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에서 시원하게 도로를 달리고 싶으면 원동을 가라? 독일의 아우토반 못지않다?'
원동면 지방도로가 과속카메라 하나 없이 직선으로 뻗어 있어 운전자들의 과속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방도 확ㆍ포장사업이 완료된 68호선 원동~배내 약 25km 구간은 굴곡이 심하지 않은 직선구간이 많고, 과속방지턱이나 과속카메라가 단 한곳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위험천만의 과속운행이 자행되고 있다. 함포마을 한 주민은 "제한속도가 시속 60km이지만 100km 속도로 달리는 운전자들이 상당수 된다"며 "게다가 지방도 특성상 도로가 마을입구로 뻗어 있어 마을주민들이 과속차량으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해 원동면 내포마을에서 초등학생이 집에서 나오다 바로 마을입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초에도 함포마을에서 과속차량에 의한 사고가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원동 주민들이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민원을 여러번 제기했다고 한다. 내포마을 김선규 이장은 "과속방지턱은 지방도에 설치할 수 없는 시설물이기 때문에 과속카메라를 설치해 달라는 민원을 주민들이 여러차례 제기했지만 소용없었다"며 "운전자에게 주의를 주는 경보등이 설치되긴 했지만 계속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과속카메라만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양산경찰서 관계자는 "지방도의 과속카메라는 매해 교통사고 통계를 통해 경남지방경찰청에서 우선 설치구역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원만으로는 설치될 수 없다"며 "하지만 이 지역의 과속카메라 설치 필요성은 여러번 제기되었던 문제이기 때문에 내년에는 예산을 반영해 설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작 / 천명기
3년 8개월 만에 양산이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됐다.
지난 2003년 11월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시작된 투기과열지구 지정 조치는 ‘투기 억제’라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 실시됐지만 지역 건설 경기를 침체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지난 27일 정부는 양산을 포함한 전국 24개 지역에 대해 투기과열지구 해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수차례 지구 해제를 요구해온 양산은 일단 정부의 결정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뒤늦은 지구 해제 조치가 지역 건설 경기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는 ‘기대 반 걱정 반’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남도 집계에 따르면 이미 아파트 미분양이 5월 현재 2천225세대로 2006년 7월 3천164세대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천여 세대가 넘는 아파트가 미분양 상태로 남아 있다. 또한 오는 9월부터 시작되는 ‘분양가상한제’로 6개월 동안 지구 해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어 2개월짜리 투기과열지구 해제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양산의 경우 최근 분양을 계획하고 있는 신도시 2단계(물금지구)에 대림산업의 884세대, 998세대 2개 아파트 단지의 분양 실적에 지역 건설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구 해제 조치가 실제 지역 건설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미비할 것이라는 관측 속에서도 어려운 현실을 헤쳐 나갈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기대 심리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 한도제한과 양도세 중과 등으로 수요자들의 주택 구매율이 현저히 떨어져있는 상태이고, 신도시 개발의 지연, 부산 도시철도 2호선 개통 시기 연장 등 악재가 겹쳐 있는 가운데 인구 유입이 아파트 구매의 주 수요인 양산의 경우 대규모 아파트 미분양 상태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후 약방문’이라는 부동산 관계자들의 말은 투기과열지구 해제 이후에도 어려운 지역 건설 경기를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 편의를 위해 시작한 일이 시민들의 불편으로 이어졌다.
신도시 1단계 입주 이후 부족한 주차공간을 해소하기 위해 시가 공공청사 부지 4곳을 임시주차장으로 개방했지만 정작 사후 관리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시민들의 불만을 낳고 있다. 시는 신도시 1단계에 공공청사 부지로 예정된 양주초등학교, 중부초등학교, E마트, 신양초등학교 인근 택지를 토지공사와 협의를 거쳐 임시주차장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임시주차장으로 개방만 했을 뿐 진·출입로, 안내표시판, 부지 정비 등 후속 조치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안전문제 등을 제기하는 시민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지난해 중부초등학교 인근 부지 임시주차장을 대형공사차량들이 이용하면서 통학로를 가로 막는 등 폐해가 잇달았다.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되자 시는 이곳에 펜스를 설치하고 진·출입로를 개설하는 등 뒤늦게 행정조치를 취했다. 양주초등학교 옆 임시주차장 역시 한동안 방치되다 초등학생들과 양주공원을 찾는 시민들의 문제제기 이후 부지 정비를 실시한 바 있다. 임시주차장 4곳 가운데 E마트 인근 부지는 최근 소방서가 119센터 공사를 시작하면서 폐쇄되었지만 여전히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신양초등학교 앞 부지는 부지 정비는 커녕 진·출입로도 없이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진·출입로가 따로 마련되지 않다보니 이곳을 이용하는 차량들은 인도 턱이 낮은 건널목 부분을 대신 이용하고 있어 길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는 시민들과 차량이 엉켜 사고의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곳은 동원로얄듀크에서 신양초등학교로 지나기 위한 건널목으로 동원로얄듀크 주민 대부분의 아이들이 신양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어 주의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다. 이미 중부초등학교, 양주초등학교 인근 임시주자장을 시민들의 민원 제기로 정비하면서 나머지 주차장에 대해 무심하게 방치한 시의 행정서비스가 아쉬운 대목이다. 시 관계자는 “토공과 임시주차장 사용 협의 이후 공공청사 부지 매입이 늦어지면서 발생한 일”이라며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임시주차장 사후관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임시주차장 개방을 결정한 시가 정작 세심한 배려를 놓쳐 시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셈이다.
양산시민의 식수를 위협하고 있는 김해매리공단 공장설립에 급제동이 걸렸다. 난달 29일 부산고등법원이 부산환경운동연합 등이 김해시를 상대로 낸 매리공단 공장설립 승인처분취소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공장설립 승인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 이는 앞선 지난해 11월 창원지법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부산환경운동엽합 측은 물론 양산시민들도 반기고 있다. 김해시는 지난해 초부터 양산과 부산서부지역 시민들의 상수원인 낙동강 인근의 김해시 상동면 매리지역에 장유면 율하지역 공장을 집단으로 이주하는 매리공단 조성계획을 수립하고 부지조성공사와 함께 28개 업체 중 7개 업체에 대한 건축 허가를 승인하는 등 강행해 왔다. 매리공단은 낙동강 지류인 소감천 상류 2.4km지점에 위치한 채석장 부지다. 이곳에 각종 공장들이 입주 가동하게 될 경우 유해물질이 낙동강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 환경청은 낙동강은 유속이 느리고 갈수기에 하구언 수문을 막기 때문에 유해물질이 취수탑 주변수역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김해시는 충분한 대책을 세워 추진하므로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며 환경청과 여러 환경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 추진해 왔다. 게다가 소감천의 낙동강 합류지점이 강 건너편에서 현재 건설중인 양산시의 물금취수장보다 상류에 위치해 있어 양산 식수원이 오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금취수장은 신도시조성과 함께 계획된 취수시설로 1일 생산량 8만톤을 목표로 2008년부터 신도시 주민 5만여 세대에 식수를 공급할 예정이다.
시가 관급공사를 시행하면서 수십 미터의 인도를 점유해 시민들을 차도로 내몰고 있다. 이처럼 보행권을 박탈당한 시민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도 정작 행정은 ‘제 사업 챙기기’에 바쁜 모습이다. 시는 북정동 상습침수구간을 해소하고자 신기동 일대에 우수관 설치공사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착공해 오는 11월 완공예정인 제1구간(카우걸 돈보이 앞)과 지난 5월 착공해 내년 8월 완공예정인 제2구간(한국전력공사 양산지점 앞) 등 두 구간으로 나눠 진행 중인 이 공사는 전체 사업비 14여억원 규모로 추진되고 있다. 도로변 경사지에 공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시공사는 인도를 수십 미터가량 점유해 공사 자재를 쌓아두거나 안전시설물을 설치해 시민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공사가 인도를 점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행자가 통행할 수 있는 별도의 대체 보행공간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것. 하지만 공사현장의 관리감독 역할을 해야 할 담당 공무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도로구조상 대체 보행로를 설치할 여건이 안 된다”면서도 “해당 지역은 민가도 없는데다 반대쪽 인도를 통해 통행하면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생각 된다”고 말했다. 현장을 확인했는데 해당 인도를 이용해 보행하는 보행자도 많지 않을뿐더러 굳이 대체 보행로를 설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애초 지표면을 파헤치는 개착공사로 진행하려 했으나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비와 공사기간이 더 소요되는 땅굴 공사로 전환해 진행하고 있다”며 주민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공사가 진행 중인 두 구간 사이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버스를 타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로 보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더구나 이 공사구간은 보행자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안전도 위협하고 있다. 공사현장 안전을 위해 설치한 시설물이 되레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경사가 심한데다 공사현장 시설물이 시야까지 가리고 있으니 보행자나 운전자나 앞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한국전력공사 양산지점 앞 2차선 도로는 준공될 당시부터 도로 폭이 좁은데다 70°에 이르는 곡각지역으로 차량이 회전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부족해 사고 위험이 제기돼 온 지역이다.
시 관계자는 “공사 과정에서 차도를 점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않았다”며 “공사현장 앞뒤로 공사안내 표지판을 설치해 운전자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도로안전 조치 소홀로 보행자가 사고를 당한 경우 지자체의 잘못이 인정된다는 판결이 잇달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시의 보행자 보호 정책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시점이다.
“흙은 생명의 원천이다. 목숨이 있는 것은 모두 흙을 의지한다. 그 흙을 다루는 것은 장인의 손이다. 흙을 그냥 두면 흙이지만, 흙에 감성을 불어 넣으면 보석이 된다”
사기장 신정희 선생 자서전 『흙과 불 그리고 혼』 중에서 생명의 원천인 흙에 혼을 불어 넣으며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았던 도예계의 거장(巨匠), 사기장 신정희 선생이 지난 18일 흙으로 돌아갔다. 오로지 우리 사발을 되살리겠다는 끈질긴 집념으로 조선 초기 만들어졌던 황도사발을 재현해 우리 민족의 혼을 일깨웠던 신정희 선생의 불꽃 같았던 삶을 들여다 보자. “아버지는 집에 거의 오시질 않았다. 얼굴을 잊을 만하면 집에 오시곤 했다. 오실 때는 항상 헤진 가방을 어깨에 메고 오셨다. 큰 가방 속에 눈깔사탕 한 개쯤은 있을 법도 한데 나오는 것은 깨진 도자기 파편인 사금파리들이 전부였다. 철없는 나는 맛있는 과자도 아닌 돌멩이 같은 사금파리만 가득 가져오시는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아빠, 내 선물은?’이라고 물으면 아버지는 다정한 미소로 ‘이 사금파리가 네 선물이란다’ 하시며 달래곤 했다”임진왜란 이후 명맥이 끊어졌던 조선사발을 재현한 사기장, 고(故) 신정희(申正熙. 향년 77세) 선생의 뒤를 이어 사기장의 길로 들어선 신한균(48. 큰아들)씨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깨진 도자기 조각에 불과한 ‘사금파리’는 우리나라 도예계 거장(巨匠)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사금파리로 시작한 도예의 길
시간을 거슬러 1949년. 당시 19살이었던 청년 신정희는 어려운 형편에 집안일을 돕고자 평소처럼 지게를 메고 집을 나섰다가 우연히 삼천포중학교 국어교사였던 시조시인 김상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청년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위대함이 바로 이 속에 있다”는 말과 함께 청자 사금파리 하나를 얻었다. 사금파리를 손에 쥔 청년은 그대로 사금파리에 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날 이후 청년의 인생이 바뀌었다. 청년은 나무를 하러 가거나 심부름을 갈 때에도 괜히 땅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산을 헤매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마니가 넘는 사금파리가 모였다. 생전에 신정희 선생은 “코 흘릴 때 구만리 옛 가마터에서 구웠다는 깨어진 사금파리 하나, 이것이 골동품과의 인연을 맺어주었고, 이 골동이 나를 도자기의 세계에 몰입시켰다. 누구도 우리 옛 도자기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다행히도 옛 지방 가마의 사금파리는 어디에도 가득 쌓여 있었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 선생이 20살이 된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 자연스레 전쟁터로 불려갔다. 같은 민족끼리 죽이고 또 죽이는 민족 상쟁. 하지만 그 속에서도 도자기에 대한 청년의 집념은 계속됐다. 청년의 군장에는 사금파리가 가득했고, 군장 검사 때 이것이 발각돼 ‘너는 사금파리를 가지고 전쟁을 하느냐?’라며 몽둥이로 맞은 적도 있다고 한다. 8년간 군대생활을 마친 그는 전쟁이 끝나고 결혼했다. 가정을 이루고 딸린 식구들이 생겼지만 선생은 오로지 사금파리에만 빠져 있었다. 가정은 내버려둔 채 사금파리를 찾아 전국을 헤맸다. 아내가 젓갈 행상을 하며 가정을 꾸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눈앞이 캄캄하고 ‘내 탓이다’라는 자책감에 빠졌지만 사금파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런 그를 두고 주위에 ‘그릇 귀신이 들었다’라며 혀를 찼다. 그릇 귀신을 쫓으려고 굿도 세 번이나 했다. 신정희 선생은 “정말 나는 그릇 귀신이 들었다. 하지만 그릇 귀신이 들면 들수록 옛 그릇을 보는 눈과 진품을 감정하는 능력은 나날이 발전했다. 지천으로 널려 있던 사금파리를 그렇게 많이 보고 만질 수 있었던 걸 보면 그릇 귀신이 참으로 착한 귀신이었나 보다”라고 말했다. 우리 사발을 향한 식지않는 열정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부산의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한 일본인을 만난다. 그 일본인은 그에게 ‘고려다완’이라는 책을 건네며 “왜 지금의 조선에는 이런 사발을 만드는 사람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선생은 처음 사금파리를 손에 쥐었을 때보다 더한 열병에 빠졌다. 책에는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옛 가마터에서 본, 바로 그 사금파리와 같은 종류의 사발이 있었다. 그때부터 선생은 봇짐 하나 달랑 메고 신들린 사람처럼 떠났다. 그러다 무작정 찾아간 곳이 경북 청송. 그곳에서 나이 많은 사기장에게 사금파리를 내밀고 제조법에 대해 물었다. 그때부터 비로소 그는 도자기 제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제는 도자기를 만들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우리나라의 오지 중의 오지로 불리는 충북 단양의 방곡이었다. 그곳에는 도자기흙인 태토가 무진장 널려 있었고, 묵보래라는 유약 재료도 곳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도자기 만드는 기능을 익혀갔다. 노력의 결실. 조선 사발 재현
조선 사발을 재현하려고 했지만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만들면 깨버리고 또 깨버리고…. 수없는 반복 속에 비록 조선 사발을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서 방곡을 떠났다.방곡에는 백자를 만들 재료는 많지만 조선 사발에 맞는 재료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레 차는 대장도 필요했다. 그러다가 경북 문경으로 갔다. 그곳에는 ‘천완봉’이라는 물레 대장이 있었고, ‘서선길’이라는 도자기 기술자가 있었으며, ‘서민홍’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에게 조선 사발을 재현하는데 동참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들은 뜻을 따라줬다.계속해서 유약을 입히고 불을 때고 하기를 수백, 수천 번. 그가 깬 사발들이 사금파리가 돼 산을 이룰 만큼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도왔는지 조선 사발다운 사발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작품을 들고 서울 인사동 골동품가게로 향했다. 당시 전문 감정사들은 옛 조선 사발과 선생이 재현한 조선 사발을 구분하지 못하고 ‘진품’이라는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마침내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조선 사발의 완벽한 재현이 이뤄진 것이다. 그때가 1968년 말 무렵이다. 이 사실은 일본에서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다. 선생의 조선 사발 재현 현장이 TV와 신문에 소개됐고, 일본 언론은 “일본의 국보 ‘이도 다완’이 재현됐다”며 흥분했다. 이 사실이 뒤늦게 국내에 알려지면서 언론이 그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앞다퉈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선생은 무심코 ‘막사발’이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언론들은 ‘막사발 재현’, ‘500년 만에 살아난 막사발’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신정희 선생은 “지금 생각하면 가장 큰 실수였다. 우리 사기장들이 오묘한 솜씨로 빚은 사발을 ‘막사발’이라고 하다니. 남들이 부르는 대로 생각 없이 ‘막사발’이라고 한 것은 내 가장 큰 실수다”라고 말했다. 선생은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선 사발 가운데 일본인들이 가장 숭상하는 ‘이도 다완’이 정말 막사발인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1975년. 선생은 하북면 지산리 574번지, 통도사에 있는 영축산 자락으로 가마를 이요했다. 이후 1979년 6월 15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롯데호텔 전시장에서 그의 국내 첫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방송공사가 주최한 이 전시회는 ‘해외동포 모국방문돕기 기념 성금모금’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명맥이 끊어진 것으로 생각됐던 조선 사발이 한 장인의 집념을 통해 재현됐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신정희 선생이 재현한 조선 사발은 일본에서 먼저 각광받았지만 이제 국내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일본인들은 비파형 분청사발을 가리켜 ‘환상의 그릇’이라고 칭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노란색 사발을 일러 ‘전승도예의 개가’라고 평가하고 있다. 1970년대 당시 정계 거물이었던 김종필 씨가 일본에 선생의 작품을 선물로 가져가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됐다. 이때부터 선생의 작품은 국빈이나 각국 외교사절의 선물로 요긴하게 쓰이게 됐다. 전 로마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르 2세에게 선생의 작품이 전해지기도 했다. 흙으로 돌아간 도예계 거장
2007년 6월 18일. 우리나라 도예계의 큰 별이 졌다. 향년 77세.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렸던 22일 통도사는 선생과의 각별한 인연으로 다비식을 치렀다. 평생을 혼을 불어 넣은 흙을 불에 구우며 살아온 선생이 불과 함께 흙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자리에는 선생의 가족들과 제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참석해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도자기는 내게 있어 종교이자 신앙이다. 그릇을 빚을 때 한갓 형태에 집착하지 마라. 도자기는 손으로 빚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만드는 것이다. 흙에서 꼬신내를 맡지 못한다면 지금이라도 사기장을 그만두는 것이 현명하다”라고 제자들을 꾸짖던 선생의 정신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은 불꽃으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깨끗한 자연환경’, ‘순박하고 넉넉한 인심’
우리가 흔히 농촌관광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농촌 자원은 ‘시골다움’이다. 하지만 보통 ‘시골다움’을 이야기할 때 부정적인 모습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부족한 기반시설, 사회ㆍ문화적 소외지역 등은 시골을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부정적인 면이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고 시골만의 특성을 발전시켜 새로운 관광문화, 지역문화의 품격을 높이고 있는 지역이 있다. 이번 시간은 일본 미야자키현 아야 지역의 산림자원 육성을 통한 지역 부흥 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야 지역은 ‘시골다움’과 함께 도시가 가질 수 없는 농촌만의 문화적 특성을 창출해 관광객과 도시민을 불러들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농촌은 소외된 지역이라는 편견을 깨고 농촌만의 장점을 살려 도시민과의 교류를 넓혀가는 아야 지역의 지혜를 살펴보기로 하자.
산림이 지역의 80%를 차지하며 ‘삼나무의 버려진 땅’이라 불리던 일본 미야자키현 아야 지역은 인구 7천500여명의 산골 마을이다. 지역을 뒤덮고 있는 삼나무 숲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아야 지역 주민들에게는 골치 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산림지역이 워낙 많다 보니 경작할 수 있는 농토가 작고 토양도 척박하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어려움을 겪던 아야 지역에도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떠나는 이농현상이 어김없이 찾아 왔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던 산림자원을 바탕으로 지역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면서 아야 지역은 울창한 숲을 가진 청정 이미지를 통해 생태관광의 명소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골치덩어리 삼나무에서 시작
유기농법으로 청정이미지 구축1960년대 산업화와 함께 필요 없는 자원이라 여겨지던 산림자원뿐이던 아야 지역은 개발을 위해 산림을 없애고 대규모 개발을 계획하던 일본 중앙 정부의 방침을 거부하고 산림자원의 청정 이미지를 활용한 유기농법에 눈을 돌리게 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일어나던 당시 대규모 산림 벌채를 통한 개발 계획은 지역 주민은 물론 정부가 당연시 하던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정장(町長)이던 고다 미노루씨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며 지역주민들을 설득해 골치덩어리였던 산림자원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지금은 최고의 생태관광 지역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아야 지역 역시 개발 열풍에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당시 주민들이 내린 결정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1960년 한가구 한평 유기농 재배 운동으로 시작한 아야 지역 부흥 사업은 1970년대 유기농업에 걸맞은 비료시설을 확충하고 음식물쓰레기를 재활용하기 위한 시설 등이 마련되면서 하나씩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울창한 숲이 가져다주는 맑은 공기와 더불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 재배지역으로 도시민들에게 호응을 받게 된다. 1990년대 후반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유기농법을 장려하는 조례를 제정하는 등 40여년간 꾸준한 유기농 재배로 ‘청정 지역’이라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현재 연간 100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테츠구리센터(물상관)는 아야 지역 농산물이 유통되는 농산물 유통센터로 연간 3억5천엔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산림자원이 풍부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청정지역이라는 아야 지역의 이미지를 활용한 결과다. 청정지역에서 문화지역으로
농촌관광의 품격을 높이다아야 지역의 지역 부흥 노력은 단순한 청정지역이 아닌 문화, 체육 거점 지역으로 아야의 이미지를 확대해갔다. 산림자원을 바탕으로 얻은 청정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아야 지역은 1986년 ‘일본 유명수(有名水) 100선’에 선발되면서 깨끗한 공기와 더불어 깨끗한 물이 있는 곳으로 인정받게 된다. 당시 산림자원이 보존해준 풍부한 지하수 덕택에 운카이주조(雲海酒造)를 유치했다. 양조장이 들어서자 운카이주조에서 생산하는 소주가 전국 1, 2위를 자랑하는 명품 소주로 자리 잡으면서 아야 지역의 청정 이미지는 일본 전역에 각인됐다. 아야 지역은 양조장 일대를 이른 바 슈센노모리(주류를 만들고 판매하는 특화단지)로 조성하고 이를 관광상품화하는 데 성공한다. 기존 소주공장에 와인공장을 추가하고 주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명소로 발전시킨 것이다. 단순한 소주공장을 관광상품화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기발하지만 슈센노모리에는 지역 공예작가들의 공예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예단지도 함께 조성해 색다른 문화단지로 변신을 거듭했다. 이곳 뿐만 아니라 아야 지역을 공예마을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지역공예작가는 물론 외부의 공예작가들이 아야 지역으로 이주해오는 변화를 가져왔다. 현재 아야 지역에는 40여곳의 공예농가가 공예품 생산은 물론 체험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활동 중이다. 이들 공예가들은 아야 지역의 산림자원을 이용한 공예품을 선보이면서 20여년 전부터 공예축제를 개최해 해마다 3천만엔의 경제적 효과를 아야 지역에 주고 있다. 한편 아야 지역은 스포츠합숙훈련장소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숲이 가져다주는 맑은 공기와 함께하는 체육시설’이라는 컨셉에 어울리는 1류 체육시설을 갖춘 것이다. 인구 7천여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 마을에 배구 경기장 8개가 들어간 실내돔 경기장은 물론 국제 규격의 축구장, 테니스장, 야구장, 육상 경기장 등이 정부의 지원을 통해 자리 잡고 있다. ‘청정지역=건강지역’이라는 새로운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고 정부의 국고보조제도를 지혜롭게 활용한 결과다. 실내돔 경기장의 경우 사업비 15억엔이 들었지만 정부 보조금 7억5천엔과 정부 융자 7억5천엔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과소지역에 대해 융자금액의 70%를 돌려주는 제도를 이용해 아야 지역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들여 체육시설을 갖추게 된 것이다. 아야 지역과 같은 시골에 프로팀들이 전지훈련을 오겠냐는 생각을 과감하게 벗어나 지역 부흥의 새로운 탈출구를 마련한 셈이다. 현재 일본 프로축구팀 3팀이 전지훈련 장소로 아야 지역을 찾고 있으며 한국 프로팀도 전지훈련을 이곳에서 가진 적이 있다. 골치덩어리 산림자원이 산골마을에서 공예마을, 체육마을로 아야 지역을 변화시킨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아야 지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산림자원 육성 사업을 통해서도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다. 현재 아야 지역의 장기 농촌관광 육성 사업을 살펴보면 아야 지역을 포함한 인근 지역까지 현재 2천㏊ 규모의 산지를 삼나무가 대부분인 산림자원에서 상록수로 인공조림된 지역으로 100년에 걸쳐 1만㏊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기본에서 시작한 발전 계획
‘시골다움’의 발견이 시작아야 지역은 쓸모없다고 여겨왔던 울창한 숲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청정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일본 전역에 알려왔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활용가능한 자원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최근 우리 농촌에 불고 있는 농촌관광 행태를 살펴보면 자신이 가진 것을 이해하고 아끼기 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지역별로 특성없는 체험프로그램들이 나열되는 경우가 많다. 아야 지역은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 단계적인 실천목표를 세워 이루어가는 농촌관광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산림자원의 보존에서 시작한 ‘청정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룬 성과가 공예마을, 체육마을이라는 진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원동 배내골 역시 수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자연스레 ‘청정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민 스스로 수자원 보호구역을 ‘규제’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각종 개발을 할 수 없었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아야 지역이 스스로 자신들의 지역을 개발하려는 정부의 방침에 맞선 것과는 다른 양상인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농촌관광이 도시와 유명한 관광지와 다른 차별성을 가지는 것은 결국 농촌만이 가지고 있는 농촌자원의 적극적인 해석과 긍정에서 시작한다는 교훈이다.
농촌관광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경쟁력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라는 사실은 일본 농촌관광 사례를 취재할수록 일반화된 것이다.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그 지역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이라는 말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일본 농촌관광을 이끌어가는 주민들은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애정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학습을 통한 깨달음이다. 일본 농촌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산업화에 따라 점점 살기 어려운 지역으로 뒤쳐져 갔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고향인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남아 있는 고령화된 주민들은 ‘희망이 없는 마을’이라는 패배의식이 팽배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시골의 재발견’은 몇몇 열정으로 가득한 마을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주민들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패배의식을 벗어나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마을로 지역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마모토현 오구니 지역 ‘큐슈 투어리즘 대학’
‘학습’과 ‘교류’의 장, 농촌관광 인재 육성이 목표“농촌관광의 주된 테마는 결국 ‘사람, 자연 그리고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농촌관광을 이끄는 큐슈투어리즘 대학의 사무장인 오노씨는 투어리즘 대학의 설립 목적을 묻는 질문에 ‘사람과 자연의 만남’이라는 테마로 투어리즘 대학의 존재가치를 설명했다. 구마모토현 가장 북쪽 산간지역인 오구니 지역에 위치한 큐슈그린투어리즘 대학은 지난 1997년 문을 연 이후 1천5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일본 농촌관광 육성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해왔다. 삼나무로 뒤덮인 산간 지역인 오구니 지역을 대표적인 생태농촌관광 지역으로 변화시킨 투어리즘 대학은 이제 오구니 지역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일본 농촌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투어리즘 대학은 흔히 생각하기 쉬운 대학의 이미지, 사회와 거리를 두고 있는 상아탑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장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먼저 투어리즘 대학의 설립 목적을 살펴보면 ▶농촌지역에 어울리는 농촌관광 형태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육성 ▶각 지역에 필요한 농촌관광 정보 수집과 제공 ▶농촌관광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 간의 교류 등이다. 큐슈 투어리즘 대학이 현재 농촌관광을 연구하고 있는 일본 내 대학과 다른 점은 대부분 도시에 위치한 농촌관광 관련 대학과 달리 오구니 지역 현장에서 직접 농촌 현실과 맞닥뜨리며 농촌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위 반경 100km 이내가 모두 캠퍼스’라는 큐슈 투어리즘 대학은 지역에서 지역이 필요한 실무자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투어리즘 대학의 졸업생과 수강생은 주로 농가민박이나 식당을 경영하고자 하는 사람, 관광담당 공무원, 농림·어업인, 주부, 학생 등으로 농촌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많지만 농촌으로 이주를 꿈꾸는 젊은 층들의 참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현장 중심의 강의에 참여하고 밤이면 자신의 지역에 걸맞은 농촌관광 형태에 대해 정보를 나누며 밤새 토론을 벌이는 등 수업에 대한 열의가 높다. 현재 관광도시개발과와 투어리즘 학과로 구성되어 있는 투어리즘 대학은 매년 9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2박 3일의 일정으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교육을 이수한 졸업생들은 지역별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농촌관광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교류하면서 지속적인 농촌관광의 전도사로 성장해간다. 오구니 개발 시나리오
지역에서 지역을 변화큐슈 투어리즘 대학이 있는 오구니 지역은 전체 면적의 78%가 산림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따라서 인근 도심 지역에서 접근성이 떨어지고 산간 고랭지역으로 연간 기온변화가 심해 농업 생산량이 많지 않은 지역이다. 게다가 산림을 뒤덮고 있는 삼나무는 사계절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주지만 주민들에게는 일상적인 풍경일 뿐이었다. 하지만 1985년 오구니 지역은 ‘유키노사토 개발’이라는 지역 개발 시나리오를 만들고 적극적인 지역 개발에 나선다. 삼나무로 가득 찬 산촌마을을 도시와 교류하는 생태관광지역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유키노사토 개발 시나리오는 ▶삼나무를 활용한 지역 디자인 개발 ▶지열을 이용한 지역 개발 ▶대자연을 활용한 관광지 개발 ▶지역자원을 활용한 특산품 개발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이벤트 개발 ▶미래에 도전하는 오구니 인재 개발 등 6개 전략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미래에 도전하는 인재 개발’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큐슈 투어리즘 대학이다.
지역 출신 의사인 기타사토 시마사부로씨의 유지에 따라 지역에 공헌하는 인재 육성의 장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재단법인 마나비야노사토는 1997년 큐슈 투어리즘 대학의 첫 강의를 개설하면서 본격적인 인재 양성의 기반을 조성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농촌관광에서 필요한 지역개발과 농촌관광의 필요성, 농촌관광 이론 등 기초 강의에서 농가민박, 음식점 운영, 농촌관광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실습 프로그램으로 농촌관광에 필요한 지도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유키노사토 개발 시나리오에 따라 오구니 지역에서는 ‘산골’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색다른 시도를 감행한다. 오구니 지역의 특산품인 삼나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시설물들을 건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오구니 돔은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로 특이한 것은 삼나무를 이용해 일정한 길이의 각목 1천445개를 강철 이음쇠로 연결시키고 외벽을 유리로 만든 것이다. 산골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오구니 돔은 오구니 지역을 일본 전역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오구니 가축시장, 임업종합센터, 특산품 판매시설인 유우스테이션 등 삼나무를 활용한 목재 건축은 오구니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 양식으로 해마다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20년 전 오구니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20만명에서 2005년 100만명으로 증가한 것은 지역 개발에 대한 청사진과 함께 꾸준한 인재 양성이 가져다 준 결과였다. 미래를 만드는 농촌관광
사람에 대한 투자가 관건오구니 지역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큐슈 투어리즘 대학’은 농촌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것에만 눈길을 돌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농촌이 도시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산골의 험난한 등산로를 산악자전거의 명소로 변모시킨 것은 지역 자원에 대한 이해와 시대적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오구니 지역은 삼나무로 둘러싸인 산길을 활용하기 위해 산악자전거 대회를 정례적으로 개최하면서 지난 시드니와 아테네 올림픽 대회 일본 예선전을 이곳에 유치하는 성과를 거둔다. 전국에 중계되는 산악자전거 예선 대회를 통해 오구니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은 일본 전역으로 보내졌다. 주민들 역시 산지의 활용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면서 ‘버림받은 지역’이 아닌 ‘살기 좋은 지역’으로 오구니 지역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마을 만들기 협력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두 30여개 마을이 참여하고 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은 도시민들이 오구니 지역을 찾았을 때 함께 나눌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마을을 정비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마을 만들기 사업 가운데 눈여겨 볼 것은 ‘지지바바 에듀케이션(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대부분 고령자인 오구니 지역의 주민들은 농촌관광의 수요를 멀리서 찾은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손자, 손녀들을 통해 시작한 것이다. 이른 바 손자를 위한 추억 만들기 프로그램인 셈이다. 고향을 떠나 자식들이 자신의 고향을 어렵고 힘든 곳으로 외면하게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고향만의 특성을 다시 느끼게 하는 것이다. 도시로 떠난 자신들의 자식이 도시에서 자신의 고향을 알리는 영업사원 역할을 할 수 있게끔 마을 정비하고 가꾸어 가는 것이 마을 만들기 사업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2001년부터 시작된 큐슈 투어리즘대학에서 실시하는 ‘오구니 자연학교’를 통해 보다 발전한다. 유치원에서 초·중·고학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오구니 자연학교는 방학 기간을 이용해 장기간 체류하면서 다양한 농촌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프로그램은 사회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어 회사별, 단체별의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오구니 지역의 농촌관광은 ‘미래에 대한 투자’를 기본으로 한다. 그것은 삼나무를 활용한 시설물을 설치해 호기심 어린 관광객을 유치하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지지바바 에듀케이션 등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는 농촌 문화의 올바른 이해에서 시작한다. 지금 자라는 아이들이 농촌을 이해하고 농촌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농촌관광의 목표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 농촌은 어떤가?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아직도 유효한 상황이다. 자신은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고 있지만 내 자식은 도시에 번듯한 직장을 가지길 바라는 것이 아직 우리네 현실이다. 농촌 주민 스스로 농촌의 가치를 이해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농촌관광을 위해 시도하는 모든 노력이 당대에 그칠 뿐 사람을 다시 불러 오지 못하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촌관광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다시 농촌에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날이 갈수록 고령화되는 농촌의 시계를 뒤로 돌릴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이 바로 일본 농촌관광이 전해주는 교훈이다.
7월의 뜨거운 무더위와 함께 찾아오는 장마철 습기!
하절기에는 세균성이질, 장티푸스 등 수인성전염병이 자주 발생 하는 계절입니다.
최근 들어 남녀노소 불문하고 여름휴가로 동남아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경우가 많아 그동안 잘 발생하지 않던 콜레라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대부분의 여름철 수인성전염병은 설사, 복통, 탈수현상, 고열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가까운 병, 의원에서 치료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수인성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유의해야 합니다.외출에서 돌아온 후 손을 깨끗이 씻는 등 개인 위생수칙을 준수해야 하고, 반드시 끓인 음식물을 섭취하고 날 음식을 삼가야 합니다. 또한 장을 볼 때 어패류나 육류는 잘 포장하여 물기가 다른 식품과 직접 닿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음식을 조리하기 전에는 반드시 비누로 손을 씻고, 행주, 도마, 개수대, 조리기구 등은 뜨거운 물로 씻거나 소독하여 청결을 유지합시다.달걀, 고기, 내장 등의 조리에 사용된 도마, 칼, 그릇은 다른 음식물 조리 시에는 반드시 교체해서 사용하고 고기와 어패류, 달걀이 포함된 음식은 충분히 익혀 먹어야 합니다. 과일과 야채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서 먹고, 도시락은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하며 가능한 빠른 시간안에 먹도록 합니다. 환자(설사환자)는 절대로 음식 조리, 어린이 돌보기를 하지 마십시오.
물은 끓여서 마시고, 정수기의 물은 안정성을 확인한 후 사용하시고, 집단으로 음식을 접대할 때에는 다과류 등 마른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안전하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사항들을 유의하셔서 건강한 하계휴가기간을 즐기기 바랍니다.
A. 5년 전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눈 등을 폭행 당하여 안과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치료가 잘 되면 별다른 후유증이 없다고 하여 치료비와 약간의 위자료를 받고 민,형사상 합의를 하였습니다. 합의 후에 안과치료를 최근까지 받았는데 그때의 충격이 커서 실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추가 보상을 받을 수가 있나요.
Q. 일반적으로 손해배상에 대하여 합의를 하게 되면 추가적인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합의를 할 때에는 피해보상금으로 얼마를 받고 향후 민·형사상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러한 합의는 손해가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합의가 된 것으로 해석되며, 만일 피해자가 손해배상에 대한 합의를 하고 나서 다시 법원에 같은 사건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되면, 법원은 소각하 판결을 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당사자의 합의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한 합의이므로 이러한 합의에 반하는 소송의 제기는 적법하지 않은 소송의 제기로 보고 사건의 심리를 하지 않고 바로 원고의 청구를 각하하는 판결을 하는 것입니다.(따라서 합의를 할 경우에는 신중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런데, 합의당시에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손해가 나중에 발견된 경우에는 합의의 효력은 예견할 수 없었던 손해에 대한 합의까지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태도입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의 경우 치료 중일 때에는 휴우증을 알 수가 없거나 후유증이 세월이 지나고 나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합의금액에 비추어 후유증의 정도가 클 경우에는 추가적인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이 질문의 경우 합의 당시 눈이 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하기가 어려웠다고 생각되며, 합의금액도 실명이라는 피해정도보다 상당히 적다고 할 수 있으므로 합의의 효력이 실명이라는 피해까지 미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비록 과거에 합의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실명으로 인한 피해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장운영 변호사
“여름철 집안 위생관리와 함께 손과 몸을 자주 씻는 개인 위생관리를 청결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보건소 위생지도담당 장진운 씨는 여름 장마철 개인 위생 관리와 함께 식품위생관리의 중요성도 부각했다.“전염병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요즘에는 손 씻기와 물 끓여먹기만 잘해도 웬만한 병균은 물리칠 수 있죠. 다만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무심코 지나치는 사이 해를 입기도 합니다”
또 손씻기, 물 끓여먹기와 더불어 남은 음식물은 섭씨 5도 이하 또는 60도 이상 고온 살균 후 보관하고 음식물 섭취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한번 오염된 음식은 끓인다고 해도 식중독 균이 죽지 않기 때문에 유통기한을 넘겼거나 상온에 방치됐던 음식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또 포도상구균에 의한 식중독은 우유와 치즈, 아이스크림, 마요네즈 등 유제품에서 균이 잘 자라므로 이 같은 음식을 먹을 때는 특히 주의하며 냉장고에 오래 보관된 음식은 가급적 먹지 말아야 합니다”또한 날 것 보다는 음식을 반드시 익혀 먹고, 주방용품은 수시로 소독하는 것이 건강한 생활의 지름길이라는 것.“특히 여름철에는 집단 급식에 주의하며 칼, 도마, 행주 등을 매일 삶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 땀을 닦거나 머리카락을 만지는 등 음식 조리 시 위생 관리에 각별히 주의한다면 건강한 여름을 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요즘이다. 365일 집안 구석구석 위생관리가 중요하지만 특히 여름철에는 장마와 무더위에 지쳐 관리하지 않으면 어느덧 세균에 무방비 상태가 되기 일쑤다. 자칫 잘못하면 청결상태 부주의로 전염성이 강한 병들이 유행처럼 퍼지기도 한다.
가족의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주부의 손길이 바빠지는 요즘,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세균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세균이 득실득실, 주방 위생관리1. 뜨겁게~더 뜨겁게 달궈줘요
세균이 침투하기 쉬운 여름철, 소독은 필수항목이다. 행주와 수세미는 매일 소독해 쨍쨍한 햇볕에 말리는 것이 좋다. 팔팔 끓는 뜨거운 물에 10분 정도 삶거나 젖은 상태에서 전자레인지에 8분 정도 넣고 돌리면 세균 걱정 끝!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렐라균이 살고있는 배수구 또한 설거지 뒤에는 뜨거운 물을 한번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소독 효과가 있다. 매일 저녁 자기 전에 락스 푼 물이나 베이킹소다 푼 물을 부어놓으면 다음날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다.또 사기그릇은 깨끗이 씻은 뒤 뜨거운 물에 담가 두었다가 마른 행주로 물기를 닦는다. 스테인리스 소재의 숟가락과 젓가락은 팔팔 끓는 물에 넣고 살균 소독한다. 플라스틱류의 용기는 세제로 씻은 뒤 햇볕에 말리면 음식물 냄새가 사라지고 소독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2. 종류별로 모아봐?
귀찮지만은 일반 가정의 경우 도마는 과일과 야채용, 생선용, 육류용 등 용도별로 나누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위생적이다. 야채용 도마는 사용 후 빠른 시간 내 씻어 말리고, 육류용 도마는 중성세제와 표백제로 닦아내고 끓는 물을 부어 소독한다. 수세미에 굵은 소금을 묻혀 씻어도 좋다. 처음부터 뜨거운 물로 닦아내면 세균이 더 잘 번식하므로 찬물로 씻은 후 마지막에 끓는 물로 헹구면 살균효과가 더 크다.칼 또한 용도별로 여러 개 준비하여 사용하는 게 위생적이며 레몬으로 문질러 닦은 뒤 햇볕에 말리면 표백은 물론 살균 효과까지 있다.3. 냄새, 용서할 수 없다!
여름철 물기가 있는 주방쓰레기는 심한 악취와 함께 벌레가 생기기 마련이다. 음식 쓰레기는 매일 버리는 것이 최선이며 전용 쓰레기통은 매일 세척하는 것이 좋다. 미처 내놓지 못한 음식물 쓰레기에서 냄새가 난다면 물에 희석한 소주를 분무기에 담아 뿌린다. 원두커피를 마신다면 커피 찌꺼기로 음식물을 덮거나 쓰레기통 바닥에 깔아두는 것도 냄새를 줄이는 방법. 냉장고도 마찬가지. 냉장고는 먹지 않는 음식으로 늘 가득한 경우가 많다. 안쪽 공간도 수시로 점검하여 먹지 않는 것은 바로 버리고 유효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이나 만든 지 오래된 음식은 잘 보이게 앞쪽으로 내놓는다. 또한 냄새가 잘 나는 여름철에는 냉장고에 녹차, 커피 찌꺼기, 숯 등을 넣어둬 탈취에도 신경을 쓴다. 한편 냉장고의 달걀보관함은 균이 번식하기 쉬우므로 포장 팩 상태 그대로 보관한다. 한번 핀 곰팡이 질기더라. 욕실 위생관리1. 우아한 거품목욕 뒤 숨은 세균
목욕 후 벽에 남은 비누 거품은 세균 발생의 원인이 된다. 거품 목욕을 했다면 내 몸만 닦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타일을 세제로 씻은 뒤 샤워기로 닦아내는 버릇을 들이고 욕실 문을 열어 습기를 제거한다.찌든 곰팡이는 화장지를 손에 돌돌 만 후 곰팡이 제거 전용세제를 묻혀 청소하면 깨끗하게 한번에 없앨 수 있다. 냄새나는 배수구에는 식초를 붓고 30분 후 뜨거운 물을 부으면 세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2.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남자가 사는 집이라면 소변이 튀는 변기 커버, 주위 타일까지 꼼꼼히 닦아야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세제를 풀어 청소하며 시간이 없을 경우 자기 전에 세제를 변기안에 부어두고 아침에 물을 내리면 더러움 타는 속도를 늦출 수가 있다.
한편 김빠진 콜라나 사이다, 맥주 등을 변기에 붓고 물을 내리면 누런 때가 제거되면서 악취까지 없앨 수 있다.3. 물에서 때가 나오네~
세면대의 물때는 여름철 특히 불쾌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사용할 때마다 마른 걸레로 닦는 게 최선이지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세면대는 욕실 세정제를 풀어 수세미로 닦는 게 정석! 평소 샤워를 하고 난 뒤 샤워 타올로 세면대를 닦는 습관을 들이면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없다.4. 지긋지긋한 곰팡이여, 안녕~
욕실 실리콘에 한 번 생긴 곰팡이는 여간해서 잘 없어지지 않으므로 무엇보다 예방이 우선이다. 자기 전에 곰팡이 전용 세제를 뿌렸다가 오전에 청소하고 샤워하고 나서는 욕실 바닥에 뜨거운 물을 뿌린 뒤 환기한다.욕실 배수구가 막히거나 냄새가 날 때는 샤워하고 나서 뜨거운 물을 부어 배수구를 뚫어주고 청소용 솔로 머리카락이나 먼지를 걷어낸다.샤워기 꼭지 부분은 물때 때문에 막히거나 수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욕실 전용 세제를 묻힌 면봉으로 닦아내고 뜨거운 물을 틀어 때를 녹인다.5. 깨끗한 내 얼굴
거울은 주기적으로 따뜻한 물로 닦은 후 건조시켜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샤워하기 전 거울을 비눗물로 닦아 놓으면 김서림을 방지할 수 있다. Tip. 여름철 위생관리 10계명1. 행주 관리는 10-8-30분 법칙으로 행주는 하루 한 번 100도에서 10분 이상 삶거나 전자레인지에 8분 이상 가열, 락스에 30분 이상 담가 둬야 살균 효과가 있다.2.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말려라 사용한 행주는 깨끗한 물로 세척한 뒤 반드시 말린다.3. 냉장,냉동고 안에도 질서가 세척하거나 가열처리하지 않은 생식품과 조리된 식품은 표시를 해 두어 따로 보관한다. 4. 등잔 밑을 살펴라 도마, 칼, 주걱, 수세미도 세균의 온상이 될 수 있다. 5. 한 여름에도 보일러를 켜라 2~3일에 한 번 정도는 난방을 해서 집안의 습기를 없애준다.6. 싱크대도 설거지 대상 자주 세척하지 않는 수저통 밑이나 건조대 바닥은 물이 고이지 않게 관리한다. 7. 유통기한은 가격보다 중요 식품 구매 시 유통기한을 꼭 확인하고, 포장이 완전한 지 살핀다.8. 물을 아끼지 말자 잘 씻는 것이 기본.약 20초 동안 손을 비벼서 문질러 씻는다. 과일,채소는 전용 세제를 사용한다. 9. 이열치균 세균을 없애기 위해서는 내부온도 75도에서 3분 이상 가열해야 한다. 10. 화장실과 주방은 멀수록 좋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다. 손의 식중독균은 물로 씻은 뒤에도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키친타월이나 소독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다.
지난 23일 양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국제배구대회에서 핀란드를 상대로 국가대표팀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세트 스코어 2:0으로 뒤지고 있을 때 하경민선수의 멋진 공격으로 귀한 한 점을 올렸다. 선수들은 모두 환한 미소로 서로 격려했다. 이날 경기는 비록 3대 1로 지긴 했지만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는 양산 시민들의 가슴 속에 깊게 자리잡았다.
어떤 그리움을 타고 너에게로 가야 하는 걸까
덕유산으로 통하는 영동에 다다라서야
칠월 마른 장마에 타는 어린 벼들이
시퍼렇게 날을 세운 채 가문 하늘을 징그러워 하며
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삶의 궁벽진 터널을 여러 번 지나고
터널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뭉클한 깃털을 펼친
구름 무더기가 시선을 훔쳐간다
줄담배를 피워대며 고뇌했던 지난 밤을
꼬박 보내고 나서도 나는 네게 도달할 수 있는
그리움의 통로를 찾지 못했다
폐교가 예정된 낡은 분교 옆으로 한때 영화로웠을
호사스러운 기억들을 덮쳐 담고 개울이 멈춰 서 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멸망 직전에 더 섬뜩하게
각인 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영동역을 완전히 빠져나가서도 힐끗 스치기만 했던
생강밭이 나를 따라온다 혹,
뻣뻣이 하늘을 찌르고 서 있는
생강줄기 사이, 잎새가 부딪치는 순간
너를 향한 공간이동의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닐까
- 김경진, 시집「나도 생리를 한다」에서그리움이 사무치는 일, 이는 시(詩)가 되려는 모태부터가 하나의 방향성을 지닙니다. 이 시는 곳곳에 ‘그리움’의 더듬이를 통해 사물을 바라봅니다. ‘줄담배를 피워대’던 밤이나, ‘생강줄기 사이, 잎새가 부딪치는 순간’이나 언제나 시인은 그리움의 대상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간절해지면 시가 써진다는 말,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리울 때, 시는 시골의 한참만에 들르는 우편배달부처럼 아득해지는 것입니다.
2007년 4월, 가마에서 새 생명을 얻어 세상으로 나오는 도자기를 바라보는 선생은 여전히 기대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이었습니다. 분청백자항아리의 은은한 피부를 만질 때 빛을 발하던 눈동자와 미소 그리고 동유항아리가 깨어질 때의 아쉬움이 교차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일흔 일곱의 노련한 사기장 신정희 선생입니다. 그것이 1949년 청자 사금파리 한 조각과 만남 이후 60여년의 세월을 오직 사기장 한길만을 걸어 온 신정희 선생이 이 세상에서 받아낸 마지막 생명들이었습니다.양산 통도사의 지산마을, 여기는 신정희 선생이 1975년 가마를 열고 도예의 꽃을 활짝 피우고 열매를 맺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2007년 6월 18일 밤 대한민국 도예의 큰 별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신정희 선생은 1930년 8월 29일 사천만의 한 어촌마을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열아홉 살 되던 해, 당시 삼천포중학교의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의 “이 청자 사금파리 한 조각에 우리 민족의 혼이 담겨있다”는 말을 귀동냥한 것이 선생의 일생을 사기장으로 운명지운 첫 단추였습니다. 1951년 징집되어 한국전쟁을 겪고 1959년 제대하면서 도자기와의 인연이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고려다완』이라는 일본책을 보고 ‘왜 기좌이몽 같은 사발이 일본에 가 있는가, 왜 거기에서 도자기 국보 1호가 되어있는가 그리고 왜 우리는 그것에 관심이 없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선생에게는 이것이 곧 장인(匠人)으로서의 첫 개안(開眼)이었습니다. 도자기 제작기술이라거나 불때기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었건만 무슨 숙명처럼 다가 온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누구도 돌아보지 않아 잡초와 가시로 뒤엉킨 길이었습니다. 전국의 옛 가마터를 찾고 각 지역의 도자기에 대한 공부로 시작된 열병은 선생을 마치 그릇귀신이 들린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고, 실패와 실패로 이어지는 길은 오히려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신장결석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옛 도자기 재현, 그로부터 가해지는 재정적 고통은 선생을 극도의 절망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강렬히 타오르는 정신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도자기의 길로 들어선 지 10여년 1969년 여름, 끊어졌던 조선사발(황도사발 혹은 일본의 이도 다완)의 역사는 다시 맥박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인들을 열광케 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국내의 도자기에 대한 인식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이어온 사기장의 길은 한민족의 심성을 닮은 옛 도자기들이 다시 태어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들들과 많은 제자들에 의해 그 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선생은 2007년 6월 22일 통도사 다비장에서 육신을 불에 맡겨 우직과 불굴의 사기장으로서 살아왔던 일생을 한 알의 사리로 남겨 놓고 떠났습니다. 불의 사기장답게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간 사람을 선각자라 합니다. 천상 한국 도예계의 선각자였던 선생의 가시는 길에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구도심의 공동화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시 차원의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양산의 중심이었던 중앙동 중에서도 북부, 중부동 일원에 소재했던 관공서와 주요 다중집합시설의 신도시 등 외곽 이전이 줄을 이었다. 보건소의 신도시 이전을 시작으로 교육청이 물금읍으로 옮겨 개청하였고 지난 15일에는 구도심의 상징인 시외버스 터미널마저 신도시로 이전함으로써 20년 이상 영화(?)를 누렸던 구도심의 쇠락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 뿐만 아니라 북부동에 위치한 경찰서마저 후보지가 결정 되는대로 이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니 파장(罷場)의 황량함이 구도심을 뒤덮을 날도 머지 않았다는 탄식이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없다.무릇 새로 뜨는 곳이 있으면 세력을 잃는 곳도 생기게 마련이지만 우리 지역의 경우 신도시 조성계획 수립과정에서 기존 도심과의 연계를 소홀히 다룬 측면이 없지 않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도시와 구도심의 격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양극화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이미 지난해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출마자 대부분이 구도심 활성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장밋빛 비전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결과 양산남부재래시장의 현대화 아케이드 사업이 착공되고 중앙로 옛 하천을 복원하여 도심공원화를 계획하는가 하면 민간 일부에서 부분적인 재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또 소규모 도시계획도로개설 등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하지만 근본적인 구도심 활성화 대책은 사실상 요원하여 위정자 조차도 커다란 원칙없이 일회성 시책을 추진할 뿐이라는 것이 안타깝지만 오늘의 현실이다. 구도심의 슬럼화를 우려하는 많은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땜질식, 위로식 예산의 편성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이고 계획적인 구도심 활성화 방안이다.혹자는 말한다. 신도시에 사는 사람과 구도심 주민들은 똑같은 세금을 내면서도 그 대접에 있어서는 천양지차라고. 신도시 주민들이 느끼는 주거환경의 쾌적함과 생활의 편리함, 건강하게 살 권리의 향수 등, 도시민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받는 반면 구도심에는 심각한 주차난, 근린공원 등 휴식공간의 절대부족, 여기에 따른 재산가치의 하락 등 안락한 시민생활은 커녕 한숨과 짜증으로 일관되는 배타적 불만감이 상승하고 있다는 말이다.북부동 간선도로 주변을 중심으로 민간에서 추진돼 오는 재개발사업의 부진은 지자체의 비협조와 무관심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사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일컨대 도심 재개발사업이라 함은 그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든 간에 재개발 이후의 분양 전망에 좌우되는 바가 크다. 헌 집을 뜯고 새 건물을 세우는데 그 건물이 잘 팔리지 않는다면 누가 거금이 드는 사업에 뛰어 들 것인가. 분양의 핵심은 입지의 가치이다. 소외된 거리, 주변의 삭막함, 편의시설의 부족 등 거주여건이 흡족하지 않으면 관심을 끌지 못함이 당연하다.우리는 그러한 소외감을 없애고 과거 양산을 이끌어 왔던 원주민집단을 상징하는 구도심 주민들에게도 균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한다. 나아가 단견적인 미봉책에 그치지 않고 신도시의 쾌적하고 편리한 주거환경 조성과 대조되는 구도심의 특성을 살린 외곽 전원형 부도심 조성이라는 명제를 설정해 주기를 제안한다.여기가 지자체의 의지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구도심의 종합적인 개선방향은 일 개인이나 단체의 희망 수준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시민 기구가 설립되어 여론을 조합하고 토론을 거쳐 구도심의 미래에 대한 획기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주민들을 설득해 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의 주도적인 자세가 절대로 요구된다. 왜냐하면 투자 예산을 무시한 공염불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옛 군청(지금의 중앙동사무소) 자리를 중심으로 과거 양산읍성으로 둘러싸인 읍내 지역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한다. 신도시의 주거개념과는 차별화된 부도심으로서의 공간 조성과 인프라 확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장기적이고 계획적인 투자계획을 수립하여 간선도로를 확장하고 곳곳에 근린공원과 야외공연장을 조성하는 한편, 순환자전거도로, 북부천 중심의 문화타운 등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수립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당연히 지자체의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장기계획으로 추진해 나간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본다.지난해 선거에서 구도심의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당선자들은 시외버스 터미널이 옮겨간 이 시점에서 반드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시적인 미봉책은 절대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얼마 안 있으면 경찰서도 너른 땅을 찾아 떠날 거라고 한다.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동안에도 구도심은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며 소리없이 통곡하고 있다.편집국장 박성진
지난 23, 24일 이틀간 열린 국제배구대회에는 연일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시민들로 성황을 이뤘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기상예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체육관을 찾은 시민들은 모처럼 보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에 환호성을 보내며 즐거운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시민들의 열정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핀란드와의 2연전은 모두 패배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작품명 : 원동 화제마을 oil on canvas (53cm X 41cm) 길을 걷는다
지나가는 세월 속에 걸음을 옮기다
나를 잊고 세월을 잊고 기억을 잊고...
마치 담 밑의 넝쿨이 세월의 흐름을 덮어버리 듯
이토록 우리네 삶을 덮어버리는 건 무엇일까? 작가 장경애양산미술협회회원
향토사랑 순회전
좋은그림미술학원운영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악극을 다양한 연령층이 편하게 즐길 수 있게 정통성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가족악극 ‘꿈에 본 내고향’이 시민들을 찾는다.오는 7월 6일 오후 7시 30분 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날 수 있는 악극 ‘꿈에 본 내고향’은 일제시대와 광복 그리고 6.25 등 혼란스런 시대 배경 속에서 주인공 순이를 통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종군위안부 여성의 아픈 역사와 삶을 그려낸다. 한가한 농촌마을에서 이뤄진 풋풋한 주인공 남녀의 사랑과 지옥같은 필리핀 위안소 생활, 그리고 유랑극단인 동림악극단 등 주인공 순이의 삶을 따라 관객들은 함께 울고 웃으며 아픔을 느끼게 된다.2007 지방문예회관 우수공연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번 공연은 화려한 춤과 노래, 안정된 연기력으로 눈물과 웃음이 가득한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한국연극배우협회가 문화예술보급을 위해 준비한 악극 ‘꿈에 본 내고향’은 R석 2만원, S석 1만5천원, A석 1만원으로 전화(380-4131)와 인터넷 (www.yangsan. go.kr)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