리터의 젖을 짜는 저만 유일한 ‘현역’이에요. 이만하면 전국 최고 ‘슈퍼젖소’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 아시겠죠?”
노화 늦어 다른 젖소보다
더 많이 우유 생산 가능해
상북면 소석리 애린목장의 젖소 ‘애린 35호’가 지난달 18일 농협이 국내 전체 젖소를 대상으로 선정하는 ‘슈퍼젖소’에 뽑혔다. 13년 동안 다른 젖소보다 두 배가 넘는 우유를 생산한 결과다.
김문일(56) 애린목장 대표는 “타고난 체질과 더불어 출산 횟수가 적어 가능했던 결과”라고 설명했다. 젖소의 경우 송아지를 많이 낳을수록 노화가 빨리 오기 마련인데 애린35호는 13년 동안 7마리의 송아지만 낳았다.
김 대표는 “매년 새끼를 낳는 다른 젖소들보다 출산이 절반 가까이 적어 자연스레 노화도 늦게 온 것 같고, 젖이 나오는 기간도 보통 젖소들보다 두 배나 길어서 많은 우유를 생산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출산 횟수가 적고, 타고난 체질이 좋다고 슈퍼젖소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컷 젖소의 우수한 정액이 필요하고 강한 발굽 등 세심한 관리도 뒷받침돼야 한다. 김 대표는 우수한 정액을 받기 위해 농협 제품만을 고집해 왔다. 농협 정액은 국내 풍토에 맞게 개량돼 있어 외국산 젖소 정액보다 수태율과 생산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우수한 정액과 더불어 발굽도 강해야 한다. 발굽이 튼튼하면 하체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젖을 짤 때 오래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더 강한 젖소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돌며 발굽이 강한 종들을 찾아 교배시켰다. 다년간의 노력 끝에 애린목장에는 발굽이 튼튼한 젖소들이 늘어났다. 그 결과 우유 생산량이 늘고 품질도 좋아졌다. 지난 2011년 실시한 ‘우유군 능력검정’에서 뛰어난 품질로 우수검정농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사실 우유 생산량만 계속 늘려나가더라도 목장 운영에는 문제가 없죠. 하지만 저는 젖소들이 건강한 상태로 신선한 젖을 짜는 모습이 보고 싶었습니다. 젖소들이 건강해야 뛰어난 품질의 우유를 생산할 테니까요. 어찌 보면 당연한 노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국 최고의 슈퍼젖소 애린 35호는 김 대표의 이런 ‘당연한 노력’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자신이 탄생시킨 최고의 젖소들에게 오히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는 젖소들이 제 바람대로 잘 자라 줬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들 덕분에 저도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꿈을 실현할 수 있었죠. 항상 마음속으로만 했던 말을 이번 기회를 통해 전해야겠네요. 잘 자라줘서 감사하고, 최고가 되어줘서 고맙다. 내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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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8일 농협으로부터 ‘슈퍼젖소’인증을 받은 애린35호와 그를 키워낸 김문일ㆍ이애란 씨 부부. 부부는 “건강한 젖소가 신선한 우유를 생산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목장을 운영해 왔을 뿐인데 ‘애린 35호’가 뜻하지 않은 큰 선물을 줬다”며 ‘애린 35호’와 더불어 건강하게 잘 자라준 젖소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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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목장 갖고 싶어 시작”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김문일ㆍ이애란 씨
초록이 무성한 능걸산 아래 젖소들이 한가로이 누워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바로 슈퍼 젖소를 키워낸 김문일 대표의 애린 목장이다.
36년 전, 젖을 갓 뗀 송아지 한 마리로 시작한 애린목장은 지금 70마리가 넘는 젖소를 가진 농장으로 성장했다.
부산에서 임대로 목장을 운영하다 상북면 소석리에 정착한 김 대표는 소를 키우는 방법을 전문으로 배우지 못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보고 들은 지식과 그동안 젖소를 키우면서 배운 게 전부다.
자신만의 목장을 갖고 싶어 ‘부모님께 배운 대로 하면 문제없다’는 생각으로 목장을 시작한 김 대표.
“형편이 어려워 처음엔 염소를 키웠는데, 그 당시 송아지가 비싸 염소를 다 팔아도 한 마리밖에 살 수 없었죠. 그래도 그렇게 시작한 한 마리가 어느새 이렇게 많은 젖소로 늘어나 있네요”
목장을 키워오는 동안 가장 힘이 되어준 사람은 바로 아내 이애란(55) 씨. 김 씨는 아내의 묵묵한 내조야말로 그 어떤 응원 보다 힘이 돼 줬다고.
“섭섭한 것도 많았을 텐데 항상 괜찮다고, 열심히 하자고 말해준 아내가 정말 고마워요. 그동안 고생시킨 것은 한없이 미안하고요. 앞으로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웃으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젖소들을 키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